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으로 잘 알려진 그녀는 빼어난 용모와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다. 화담 서경덕의 제자 허엽, 그녀의 부친은 당대 최고의 문인이다.  허엽은 동인의 영수였으며, 삼남의 학식이 출중하여 지금까지 허균의 홍길동전 등 허씨집안의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다. 그런집안의 고명딸로 태어난 허소희, 그녀의 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허초희 27년의 짧은 생을 살았지만, 뛰어난 재주가 올가미가 되고, 시대의 규범이 날 선 칼이되어 재주있는 그녀를 난도질 하다.

	불 지펴진 가슴속이 부지직 타들어간다. 더 이상 볼썽사납게 불티를 날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게 아녀자가 걸어야 하는 생의 덕목이며, 울타리에 길들여진 열다섯 살 초희가 감내해야 할 마음가짐 인것을....
페이지 : 11

여자의 재주는 죄로 알고 살아가야하는 시대, 혼서지를 받아든 그 순간부터 그녀의 운명은 바람앞에 등불처럼 흔들리게 된다.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도 집안의 가세와 권세에 따라 혼인을 하는 관습, 피어보지도 못하고 나뒹군 그녀의 사랑이야기가 더 애잔하게 전해진다.

	불은 물을 뿌리면 끌 수 있지만 사랑은 불붙으면 끄기 어렵다 얼음은 녹지만 잃어버린 사랑은 그보다 더 차가워서 사람 마음속에 동상만 남긴다. 건드릴수록 아프고 시리다
페이지 : 44

혼인 후 시어머니의 시집 살이에 단아하고 고결한 그녀의 영혼도 마른가지의 서릿발처럼 온기를 잃어간다.

북향의 별채에서 온갖 구박을 받으며, 사랑으로 낳은 아이들을 먼저 앞세운 그녀는

세상의 모든 인연에 끊을 놓으려 한다. 무능하고 자격지심이 강한 남편, 계집질에 허송세월을 보내는 허울좋은 남편때문에 그녀의 인생은 더 외로웠을 것이다.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 시어머니, 남편, 시대의 관습과 규범이 원망스럽다.

얼마나 외로운 시간을 보냈을지, 읽는 내내 코끝이 찡하다.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페이지 : 353

여자 허초희의 생과 시인 난설헌의 생이 아슬아슬하게 흔들린다.

그녀의 세가지 한, 여자이기에 감내해야 하는 그 모진 세월이 시린 겨울같다.

"이따금 붓을 쥐고 초생달을 그리다보면 붉은 빗방울 눈썹에 스치는가 싶네"

부용화 같이 화려하게 피어 한여름 빗줄기에 떨어지는 꽃잎 같은 생!

그녀의 생은 짧게 흘렀으나, 그녀의 시는 천년을 지나도 향기를 잃지 않는다.

난설헌, 허난설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