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는다. 그리곤 조용히 한 발을 내딛는다.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과 잔가지들의 인사에 슬며시 미소 짓고는 이내 한 발을 더 내딛는다. 밤새 서늘했는지 보석 같은 이슬을 촘촘히 머금은 예쁜 야생화들과 이끼들이 나를 잡아 세운다. 뿌리치기가 미안해 잠시 가만히 서서 하늘을 보자니 어디선가 피아노 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예전부터 나와 하나였던 것처럼 퍼져나가는 음표들의 꼬리를 따라가다 보니 산중에 웬 집이 있다. 한 채도 아니고 세 채씩이나. 아름다운 선율에 이끌려 왔는데 이제는 태어나서 음식이라곤 먹어본 적이 없는 이처럼 미친 듯 식욕을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가 나를 괴롭힌다. 손가락 끝에도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끝에도 산나물의 알싸한 향이 스며들도록 깊게 숨을 들이쉰다. 그리곤 이내 감았던 눈을 살며시 떠보면 어느새 나는 다시 내 방으로 돌아 와있다. [효재처럼]이라는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이렇게 몇 번이나 산중과 내 방을 오가며 깨어나기를 아쉬워했더랬다.

 

 너무나 읽고 싶었던 책, 도톰한 두께와 빼곡히 들어차 있는 색깔고운 사진들, 그 덕분에 조금은 버거운 몸값을 자랑해 언제나 서점에 가면 만져보기만 했었다. 그러던 중 세월이 흘러 가격이 많이 가벼워져 언제 구입할지를 고민하던 중 남자친구에게서 선물 받게 되었다. 지나가는 말로 했던 이야기들은 언제나 사려 깊게 기억하고 있다가 선물해주는 그 친구 덕에 지쳤던 일상에서도 큰 위로가 된다.

 

 언젠가 티비에서 이효재님이 사시는 집을 본 적이 있었다. 머리카락 한 올 떨어지는 것을 가만두지 않으시던 그 분, 언제나 손을 바삐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고 계시던 그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책을 읽으면서도 그 장면들을 몇 번 씩이나 떠올렸다. 특별할 것 없는데 왜 이리 칭찬을 해주는지 모르겠다고 손사래를 치며 차리신 밥상들은 정성으로 가득 차 있다. 도시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산나물들과 농약 안 친 채소들을 야무진 손끝으로 무쳐 각상에 차리신 사진들을 보며 언젠가 나도 중년이라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시골에서 살아봐야겠다는 작은 소망을 품어본다.

 

 책이 좀 두껍고 무거웠는데도 읽는 내내 지루할 새가 없었다. 정말이지 특별한 것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부분들을 읽을 때면 '그러네, 정말 없네.'하고 생각하다가도 그 안에 들어있는 정성을 느끼고선 '역시나 아무 것도 없을 리가 없지.'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곤 했다. 다 읽은 후 책장을 덮고 나서도 아쉬움에 몇 번이나 들춰보게 되었던 책. 지금도 책장에 꽂히지 않고 내 침대의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언제든 읽고 싶을 때 손에 닿게 하기 위함이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어서 고맙고 상상 속에서나마 맑은 공기 마시며 방문해볼 수 있어서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왠지 욕심 같은 부질없는 감정들은 다 빠져나가고 감사하고 순수하게 생각할 줄 아는 좋은 마음들만 남아있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