...좁고 긴 서고 복도를 어슬렁거리며 대부분의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냈다.   수만 권의 책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당시 나는 오늘날 ‘정보 과부하’라 부르는 증상과 같은 불안감을 느껴본 기억이 없다. 그 수많은 책들이 보여주는 과묵함 덕에, 또 이 책들은 자신들을 정황히 필요로 하는 독자가 다가와 서고 내 고정석에서 자신들을 빼내줄 때까지 수년 또는 수십 년을 기꺼이 기다릴 것이라는 점에서 나는 마음의 편안을 느꼈다. 책들은 마치 먼지가 자욱하게 깔린 목소리로 "서두를 것 없어. 우리는 어디에도 가지 않아"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30p.)     도서관, 집 다음으로 편안한 곳. 아니 어쩌면 집보다 더 편안한 곳.   마을 도서관에서 구립 도서관으로, 구립 도서관에서 시립 도서관으로, 시립 도서관에서 중앙도서관으로 가면 갈수록 건물은 커지고 책은 더 많아진다. 같은 책을 읽어도 마을 도서관에서 읽는 것보다 중앙도서관에서 읽으면 더 뿌듯하고 훨씬 가치있는 정보를 얻는 느낌이 나기도 한다. 도서관에 책이 ‘너무 많은’ 경우란 없다. 책이 너무 많아서 ‘정보 과부하’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 책이 너무 많아서 불안하다니,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말이 있나.    마을 도서관이 제일 가깝고 중앙 도서관은 멀다. 마을 도서관은 걸어서도 갈 수 있고 중앙 도서관은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멀미를 참으며 한참이나 가야 한다. 그런데도 중앙도서관에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마을 도서관에 없는 책이 중앙도서관에는 있으니까. 마을 도서관에는 신간 도서도 별로 없는데 어제 서점에 깔린 책도 중앙 도서관에 가면 있으니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사고의 과정을 연습해야 함을 의미했고 하나의 정적인 대상에 대한 지속적이고 방해받지 않는 집중을 요하는 일이었다. 독자들은 엘리엇이 「4개의 4중주Four Quartets」에서 말한 "변하는 세상 속 정적인 지점"이라 부르는 곳에 이르러야 했다. 또한 본능적인 산만함에 대항하기 위해 더 강력한 "위에서 아래로의 통제" 방식을 적용하면서 필요한 신경 연결망을 구축하거나 강화해야 했다. 킹스칼리지런던의 심리학 연구원인 본 벨Vaughan Bell은 비교적 방해받지 않고 하나의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의 정신 발전 역사에 있어 불가사의하면서도 이례적인 일이라고 적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책이나 심지어 알파벳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지속적인 집중력을 키워왔다. 사냥꾼, 장인, 수도사 등은 모두 관심을 통제하고 집중할 수 있도록 뇌를 훈련시켜야 했다. 책을 읽는 데 있어 매우 특이할 점은 깊은 집중이 매우 활발하고 효율적인 문자 해석 활동 그리고 의미를 파악하는 활동과 협력한다는 것이다. 인쇄된 책을 읽는 행위는 독자들이 저자의 글에서 지식을 얻기 때문만이 아니라 책 속의 글들이 독자의 사고 영역에서 동요를 일으키기 때문에 유익하다. 오랜 시간, 집중해서 읽는 독서가 열어준 조용한 공간에서 사람들은 연관성을 생각하고 자신만의 유추와 논리를 끌어내고 고유한 생각을 키운다. 깊이 읽을수록 더 깊이 생각한다.   초창기의 조용한 독자들도 독서에 몰두할 때 일어나는 의식의 놀라운 변화를 깨달았다. 중세 주교인 시리아의 아이작은 혼자 독서를 할 때마다 "꿈을 꾸는 것처럼 나의 감각과 생각이 집중되는 경지에 들어간다. 그러면 이 침묵의 긴 시간과 함꼐 기억의 폭풍은 마음속에서 잠잠해지고, 멈추지 않는 깊은 사고로부터 즐거움의 물결이 전해지고, 갑자기 예상치 않은 기쁨이 가슴에서 일어난다"고 적었다. (100~101p.)     "변하는 세상 속의 정적인 지점", "집중해서 읽는 독서가 열어준 조용한 공간"   나도 그곳을 안다. 그곳이 어디에 있는 지도 알고, 어떻게 하면 그곳에 갈 수 있는 지도 안다. 자주 그곳에 갔었고 한참동안 머물러 지내기도 했다. 예전에는.. 지금은 잘 가지 않는다. 가지 못한다. 그곳은 점점 추억의 장소가 되어간다. 마음 먹고 찾아가려면 왜 못가겠나. 그러나 나는 너무 바쁘다. 그곳은 너무 멀다. 중앙도서관 보다 훨씬 먼 곳이 되었다. 그리고 요즘은 아무도 그런 곳에 가보았냐고 묻지 않는다.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그곳은 나 뿐 아니라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곳이다.    "변하는 세상 속의 정적인 지점" 대신 우리는(나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변화무쌍 동영상과 인터넷, SNS"를 선택했다. "집중해서 읽는 독서가 열어준 조용한 공간" 대신 나는(우리는) "끊임없이 산만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트윗과 동영상, 이메일, 검색어가 올라오는 시끄러운 타임라인"을 선택했다. 학생들은 공부를 하기 위해서도 인터넷을 하고 놀기 위해서도 인터넷을 하고 친구와 대화하기 위해서도 인터넷을 한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일을 하기 위해서도 인터넷을 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도 인터넷을 하며 심지어 결혼을 하기 위해서도 인터넷이 필요한 시대인 것이다. 취미생활에는 특히 인터넷 동호회 활동이 필수불가결이다. 외식, 쇼핑을 위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의료 정보, 심리 상담도 인터넷으로 다 알아보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인터넷이란 당연히 스마트 폰으로 접속하는 모든 앱 접속 공간을 포함한다.)    정보를 한 가지 이상의 형태로 제공하는 것이 언제나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도표가 삽입된 교과서나 매뉴얼을 읽는 과정을 통해 이미 알고 있듯이 그림은 글로 적힌 설명을 명확히 하고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교육학자들 역시 오디오와 비디오적 설명이나 지시를 결합한, 세심하게 준비된 발표는 학생들의 학습력을 향상시킬 수 있음을 발견했다.   최근 이론에 따르면 그 이유는 뇌가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을 처리하기 위해 다른 통로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스웰러가 설명하듯이 "청각적ㆍ시각적 작업 기억은 적어도 어느 정도는 별개이기 때문에 효과적인 작업 기억은 하나보다는 양족 모두의 처리 부분을 사용함으로써 향상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 결과 어떤 경우에서는 "집중력이 분산된 데 따른 부정적 효과는 청각적ㆍ시각적 양식의 모드를 사용함으로써 개선될 것이다" 라고 했다. 다시 말해 소리와 사진으로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은 학습 교화를 극대화하기 위한 교육가들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는 정보를 섬세하게 균형 잡힌 방식으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 집중력을 분산시키는 형식으로 제공한다.   디자인적 측면에서 볼 때 인터넷은 방해 체계, 즉 집중력 분산을 위한 기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다른 종류의 미디어를 동시에 펼쳐 보일 수 있는 능력 때문만이 아니라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쉽게 짤 수 있는 데 따른 결과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대부분의 이메일 응용프로그램은 5분 또는 10분마다 자동적으로 새로운 메시지를 체크하도록 되어 있고,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그보다 더 자주 "새 메일 확인" 버튼을 클릭한다.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는 회사원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이들은 새로 도착하는 이메일을 읽고 그에 답장을 쓰기 위해 기존의 읽고 있던 것을 끊임없이 중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이 한 시간 동안 자신들의 편지함을 서른 번 또는 마흔 번씩 열어보는 것이 특이한 일은 아니다(물론 얼마나 자주 메일함을 보느냐는 질문에 대한 그들의 답은 이보다는 더 적은 수치를 보였다). 각각의 확인 행위는 짧은 사고의 중단, 일시적인 정신적 자원이 재배치를 의미하기 때문에 인지적 비용이 높다. 오래전 이루어진 심리학 연구는 우리 대부분이 경험으로 알고 있는 바를 증명했다. 빈번한 중단은 우리의 사고를 분산시키고 기억을 약화시키며, 긴장한 상태로 안절부절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생각의 고리가 더욱 복잡할 수록 이 산만함은 더 큰 손상을 입힌다. (197p.)   인터넷 항해는 특히 정신적으로 집중하는 형태의 멀티태스킹을 요구한다. 우리의 작업 기억을 정보로 넘쳐나게 하는 것뿐 아니라 이 곡예는 뇌과학자들이 우리의 인지력에 ‘전환 비용switching costs’ 이라고 부르는 것을 부과한다. 우리가 관심을 전환할 때마다 뇌는 스스로 다시 방향을 잡아야 하고, 우리의 정신세계에 더 많은 고통을 가한다. 매기 잭슨Maggie Jackson이 멀티태스킹에 관한 책 『집중력의 탄생Distracted』에서 설명했듯이 "뇌가 목표를 바꾸고 새로운 업무를 위해 필요한 규칙을 기억하고, 이미 지나갔지만 여전히 생생한 활동에서 오는 인지적인 훼방을 막아내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198p.)   내가 아무리 그리워한다해도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없듯이, 스마트폰, 인터넷 공간을 떠나 ‘집중해서 읽는 독서가 열어준 조용한 공간’으로 돌아가기는 힘들다. 힘.들.다...정말? 정말 힘든가? 어째서? 너무 쉽게 포기하는거 아니야? 왜 그렇게 빨리 결론을 내버리는 거지? 아직 시간도 많은데? 누가 강요하는 것도 아니잖아? 누구한테 협박이라도 당하고 있는거야?   . . . 아니지. 그래 결코 그렇지 않지.   지난 20년 동안 이루어진 일련의 심리학 연구는 조용한 시골에서 자연과 가까이 하며 일정 시간을 보낸 후 사람들은 더 높은 집중력과 강력한 기억력, 그리고 보편적으로 향상된 인식을 보인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들의 뇌는 고요한 동시에 더욱 예민해진다. 집중력 회복이론Attention Restoration Theory에 따르면 그 이유는 사람들이 외부적인 자극의 폭격을 받고 있지 않을 때 뇌가 실제로 휴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래에서 위로의 산만함을 처리하면서 작업 기억을 혹사시키지 않아도 된다. 그에 따른 결과로 이루어지는 사색은 그들이 사고를 통제하는 능력을 강화시킨다. (316p.)   인터넷에는 슬리피 할로우도, 사색이라는 회복 마법을 부릴 수 있는 평화로운 지점도 없다. 끊임없이 마음을 사로잡는 도심 거리의 웅성거림만이 있을 뿐이다. 인터넷의 자극이 도시의 그것이 그러하듯이 활력과 영감을 줄 수도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기력을 빼앗아가고 정신적으로 산만하게 만들기도 한다. 호손이 이해한 대로, 사고의 모든 조용한 상태를 쉽게 압도해버린다. 우리 사고의 기능을 자동화하면서, 우리의 생각과 기억의 흐름에 대한 통제권을 강력한 전기 체계에 양도하면서, 우리 앞에 당면한 가장 큰 위험 중 하나는 과학자 조셉 와이젠바움과 예술가 리처드 포먼 모두가 지녔던 그 두려움과 관련이 있다. 바로 우리의 사람됨과 인간성이 점차 침식당하는 것이다.   깊이 있는 사고만이 고요함과 집중을 요하는 것은 아니다. 공감과 열정도 마찬가지다. (......) 학자들은 이 실험이 우리가 더욱 산만해질수록 인간의 가장 섬세하고 고유한 특성인 공감, 열정 등과 같은 감정의 경험은 더욱 줄어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한다.(317~319p.)   ‘끊임없이 마음을 사로잡는 도심 거리의 웅성거림’만을 따랐을때 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 책을 통해 나는 충분히 경고를 받았다고 느낀다. 이제 선택은 나에게 달린 것이다. 5~6년 전만 해도 "생각은 무슨 놈의 생각! 먹고 살기도 바쁜데! 인터넷은 무슨 인터넷! 그럴 시간 있으면 잠을 자겄네!" 했고, 3년 전만 해도 "스마트폰은 무슨 얼어죽을 스마트폰! 전화기가 전화만 되믄 됐지!" 했던 나다. 지금은? 언제 그랬냐 싶게 스마트폰 쓰고 있고 인터넷 장보기 도사가 다 되었으며, 된장찌개 끓이는 법까지 인터넷으로 검색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생활을 하고 있다. 버.젓.이.   그러나 나는 오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읽었다. 부족함이 없으면서도 늘 뭔가 쫓기는 느낌이고 불안하고 산만했던 이유를 알았다. 물론 그 모든 것을 인터넷 탓으로 돌리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나이 들어서 그런가 보다’했던 산만함의 원인 역시 ‘나이 탓’만도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되어 기쁘다. 원인을 알았으니 해결책도 나왔다. 남은 건 내가 그 해결책을 선택하느냐 마느냐,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고 실행하느냐 마느냐, 그것 뿐!   눈뜨면 세 가지를 켰었다. 불 키고 TV 키고 컴퓨 키고.. 내일 아침부턴 불하고 TV만 켜야겠다. 아니야 TV도 빼. 그래 낼 아침엔 일어나서 기지개 키고 불 키고, 모닝페이퍼 한장씩 쓰기 다시 해보는거야! 그래! 좋아! 다시 시작해! 생각, 생각, 생각! 다시는 누구한테도 "생각 좀 하고 살아라" 따위 말은 들어주지 않겠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