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집짓기

 

저자 : 한귀은

출판사 : 한빛비즈

 

집 짓기는 기억의 리모델링이다!

 

책이 배송 되어 오던 날 아내는 택배 포장을 뜯어 내 책상 한쪽 귀퉁이에 이 책을 놓아 두었다. 그리고 다음날 내가 출근하면서 이 책을 놓고 가길 내심 바랬다고 한다. 이런 아내의 반응이 새로웠다. 왜냐하면 아내는 늘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내가 써놓은 리뷰를 읽어 보거나 나와 그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에야 책을 손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아내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인 것일까? 아내는 일단 제목이 와 닿았다고 한다. <엄마와 집 짓기> 지금은 재개발에 들어간 장인, 장모님이 살아오셨던 그 집을 와이프가 어린 시절에 장모님은 손수 지으셨다고 했다. 그때 얼마나 고생을 하셨는지 죽기 전에 다시는 집을 안 짓겠노라고도 했단다. 집 짓는 것이 어렵긴 한가보다. 또 있다. 아내는 ‘집 짓기는 기억의 리모델링이다!’라는 문구도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제 늙어가시는 본인의 엄마, 아빠와 함께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자신의 기억을 들춰내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이 책을 읽기 전에 아내와 집과 장소, 그리고 추억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 한귀은 교수님이 던져주는 톡톡 튀는 탱탱볼 같은 텍스트가 더욱 즐겁게 다가왔던 것 같다.

 

책 속에서 저자는 인문지리학자 이푸 투안을 인용해서 공간과 장소를 다음과 같이 구별한다.

 

공간(Space)이 한 개인에게 무의미한 곳이라면, 장소(Place)는 한 개인이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곳이다. 가령, 우리의 기억 속에 있는 어떤 사건이나 감정과 연관되어 있는 곳은 공간이 아니라 장소이다. 그래서 삶은 장소 만들기의 과정이다. 자기만의 안온한 장소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 p20

 

그래서 사람은 특정 장소에서 자신이 내면에 간직했던 기억을 떠올리거나 앞으로 기억하게 될 것을 만들어 가는 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저자는 집을 짓는다는 것은 삶을 다시 만든다는 것이고 단순히 예쁘고 좋은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새롭게 창조해줄 집을 상상하고 그것을 현현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저자가 책을 통해 독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순히 저자가 집을 어떻게 지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집 이라는 장소가 주는 내러티브를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다. 자신의 삶을 그저 묵묵히 살아가는 개개인들이 쉽게 표현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도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비슷한 것들이 하나쯤은 담겨 있을 것이라고 본다. 저자는 바로 그 부분을 자극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저자와 저자의 엄마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인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집 짓기에 관련된 책이 줄 수 없는 인문학적 통찰력을 담아냈다. 책에서 저자는 집의 의미를 생각하고, 그 집에 있을 자기 자신의 편안함과 행복에 대해 상상하고, 그러면서 자신이 즐겨 입는 옷처럼 꼭 맞고 보기에도 좋은 집을 짓는 것, 그것이 인문학적 집 짓기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담아낸 텍스트를 읽다 보면 이전에 출판했던 <모든 순간의 인문학>과 소재는 다를지 몰라도 저자의 텍스트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가끔씩 데자뷰를 느끼기도 했다. 또한 저자가 책을 통해 담아낸 사진들과 저자의 이야기는 나의 집과 내 가족의 이야기로 전이(轉移)되기도 한다. 가령 저자가 성장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는 내가 성장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로 치환(置換)되기도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결국에는 나에게도 내 이야기가 담긴 그런 집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그런 환상(?)에 빠지게 한다. 물론 나에게도 꿈은 있다. 나는 나와 딸아이의 이야기가 담긴 작은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장소가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눠주는 곳이 되길 꿈꾼다. 그저 꿈으로만 생각했던 것에 어쩌면 이 책은 용기라는 휘발유를 부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 저자가 썼던 다른 책들에서 내가 메모하고 줄을 쳐두었던 부분을 다시 읽어 보았다. 그것은 아마도 저자의 텍스트가 사람냄새 나는 그래서 더 없이 편한 인문(人文)학적 텍스트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런 느낌을 아내를 통해 받는다. 우리집을 실질적으로 경영하는 경영자로서 아내는 다양한 일들을 처리하고 의사결정 해야 하기 때문에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그래서 아내가 읽은 책들에 대해서는 그 평가가 사뭇 날카롭다. 그런 아내로부터도 저자의 텍스트는 사랑을 받기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한 아내의 평가는 또 어떨까가 사뭇 기대되는 순간이다.

 

“모든 건축 스타일은 자신이 이해하는 행복을 이야기한다.” <행복의 건축, 알랭드보통, 2011>

 

노래하는 멘토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