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허삼관 매혈기>에 글자 그대로 '매료'된 나는 한국에 번역된 '위화'의 작품을 대부분 구입했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은 위화의 작품이 삶의 이야기로서의 소설(小說)의 모든 가능성을 다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설의 위대함은 작가의 의식이 아니라, 그 형식에 있다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노신이 말한 바대로, "분수에서 나오는 것은 물이며, 혈관에서 나오는 것은 피"라는 단순하고 견고한 진리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의 의식이다. 작가 자신을 포함한 독자의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은 혈관에서 쏟아지는 피라는 말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위화의 두 번째 장편 소설이자, 장이모 감독의 영화 '인생'의 원작이다. 다른 중단편집에서 보여주었던 삶의 잔혹함 혹은 처절함이 이 소설에도 재연되고 있다. 장편이 주는 무게감 때문에 중단편에서처럼 집요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말이다. 누군가 그의 이 작품을 가리켜 '그로테스크하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정확한 지적인듯 싶다. 분명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그로테스크한 것이 아닌가. 아울러 이 소설에는 <허삼관 매혈기>처럼 현대사를 짊어지고 살아온 중국 인민들의 삶과 역사가 담겨있다. 그러나 그들은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역으로서가 아닌, 역사에 이리저리 휩쓸려다니고, 변두리로 밀려간 주변인으로서의 인민들이다.

 

    이 작품의 말하는 이는 크게 두 사람이다. 한 사람은 민요채집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고, 다른 사람은 그 사람이 우연히 만나게 된 노인 '복귀'다. 물론 이 소설의 주된 이야기는 '복귀'의 입을 통해 전개된다. 노인은 자신이 짊어진 자신의 역사를 조심스럽게, 그리고 과장없이 풀어낸다. 도박에 빠져 하루아침에 재산을 탕진하고만 이야기, 병든 노모와 헐벗고 굶주리고 있는 아내와 두 자식을 두고, 국민당의 군인으로 끌려가는 이야기,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기와 문화혁명기 때의 이야기 등이 노인의 삶과 어울려 반추되고 있다.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사람은 살아가는 것을 위해서 살아가지, 살아가는 것 이외의 그 어떠한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라는 귀절-나는 그것이 언어유희로 생각되었다-이 있는데, 종국에는 생(生)의 절망적인 아이러니였다. 이 소설의 가장 깊은 맛이 여기에 있다; 노인은 한 사람의 생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절망을 겪었으나, 그는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자신의 삶 가운데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되살려냈다. 

   

    시각에 따라서 삶은 온전한 것일 수 있고, 또한 진흙탕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어느 것도 살아 있다는 것의 '위대함'이 담겨있는 시간이라는 사실이다. 도박으로 모든 재산을 탕진해버리고, 아버지마저 객사했을 때, '복귀'의 삶은 정확히 진흙탕이었다. 한치의 앞도 예견할 수 없는 절망의 가장 밑바닥의 삶. 그러나 어머니는 미물에서도 생(生)이 존재하고, 그 자체로 치유의 능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늘 땅 속에 있는 진흙이 사람에게 가장 이로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네. 곡물을 자라게 할 뿐만 아니라 만병을 낫게 할 수 있다는 거야. 어머니 말씀은 맞았어. 진흙, 그런 진흙탕을 우습게 봐서는 안 되는 것이, 그것은 온갖 병을 다 치유시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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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화는 전형을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밀려나고 소외된 사람들의 입을 통해 역사의 틈을 발견한다. 그것은 구체적이고 생생한 현실이며, 바로 우리의 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