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시락은 말이오, 내가 초등학교 때 사용하던 거라오. 추운 겨울날 아침에 당번이 도시락을 전부 모아서 잡무를 보는 아줌마에게 가져가면 아줌마가 부뚜막에서 따뜻하게 덥혀줬지. 밥을 다 먹은 후에는 큰 주전자에 든 차를 당번이 도시락의 뚜껑에 부어 주었고. 뜨거우니까 다 먹은 도시락 통과 뚜껑으로 이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 식혔어. 나는 말이오, 도시락 뚜껑이란 걸 차를 마시기 위한 그릇이라고 생각했다오.

4학년이 되어서 급식을 먹게 되자 어머니가 한천을 만들 때 내 도시락을 쓰시더라고. 여기 보게나, 여기! 바닥에 칼자국이 막 나 있지? 이게 다 그래서라오. 지금까지 이 도시락이 남아 있어서 아내가 도시락을 싸준다니, 참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하하하.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 녀석의 도시락도 날마다 아내가 싸주지.

어릴 때는 어육 소시지, 계란말이, 감자와 콩 같은 반찬을 먹었다오. 그런데 말이오. 나는 눈에 띄는 걸 좋아해서 뭔가 특별한 걸 하고 싶어서 죽을 지경이었어. 그런데 어느 날, 친구 녀석이 우유를 가지고 온 걸 보고는 '어라, 그래도 되나 보네.'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난 기린 레몬(일본의 대중적인 탄산음료-옮긴이)을 가지고 갔지 뭐요. 병이 투명해서 예뻤거든. 그랬더니 다들 난리가 났어. 나는 우쭐대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런데 이게 뭐야, 병따개가 없는 거 아니겠소? 학교에서 여러 가지 일을 봐주는 아주머니한테 빌려서 어떻게 해서 따서 마시기는 했는데, 이번에는 도시락을 먹고 나니까 배가 살살 아프지 뭔가. 참 초등학생답지 않소? 잘 알겠지만 탄산음료를 아무렇지도 않게 시원한 표정으로 한 병을 마시는 게 여간 어려운일이 아니잖소?

난 뭐든지 다 잘 먹는다오. 음식을 먹어서 내 몸의 일부분으로 하는 것이야말로 식사를 만들어 준 사람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밥 한 톨 남기지 않으려고 무척 신경을 쓰는 편이야. 식사 후에는 늘 이 밥그릇에 차를 부어서 마시고. 도시락을 먹을 때도 마지막에는 차를 부어서 후루룩 하고 마시지. 초등학생 때도 마찬가지였소. 이렇게 하면 설거지를 하는 사람도 좀 편하지 않을까 해서 말이오.

수행을 할 때에는 채소만 먹는다오. 고기 대신에 두부 튀김을 넣은 카레라이스가 나오기도 하지만 카레라는 녀석은 참 알 수가 없어서 말이오. 마지막에 차를 부어서 먹으면 향신료 때문에 사레가 들리기도 하거든. 그래서말이지, 카레를 먹을 때는 제일 큰 채소절임 한 조각을 마지막까지 꼭 남겨두지. 그리고 마지막에 그걸로 접시를 깨끗하게 닦는다오.

우리 아버지는 현재 엔교사의 140대 주지라네. 할아버지도 주지셨고. 그 두 분은 내게는 너무나 위대한 존재라오. 나는 단 한 번도 스님이 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어. 대신 아버지는 "머리를 잘라라."고 말씀하신 적은 있지. 대학생 때 내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내려와 치렁치렁했으니까.

대학 때 말이오. 친한 친구가 먼저 저세상으로 가버렸소. 시골에서 올라온 그 친구의 아버지를 만났는데, 그떄 부모 자식 간이 아니면 통하지 않는 것이 있겠구나 하고 생각해찌. 그때가 바로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거요. 지금은 날마다 머리를 밀고 있소. 그때마다 반성한다오.

"오늘도 좋은 스님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일도 스님으로 있자."라고 말이오. (137~139p. '도시락에 뚜껑에 난 칼자국'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