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에서부터 인간의 어두운 면을 담은 이야기라는 것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는 얼굴은 살인이라는 범죄가  인간 내면의 어둠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뜻하는 듯 했다. 안으로 파여들어간 가슴에 그어진 대각선의 칼자국과 전체적으로 검은색과 붉은색의 적절한 배합으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잘 전달하고 있었다. (표지디자인의 어울림 ★★★)

조선시대의 생활사를 범죄수사와 법의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은 상당히 참신한 접근이었다. 무원록, 흠흠신서, 좌우포도청등록 등의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한 사건의 재구성을 통해 조선시대의 생활사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범죄의 동기는 유사성을 띄고 있다.그러나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관 아래 평가는 달라질 수도 있다. 이 책은 오늘날과의 차이점을 비교하며 그 시대의 가치관을 통해 조선을 재조명해 본다.  (관점의 참신성  ★★★)


조선 사회는 가부장적인 사회로  열녀문을 통하여 여성인권의 억압적 측면을 알 수 있다. 열녀가문이라는 것은 지조와 절개를 지키는 여성 최고의 명예였을 것이다.

2부 여성들의 살인에서 나오는 김은애라는 주인공은 명예와 절개를 목숨보다 중시했던 여성이었다. 이 책에 인용된 바를 따르면 여성들은 대개 나약하고, 편협한 성미라서 실행에 옮기는 바는 적다고 하는데, 김은애는 실행력이 강한 여성이었던 것이다. 결국 명예를 지킨 이러한 절개를 인정받아 임금의 명으로 특별히 사면받게 된다. 물론 지금 같으면 명예를 지키기 위한 살인은 형벌에 감안되는 면은 있더라도 사면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성의 절개를 강조한 조선시대의 가치관이 드러나 보이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끊임없는 악성소문으로 인해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몰아가는 안좋은 사건들을 볼 때 예나 지금이나 말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음을 깨닫는다. 

나는 이 책에 수록된 사진으로 열녀문이라는 것을 처음 보았다. 나름 멋있긴 한데, 오늘날 그러한 의미를 강조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다. 명예를 지키는 일은 대단한 선택이지만, 개인의 선택에 따른 것이므로 모든 사람들의 선택권을 보이지 않는 강압으로 나라에서 장려까지 할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여성의 차별적인 지위에 기반한 사회의 가치관이 반영된 것이니 이를 통해 그 시대를 조명할 수 있는 일종의 매개물이라 생각한다. (사진 자료 수록★★★)

흑백의 감옥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우리나라의 감옥의 역사는 삼국시대부터 영어, 뇌옥, 수옥, 부여의 원형옥이 기록되어 있다. 고려와 조선에 와서 전옥서라는 오늘날의 구치소와 비슷한 개념의 구금을 담당한 곳의 기록이 남아있다. 형벌은 잘 알려져 있듯이 태장도유사이며 은전적 성격이 가미된 속전제도등 일본이나 중국에 비교해서 상당히 인도적인 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 비하면 역시 열악한 상황이었다. 불결한 환경에다가 나라에서 옷과 음식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어서 가족들이 자비로 뒷바라지를 해야 했다고 한다. 

이 책의 4부에서 나오는 약노의 반옥사건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10년간 한 기구한 운명을 가진 여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김구선생도 백범일지에서 구금을 당하면서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고통을 견디기 힘들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10년이나 그것도 더구나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운명은 어떻게 보상받아야 하는 것일까.. 그래도 결국 풀려나서 다행이다. 아마도 무고한 옥살이를 하는 억울함이 고통의 삶을 이겨내게 한 듯하다.


증수무원록언해에 실려있는 인체도 이다. 이 그림 보고 웃었는데(생긴것도 웃기지만 명칭이 더), 자세히 보면 과학적이다. 앙면은 우러를앙(仰)자를 써서 앞면이고, 합면은 합할합(合)자를 써서 뒷면을 나타내고 있다.

나머지는 한글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눈섭,눈망울,뺨,발목,귓방울 등 현재 쓰는 명칭과 비슷한것도 있지만 쟈긔야미,흡박, 무구숫,로두,즌구레,겸인등 희한한 명칭이 재미있다.

무원록의 無寃은 원통한 일이 없게 하라는 뜻인데 이 책에 나오는 검법을 통해 조선시대에 살인사건을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었는지 알 수 있다.
초검이나 복검에 문제가 있으면 삼검이나 사검을 실시한다. 무원록 하권에는 사망사례별 특징 및 검험하는 방법등이 상당히 면밀하고 과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물론 한계는 있지만 이를 통해 조선의 과학수사기법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쓴 흠흠신서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은 오늘날의 살인사건 심리 실무 지침서라 볼 수 있다. 형법은 물론 수사과정 및 사체검험등 법의학적 면까지 두루 다루고 있다. 

어진 임금 정조는 행차시에 백성들의 민원을 접수하는 기회로도 활용하여  많은 사건들을 심리하기도 했다. 여러가지를 고려한 훌륭한 판결을 내린다.남긴 업적만큼 어진 임금이시다. 

이 책은 사료의 기록들을 바탕으로 작가의 글로 구성된 이야기를 통해 그 당시의 상황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요즘 역사를 주제로 한 이야기들이 많은데 이러한 역사서는 작가의 눈을 통해 구성한 것이라 볼 수 있다. EH카는 역사를 말할 때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자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 했는데, 이러한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역사는 역사가가 보는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될 여지가 많은 것이다.
앞으로도 새로운 관점에서 과거를 조명하는 역사 관련 저서들이 많이 출간되어서 우리것을 되돌아보고 우리역사에 흥미를 갖도록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