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하하하하하하하.

이 부분이 바로 이 책을 통틀어 내가 가장 선명하게 느낀 '행복의 충격' 이다.

브라보~ 마르세이유 사람, 선장님!

 

알고 들어도, 몇 번을 들어도, 듣고 또 들어도 재미있는 이야기.

다 알면서도 또 해달라고, 어제 해줬는데도 오늘 또 해달라고,

할머니를 졸라대는 그런 이야기처럼,

다시 들어도 나는 또 푸하하하하하

빵 터질 것이다.

 

"거기가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아십니까?"

 

푸하하하하하....

 

*

낮에 슈퍼에 다녀왔다.

두시 쯤 나가서 세 시에 들어왔으니까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걸어서 다녀왔다. 햇빛이 뜨거워서 우산을 썼다.

그러고 보니 양산이 없구나.

폭염주위보가 내려진 날씨였고 시간도 낮 두 시...

나는 왜 하필 그 시간에 외출을 하였을까.

왜냐하면 하필 딱 그때 얼음 가득 넣은 유리컵에 콜라를 부어서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간절했기 때문이다.

 

'덥겠지? 저녁까지 기다릴까? 저녁이 되면 뭐 좀 나을까? 근데 어둑해지면 밖에 나가기 좀 그렇잖아. 어쩌지?' 망설이다 결국 다녀오기로 했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쓸 지 아니면 우산을 쓸 지 그것도 망설이다 결국 우산을 쓰기로 했다. 어쨌든 폭염주위보라잖나. 낮 두 시에서 네 시 사이에는 15분 이상 외출을 삼가하라잖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나서기로 하였으니 챙이 넓은 모자 정도로는 그 열기를 가리기 힘들지 싶었다. 차가운 물도 한 병 준비했다. 혹시 더위 먹으면 안되니까. 나도 모르게 더위 먹었다 싶으면 찬 물로 헹궈내야지. 뱉어버려야지. 생각하면서 한 병 가득 찬 물을 담아서 장바구니에 넣고 우산을 쓰고 반 팔 반 바지, 맨발에 샌들을 신고 집을 나섰다.

 

가면서 계속 '햇빛'을 생각했다. 오늘 햇빛은 눈부시진 않았다. 눈부실 수가 없었다. 너무 뜨거워서 우산 그늘 밖으로 한치도 얼굴을 내밀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햇빛은 햇빛이라기보다는 '직사광선'이라고 부르는 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햇빛은 맞아도 좋지만, 심지어 햇빛은 하루에 몇 분 씩이라도 맞아줘야 건강에 좋다고 들었다. 햇빛이 부족하면 비타민D 생성이 안되서 구루병도 걸리고 여성들이 두려워하는 골다공증도 걸릴 수 있다고.. 아무튼 그래서 햇빛은 일부러라도 맞으러 나가지만 '직사광선'은 꼭 피해야 한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오늘 직사광선은 내가 쓴 우산을 너무나 초라하게 만들었다. '빛'이 아니라 '열기'가 문제였다. 보통 같으면 슈퍼까지 15분 정도 걸리는데 오늘은 20분도 더 걸렸다. 공기 자체가 너무 뜨거워서 빨리 걸어갈 수도 없었고, 중간에 마을회관 앞 커다란 정자나무 그늘 아래서 숨을 돌리는 시간도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 와서 거울을 보니 얼굴이 원숭이 똥구멍이다.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씻으려고 옷을 벗으니 속옷은 물론이고 티셔츠, 바지까지 축축하다.

땀이 줄줄.. 샤워를 해도 더위가 가시질 않아 찬물로 몇 번이나 얼굴을 더 씻고 나왔는데도 아직도 빨갛다. 정말 대단한 열기다.

 

슈퍼 앞에 뻥튀기 장사가 있어서 사려고 다가갔더니 부부가 부채질을 하면서 앉아있었다. 아주머니가 반갑게 일어나 이렇게 더운데 뭘 사러 나왔느냐고 물어보신다. 왠지 쑥스러웠지만 콜라 샀다고 대답을 하니 하시는 말씀, "아이구우~! 이 더위에 콜라는 무슨! 매실엑기스 타서 마시면 되지! 매실엑기스 안 담궜어요? 찬 물이랑 매실엑기스랑 딱 5 : 1루 타면 딱 좋아. 여름에 배탈두 안나구 얼마나 좋은데 애들두 잘 먹구.", "그러게요. 그러구보니까 집에 매실엑기스 있는데.. 양념할 때 조금씩 넣어 먹느라고 양념칸에 넣어놨다가 깜빡 했네요. 아이구. 내가 미쳤지. 이 더위에 콜라 한 병 사러 여길 다 나오구." ...하지만 나는 집에 와서 찬 물 한 잔 마시구, 씻구 나서는 얼음 가득 채운 콜라를 한 대접 마시고 '끄윽~'했다는 거~. ㅋㅋㅋ

 

근데 잠깐, 내가 왜 갑자기 낮에 슈퍼 갔다 온 얘기를 했지?

아! 햇빛, 햇빛때문이었지.

'프로방스에 내리는 각종 햇빛의 감도'를 읽고 '대한민국 울산 북구에 내린 뜨끈뜨끈한 직사광선'을 얘기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나는 프로방스에 가 본 적이 없으므로 '프로방스에 내리는 각종 햇빛의 감도'에 대해선 무어라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오늘 울산 북구 한 마을에 내린 찜통이 따로 없는, 한 걸음 한 걸음 걸을때마다 내가 통째로 삶아지는 듯한, 그 뜨거운 열기에 대해선 정말 할 말이 많다.

 

그 뜨거운 햇빛을 받으면서도 싱그러운 느낌을 잃지 않고 있던 논의 벼,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꺽어다 바로 쪄먹었으면 싶었던 옥수수, 같은 밭에 있으면서도 한 쪽은 잎이 축 늘어지고 한 쪽은 양파을 뻗은 듯 씩씩하던 깻잎, 이제 막 작고 연한 연두빛 열매를 달아놓은 대추 나무, 내 얼굴만큼 빨갛게 잘 익은 방울 토마토, 햇빛 더 받겠다고 다투어 자라는 듯 보이던 고구마 줄기 잎사귀들, 호박을 감추고 있는 호박잎들, 호박꽃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림자조차 구경하기 힘들던 사람 사람 사람들.

 

울산에 와서 산 지 3년이 다 되가는데 이런 풍경은 처음이다. 누가 시켰다면 내가 과연 그 길을 갔을 것인가. "노우~~~~~~!" 앞으로는 누가 시킨다고 해도 안 가긴 마찬가지일 것이고 내 스스로도 그런 길을 나설 일은 없을 것이지만, 한 번은, 한 번 쯤은 괜찮았다는 생각이다. 다른 건 몰라도 아무튼 내가 그토록 강조해온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