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살해당했다. 고등학교에 갓 들어간 아들 ‘히로시’는 목이 잘려 나가고 47군데 칼자국이 선명한 채 진달래 흐드러진 강둑에서 발견됐다. 범인은 학교 동급생이었다. 범인은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고 싶어서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범인은 이른바 ‘왕따’로 분류되거나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던 것이다. 1969년 4월 일본 도쿄 근교에서 일어난 일이다. ‘왕따 살해’의 시초쯤 될 것이다. 30여년이 지난 후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피해자의 가족을 찾아 그들의 삶을 취재, 그들의 고통을 논픽션으로 재구성했다.

손아귀에서 모래가 스르르 빠져나가듯 아들을 잃은 가족은 일순 평범함을 잃었다. 어머니는 1년 이상을 수면제에 의지해야 할 정도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중학생 딸에게 당시의 기억은 어둑한 집과 항상 잠들어 있는 어머니로 각인돼 있다. 딸은 “하교 후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지옥으로 가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딸은 세상에 대해 반항심을 일부러 키워가며 밖으로만 나돈다. 과묵한 아버지는 슬픔을 드러내지 않지만 피묻은 아들의 시계를 씻어 차고 다니고 아들이 구독하던 잡지를 계속 받아본다.

살얼음판을 걷는 가족에게 유일한 소망은 평범함이었다. 하지만 아들이 살해된 후 평범은 쉬 오지 않았다. 대화가 끊긴 가정은 어두운 침묵만 흘렀고 서로가 사소한 것에 상처를 받게 됐다. 가족들에게 아들의 죽음은 삶에 대한 사망선고나 다름없었다. 책은 가족, 친척의 육성을 통해 그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구성원을 잃은 가족의 삶이 얼마나 힘겨운지 체감해보라는 듯하다.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 가해자, 즉 소년범에 대한 처벌방식에 이의를 제기한다.

저자가 ‘히로시 살해 사건’을 좇게 된 계기는 1997년 일본 고베에서 발생한 엽기적 살인 사건이다. 고베의 한 중학교 정문에서 비닐봉지에 담긴 초등학생의 절단된 머리가 발견되면서 당시 일본은 충격에 휩싸였다. 범인은 언론에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보이겠다”며 추가살인을 예고했다. 사카키바라 사건이라 불리는 이 연쇄살인의 범인은 14세 소년이었다. 히로시 사건과 사카키바라 사건의 범인은 나이는 물론 범행동기도 닮았다. 사카키바라 사건 이후로 왕따 살해는 잊을 만하면 일본사회를 강타했다.

일본에서 소년범은 소년원으로 보내진다. 잔혹한 범행을 저질렀더라도 대부분 2~3년 만에 출소한다. 출소한 소년범은 일반인처럼 평범하게 사회 속으로 재진입할 수 있다. 소년범에게는 전력만 있을 뿐 전과는 없다. 일본법은 소년범을 교육과 보호로 충분히 교화할 수 있다는 사고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저자는 소년범 처벌방식이 너무 이상주의적이라고 말한다. 살인을 저지른 소년범에게 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히로시 가족의 경우를 통해 사회는 오히려 가해자보다 피해자들에게 더 무관심한 것이 아닌가 되묻는다.

히로시를 살해한 소년범은 출소 후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가 성인이 된 후 변호사가 됐다. 범인은 출소 후 히로시 가족 앞에 무릎을 꿇기는커녕 한번도 그 가족을 찾지 않았다. 되레 그는 살인현장에 만개했던 그 꽃, 진달래 화분을 사무실 베란다에 늘어놓고 있었다. 저자의 도움으로 범인과 연락이 닿은 어머니는 다시 한번 분노로 치를 떨어야 했다. 범인으로부터 돌아온 건 “돈이 필요하냐” 따위의 막말이나 일방적 무시였기 때문이다. 수십년을 고통 속에 산 히로시 가족, 또 무수한 유사 히로시 가족들에게 필요한 건 무엇인가.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 사뭇 묵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