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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쿵푸스] 고미숙, 그린비, 2007

1.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어떤 사람들은 책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찾으려고 한다. 책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 속에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찾고, 그를 통해서 위안을 얻으려고 한다. 그러나 책 속에는 정답이 없다. 어떤 책이든 그 저자가 고뇌하며 한 줄 한 줄 써내려 가는 동안, 글은 박제(剝製)되어버린다. 책은 그냥 종잇조각에 불과한 것이다. 어떻게 종잇조각이 살아 숨 쉬는 나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저자는 공부를 통해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으라고 한다. 그럼 공부는 무엇인가? 저자는 완벽한 독서가 공부라고 이야기한다.

이반 일리히에 따르면, 학교가 유포한 환상 중에 가장 나쁜 것이 사람들을 제도적 서비스에 길들이는 것이라 한다. 즉, 서비스가 좋아질수록 삶의 질이 향상된다고 착각한다. 63쪽

‘공부엔 때가 있어’라는 거짓말은 단지 연령의 문제가 아니라, 공부를 학벌과 자격증 혹은 취미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과 견고하게 유착되어 있다. 39쪽

저자는 현대 교육의 맹점을 비판하면서, 살아 숨 쉬는 공부 즉 완벽한 독서를 하라고 한다. 독서의 방법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암송과 구술을 통해서 완벽한 독서가 가능하다.

암송은 신장에서 뇌까지 신체의 전 기관을 역동적으로 회통(會通)시켜주는 기막힌 공부법에 속한다. 99쪽

이것이 곧 암송의 힘이다. [변신]이나 [오감도]를 눈으로 묵독을 하면 한없이 무겁고 진지하고. 또 난해해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지만, 그걸 소리내어 읽는 순간, 그 작품들은 전혀 다른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90쪽

시를 노래하도록 안도하는 것은 비단 그들의 뜻을 드러내게 만들 뿐만 아니라, 또한 그 뛰고 소리치고 휘파람 부는 것을 노래를 통해 발산하고, 그 답답하고 억눌리고 막혀 있는 것은 음절을 통해 펼쳐내게 하는 것이고, 글을 읽도록 인도하는 것은 비단 그 지각을 계발시킬 뿐만 아니라. 또한 침잠하고 반복하여 그 마음을 보존하고, 올렸다 내렸다 하며 소리를 내어 글을 읽어서 그 뜻을 펴게 하는 것이다. 91쪽 왕양명 [견습록] 인용

시각적으로 분절조차 안 되는 문장들이 소리를 거치면서 마치 실타래가 풀리듯 자연스럽게 그 의미를 드러냈다. 129쪽

암송과 더불어 중요한 공부법 하나가 구술이다. 구술이란 어떤 상황이나 문맥을 서사적으로 재현하는 능력이다. 달리 말하면, 대상을 장악하는 힘. 대상과 교호하여 새로운 국면을 연출하는 테크닉이기도 하다. 100쪽

이러한 방법은 저자가 만들어낸 새로운 방법이 아니다. 우리 선인들이 해왔던 독서의 방법들이다. 그럼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매일 같이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선택 또한 중요한 것이다.

고전이란 시대의 통념과 억압을 뚫고 삶과 사유의 눈부신 비전을 탐색한 전위적 텍스트를 말한다. 고전이 시대마다 서로 다른 의미망을 구성할 수 있는 건 바로 그 전위적 열정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고전이야말로 진정. ‘미-래’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77쪽

고전이란 인간 삶을 이야기한 것이다. 박제가 되어버린 글귀가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 썩어버리지 않고 남아있는 것이다. 저자가 이야기 하듯이 우리가 우리의 존재를 찾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읽어야 할 책들이다. 하지만 읽기가 난해하다. 문장은 딱딱하고 어려운 말들이 가득하다. 박물관의 동물 박제처럼 말이 없다. 느낄 수 없다. 박제가 되어버린 고전을 암송과 구술을 통해서 깨우고, 여기에 글쓰기와 토론을 통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완벽한 독서이다. 우리는 완벽한 독서 즉 공부를 통해서 고통스러운 삶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카프카가 말했듯이 추상적인 자유란 없다. 다만, 지금 나의 자유를 가로막고 있는 문턱이 있을 뿐, 그 문턱을 넘어설 때 비로소 그만큼의 자유의 공간이 열리는 법이다. 68쪽

진정한 자유의 문턱을 넘어서는 방법, 암송· 구술· 글쓰기와 같이 것은 혼자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책을 읽고 비판하며 사유하지 않는 것은 닫힌 문을 열지 않고 문턱을 넘는 것이다. 토론은 혼자서 할 수 없는 것이다. 저자는 앎이 얇고, 토론집단에 적응 못 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방법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밑천이 전혀 없을 때, 집단 속에서 신뢰를 확보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약속과 시간을 지킨다, 눈과 귀를 몽땅 열어둔다, 즐겁게 공부한다, 배운 만큼 실천한다 140쪽

우리가 좀 더 자세히 주위를 둘러보면, 책을 읽고 토론 할 곳은 많이 있다. 매일 같이 저자와 만남 같은 행사가 벌어지고, 도서관에서는 경쟁적으로 독서토론 클럽을 만들고 있다. 일단 그 문을 두드려 보기를 바란다.

저자는 고전을 읽자, 주장하고 있지만, 고전이 주는 특유의 거부감은 이 책에도 있다.

말과 몸과 삶이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 104쪽

우리 시대는 온통 시각적 스펙터클이 지배하고 있다. 100쪽

어떤 그룹이든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이는 ‘썰을 푸는’ 인간이다.102쪽

21세기 혁명의 거점인 사파티스타의 구호 또한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이지 않은가. 103쪽

연암의 친구이자 제자였던 이덕무의 아포리즘을 하나 음미해보자. 125쪽

그것은 내 공부의 여정에서 첫 번째 클리나멘(clinamen;변곡선) 이었다. 129쪽

사람이 어둠 속에 살고 있으면서 / 그 속에서 친구를 얻는다면 / 어둠 또한 좋은 것이 아니겠는가

예브게니 예프투션코 시(詩)

한자를 써놓은 사자성어는 책을 읽는 이에게 정확하게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하지만 외국어를 원어 없이 한국어만 표기해놓은 부분은 책을 읽는 이에게 거부감을 준다. 또한 외래어로 표기를 하지 않고 우리말로 써놓아도 될 부분도 많다. 이러한 무분별한 외래어 사용이 공부 좀 해 보려고 마음먹는 이들에게 절망을 준다. 그리고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에프투션코의 시(詩) 구절은 감성적 수필을 읽는 것 같은 느낌마저 준다. 책의 뒷부분에 이 책에 소개된 인물들에 관한 간략한 소개는 있으나, 저자가 참고한 문헌들에 대한 정리가 없어 난감하다.

책 읽기는 ‘꼬리물기’이다. 책을 읽고 나서, 바로 다음 책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다 보면, 책과 책이 통하고 어려웠던 책들이 보다 쉽게 다가와 내 사유를 더욱 넓힐 수 있다. 이 책의 뒤편에 참고 문헌을 정리해 놓았다면 꼬리물기가 더 쉽지 않았을까. 못내 아쉽다.

그럼에도 이 책은 좋은 책이다.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하고,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2. 고미숙

1960년 생으로 고려대학교에서 고전문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함. <수유+너무 남산>에서 공부와 우정과 밥 일치를 기획하고 있다. 저서로는 [호모 로퀜스], [호모 아르텍스], [재현이란 무엇인가], [근대와 만난 미술과 도시], 역서 [에드바르 뭉크]

끝-

2011.07.18

고미숙, 인문교양, 독서, 공부, 수유너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