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도끼다

 

저자 : 박웅현

출판사 : 북하우스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 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 1904년 1월, 카프카, [저자의 말],[변신] 중에서

 

 저자는 책의 서두를 위의 문구로 시작하고 있다. 책은 저자에게 도끼였다. 그의 얼어붙은 감성을 깨뜨리고 잠자던 세포를 깨우는 도끼. 그런 책을 통해 그가 속한 광고라는 분야의 아이디어를 얻었고 삶의 지혜를 되새겼다고 한다. 그런 그가 경기 창조학교에서의 강독회를 진행했던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처음 책의 제목에 끌렸고 그 다음으로 광고인 박웅현에게 끌렸으며 마지막으로 그가 읽었던 책들이 나에게도 도끼가 되어 꽂혔다.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 가장 오랜 기간 가장 여러 번을 읽었던 책이 아니었나 싶다. 이렇게 서평을 쓰기까지 3개월이나 걸린걸 보면 이 책이 나에게 준 의미도 제법 큰 모양이다. 책은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박웅현의 독서 강독회를 그대로 옮겨놓았다. 즉 대화체로 쓰여져 책을 읽는 내내 마치 박웅현님의 강연을 듣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럼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책은 전체를 8강으로 나눈다. 1강에서 저자는 이철수님의 판화집 <산벚나무, 꽃피었는데>를 비롯한 2권의 책과 최인훈님의 <광장/구운몽>과 이오덕님의 <나도 쓸모 있을걸>을 통해 감성을 열어준다. 특히 문장 하나 하나의 의미를 재 구성해서 해석해주는 저자의 강의는 왜 이 책의 제목이 <책은 도끼다>인지를 느끼게 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2강에서는 김훈님의 책들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김훈님의 경우 나도 애 독자라 대부분의 책을 읽었지만 저자처럼 섬세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자전거 여행>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그렇다.

 

 된장과 인간은 치정관계에 있다. 냉이된장국을 먹을 때, 된장 국물과 냉이 건더기와 인간은 삼각 치정관계다. 이 삼각은 어느 한쪽이 다른 두 쪽을 끌어안는 구도의 치정이다. 그러므로 이 치정은 평화롭다. (…) 냉이의 저항 흔적은 냉이 속에 깊이 숨어 있던 봄의 흙냄새, 황토 속으로 스미는 햇볕의 냄새, 싹터오르는 풋것의 비린내를 된장 국물 속으로 모두 풀어놓는 평화를 이루고 있다. – p80

 

 내가 <자전거 여행>을 읽었을 때 그냥 무심코 지나쳤던 문장을 저자가 다시 발견하게 해 주었다. 이처럼 문장 하나 하나를 찍어서 읽어 내려가는 저자의 책 읽기로 인해 김훈을 다시 들여다 보게 됐다. 2강에서는 김훈님의 <자전거 여행>을 비롯해서 5~6권이 소개된다.

 

 3강에 들어서 인문학의 근본인 철학적 소재로 눈을 돌렸다. 바로 알랭드보통이 그 주인공이다. 알랭드 보통의 경우도 국내에 널리 알려진 작가다 보니 다수의 책을 읽었으나 역시 나의 겉핥기 식 책읽기가 그대로 드러나는 강의가 아니었나 싶다. 3강에서는 알랭드 보통의 <불안>,<우리는 사랑일까>를 비롯해서 5권의 저서가 소개된다.

 

 4강은 다시 한국이 낳은 세계적 시인 고은님을 주목한다. 문화재 청장을 지냈던 유홍준님은 고은을 가리켜 “사실주의, 민족주의, 낭만주의가 한 몸으로 육화되어 던지는, 말 한마디가 시가 되고 마는 신묘한 경지의 시인”이라고 평했다고 한다. 저자는 4강에서 고은님의 <순간의 꽃>을 소개하고 있다. 솔직히 나는 시가 어렵다. 시를 좋아 하긴 하지만 시 속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됨을 느낀다. 짧은 문장속에 세상의 이치가 담겨 있으니 당연히 그럴만도 하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고은님의 시를 가볍게 풀어주고 있다. 그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나 보다.

 

 5강에 들어 저자는 지중해 문학을 소개한다. 국내 지중해 문학의 선구자인 김화영님을 비롯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등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작품들이 대거 등장한다. 지중해라면 쾌적한 기후와 아름다운 자연 경관으로 예로부터 서방 세계의 중심이 되었던 곳이다. 그런 곳에서 태동한 문학의 의미를 되세겨 본다는 것 자체로 상당히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6강은 밀란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전체를 구성한다. 이 소설에는 토마스, 테레사, 사비나, 프란츠, 네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속에 사랑, 철학, 역사, 정치까지 우리가 직면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모두 담아낸다. 특히 상위세계에서 살아가던 토마스가 테레사라는 여자를 만나고 결국 시골의 정비사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전체 스토리 구성이 매우 새롭게 느껴지는 소설이기도 하다. 이 책은 나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박웅현식 해설을 통해 다시 접하니 느낌이 새롭게 다가 왔다.

 

 7강은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가 그 주인공이다. 너무 유명한 작품이고 작가 또한 워낙 유명한 사람이라 대부분이 이 책을 읽었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나도 책은 읽었지만 좀 오래 되어서인지 다시 책을 상기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지금은 시간을 내서 다시 처음부터 정독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는 걸 보면 역시 저자의 해설이 탁월해서가 아닐까 ^^

 

 마지막 8강에 이르러 저자는 삶의 속도를 늦추자며 법정스님의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 하라>를 비롯 손철주님의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오주석님의 <그림 속에 노닐다>와 최순우님의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와 같은 작품들을 소개한다. 최근 내가 소위 필 꽂힌 분야라서 인지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음속에 깊이 새겨짐을 느꼈다. 그 중 한 문장을 소개한다.

 

 침묵의 위대함은 앞뒤의 음향이 만든다. 그림 속 여백의 의미심장함은 주위의 형상이 조성한다. – 오주석,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책 속에 등장하는 책들을 보다 많이 소개하고 싶은 욕심이 과해서인지 다소 글이 길어지고 말았다. 내가 이 책을 여러 번 읽게 된 배경에는 소개된 책이 좋아서 이기도 하지만 저자가 책 속 문장 하나 하나를 바라보는 시각 때문이었다. 자칫 그냥 지나치기 쉬운 문장을 저자는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주고 있다. 그것이 박웅현의 매력이고 이 책의 매력이다. 책장을 마지막으로 덮으면서 그간 내가 줄 치며 읽었던 많은 책들 속에서 나는 무슨 의미를 발견 했을까 하는 자기 반성을 해본다. 저자의 말대로 같은 것을 보고 다른 것을 생각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독서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노래하는 멘토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