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제현께 올림

<기타리스트와 베이시스트를 위한 이펙터 시스템 매뉴얼> 리뷰

by TKSY

(지면관계상 부득이 존칭은 생략토록 하겠습니다.)


1. 들어가며

- 조금은 진지한, 음향적 접근 : 초보자를 위한 장비 입문서가 아니다.

서점에서 이 책을 집어든 기타리스트라면, 겉표지 사진 속의 페달들에 현혹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진 속에 깔끔히 정리된 보드를 살펴보면, Free the tone의 Gigs Boson 오버드라이브, Providence의 Velvet Comp, MXR 올드 페이저, Eventide Timefactor, Ibanes PDM-1, Wammy등 고가의 탐나는 페달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페달 자체에 대한 부러움보다도, ‘아니 누구의 보드이기에, 누가 셋업한 보드이기에 이렇게 깔끔히 잘 정리되어 있지?’라는 의문과 감탄이 먼저 찾아든다. 언뜻 보기만 하여도 이 책의 저자의 실력을 눈치챌 수 있는 표지 사진이다. 이 책의 저자인 하야시 유키히로 씨는 저명한 음향 엔지니어로서, 호테이 토모야스(보위), 故 히데(X), 스기조(Luna Sea)등 수많은 유명 기타리스트들의 보드와 시스템을 셋업한 프로이다. 하야시 유키히로 씨는, 필자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일본의 유명 부띠끄 페달 제조사인 Providence에서도 개발을 담당하였다 하고, 현재는 요즈음 일본에서 상당히 핫한 브랜드인 Free the tone을 런칭하여 페달들을 설계하고 있단다. 최근 모 업체에 수입되어 들어온 Free the tone의 od계열 페달들을 테스트해 보았더니 묘하게도 Providence의 냄새(?)가 나서, circuitry가 유사한 것인가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개발자가 같은 분이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책의 저자가 상당한 실력자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책인가? 약간 도발적인 제목을 붙였지만, 거듭 말하건대, 이 책은 이펙터 초보자를 위한 개론서나 입문서가 전혀 아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위상계가 뭐죠? 와우는 어디에 두나요? 패치 싼거 쓰면 안돼요? 같은 질문을 하는 분들은 이 책을 구매하지 않는 것이 좋다. 본서에는 이펙터에 대한 개념 설명이나, 입문용으로는 어떤 페달이 좋다느니, 페이저는 어디에 쓰는 물건이라느니, 와우와 퍼즈는 궁합이 잘 맞지 않는다느니 같은 내용은 전혀 없다. 이 책의 주된 독자가 될 연주자들은 소위 짬밥도 좀 차고, 이미 보드를 짜고 해체하기를 수차례 이상 하였으며, 어디선가 그라운드루프 노이즈가 뜨는 것 같아서 독립접지 파워를 여러 차례 교체해 보고, 독립접지라고 샀는데 타임팩터를 돌릴 수 없어서 좌절도 해 보고, 좋은 파워라고 샀는데 미친 듯이 무거워서 팔아도 보고, 케이블도 이것저것 갈다가 결국은 자작도 해 보고, 임피던스값과 바이패스 종류에 따라서 위치를 설정하느라 몇날 며칠을 고민해서 결국은 최적의 셋팅을 찾아 보기도 하고, 그러다 어느 순간 케이블을 앰프에 그냥 꽂은 톤과 바이패스 톤이 현격히 다르다는 사실에 보드를 해체해 보기도 하고, 결국 다시 엄청난 보드를 짜고 거대한 루프 스위칭 시스템 센드리턴에 촘촘히 패치들을 꼽고 있거나 냉장고같은 랙과 GCP를 연결하고 있는 자기 모습을 보며 한숨 쉬는, 그런 tone freaks를 위한 책이다. 초보는 차라리 아니 봄만 못한 책이며, 이 책을 편다면 아마 두어 페이지 정도 읽다가 덮어 버릴 것이다. 솔직히 쓴소리를 하자면, 이 책은 철저히 음향 엔지니어들 내지는 톤괴물들을 위한 서적이며, 아마도 주된 독자층도 대략 그러할 것이라 생각된다. 거듭 말하지만 이 매뉴얼은 초보자를 위한 책이 아니다. 그러나 이 리뷰를 읽고 계신 당신이 페달질 중에 봉착한 어떠한 난관-예컨대 노이즈- 탓에 머리가 아픈 분이라면, 이 책은 당신께 엄청난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도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경험을 갖춘 진지한 연주자라면, 어쩌면 반드시 필요한 책일지도 모른다. 이 리뷰를 읽고 계실 톤-괴물들께 이 책은 구원이자 멸망으로의 열쇠일 것이다. 이 매뉴얼을 통해 페달질에서 맞닥뜨린 난관을 뚫고 나올 수 있으며, 그 breakthrough의 결과로, 지름신이라는 더욱 거대한 난관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말을 줄이자면 결론은, 톤에 좀 고민이 있던 분이라면 사시면 좋다! 그러나 책임은 못 진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린다. 더 많이 들릴수록 출혈은 더 큰 법.


2. 책의 간략한 구성과 내용

본서는 크게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제 1장 「시스템 기초지식」에서는 기타와 베이스의 시그널의 이해, 임피던스와 신호열화, 이펙터들의 바이패스 방식과 그에 따라 달라지는 이펙터간의 궁합 문제, 음질열화와 오디오적 접근의 문제점, 신호의 위상, 정상과 역상, 위상 반전, 레이턴시, 그라운드루프 노이즈 등 각종 잡음의 해결, 파워 서플라이 전원공급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제 2장 「시스템 개요」에서는 꾹꾹이를 배열해 보드를 만드는 경우의 여러 문제들, 랙을 쌓을 때의 여러 팁들 등을 다룬다. 제 3장 「시스템 제작 사례」에서는, 호테이, 스기조 등 유명 기타리스트드들의 보드나 랙 시스템을 셋팅한 경험에 대하여 상세히 밝히고 있다. 보다시피 제 1장부터가 음향장비에 대하여 매우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다. 구성이 약간 산만한 점은 있으나, 상당히 진지하게 전문적인 음향적 · 전기적 지식들을 전달해 주고 있다. 독자가 이미 수 차례 보드를 꾸미면서 겪었을 만한 어려운 점들, 예컨대 왜 노이즈가 사라지지 않는가, 왜 트루바이패스 페달들만을 사용했는데도 열화와 노이즈가 일어나는가 등의 문제를 저자는 프로다운 시각에서 매우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제 1장에서 얻은 음향적, 전기적 기초지식을 바탕으로 2장에서는 실제로 본격적으로 보드를 꾸릴 때 맞닥뜨릴 수 있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 줄 소중한 팁들을 기술하고 있다. 3장에서는 마치 이론을 배운 후 실전에 적용하듯, 저자가 실제로 셋팅한 보드들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톤-괴물들에게는 너무도 매혹적인 책이 아닐 수 없다! 평소에 고민하던 사안들을, 그 원리로부터 해결책에 이르기까지 상세히 기술해 두었기에, 많은 경우 이 교재를 정독하면, 자신이 구하던 해답을 찾을 수 있다.

3. 톤괴물?

잠깐, 톤-괴물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자. 소위 ‘페달질’, ‘장비질’을 더 하는 사람도, 덜 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기타리스트 치고 톤에 대한 갈망이 없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모든 톤이 손끝에서 나온다는 식의 폭력적인 논리는 접어 두자. 어차피 당신은 Allan Holdsworth 도, Jeff Beck도 아니다. 대부분의 우리들의 손가락은 George Lynch나 Andres Segovia의 그것보다 짧고, Yngwie의 그것보다 느리며, Zakk Wylde의 그것보다 연약하다. 또한 ‘그들이 저렴한 장비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그래서’ 그들이 좋은 톤을 뽑는다는 의미인 것은 전혀 아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장비들을 막 쓰는 것도 아니다. '막기타로 R9+덤블톤 뽑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일 뿐이다. 실제로 절대 다수의 유명 연주자들은 전문 음향엔지니어들과 유명 업체들로부터 상당히 조심스런 모디와 셋팅을 거친 페달을 사용하며, 별 것 아닌 듯 보이는 페달보드를 하나 꾸릴 때에도, 엔지니어들과 협의 하에 음질 열화, 임피던스 매칭, 노이즈, 톤 컬러 등을 조심스레 맞추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고집스레 혼자 힘으로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톤메이킹에 어지간히 자신이 있다고 해도 노이즈 등의 문제들은 여전히 불안스런 일이다. 좋은 장비에 대한 갈망과 투자, 음향적인 지식과 장비에 대한 이해 없이는, 소위 말하는 ‘방구석 기타’의 아마추어리즘에서 벗어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시간과 비용의 투자란 가볍게 생각할 만한 일은 아닌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서는 진지한 태도로, 너무도 탄탄한 지식과 기본기를 갖추게 해 준다.(또한 지갑을 열게 하여 주기도 한다!)

4. 페달질 雜說

페달질이라는 취미는 너무도 매력적이지 않은가? 꾹꾹이, 이렇게 심미적인 만족감을 주는 오브제가 또 있을까. 소리가 아름다우니 귀가 즐겁고, 외관이 멋지니 눈이 즐겁다. 페달질에 미쳐 보낸 시간이 적지 않았는데, 약간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보겠다. 예컨대 공간계 중, 딜레이라는 페달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 우리 모두 어느 때인가 딜레이가 걸린 사운드에 가슴이 날카로이 베이는 듯한, 둥둥 떠다니는 듯한, 눈물이 흐를 듯한, 따뜻이 ‘힐링’되는 듯한 느낌을 받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거기에서 고뇌는 시작된다. David Gilmour가 Time을 연주할 때의 딜레이 솔로톤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반해 버렸다면, 그 톤을 추구하고 싶다면, 과연 연주자는 저 전설의 Binson Echorec을 살 것인가. 에코렉은 상태에 따라서 수천 달러에서 이만 달러를 호가한다. 수천만원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대체품을 찾지 않을 수 없다. 현재 필자가 사용중인 딜레이는 노바딜레이, 보스 dd-2, dm-2, skreddy echo, guyatone flip tube delay, providence chrono delay 이다. 이 장비들 중에서 길모어의 에코렉 톤과 유사한 배음을 가장 잘 뽑아내 주는 것은 PT2399칩을 사용하며 Warble기능이 갖춰진 Skreddy의 Echo이다. 다만 Echo는 하이게인 프리앰프류의 페달들과는 보통 상성이 좋지 못하여, 필자는 부득이 보드에 루프를 물려 2~3대의 딜레이를 셋팅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저렴하게 보스의 디지털 딜레이로 여행을 시작해 보고자 했다. 구하기 쉬운 dd-5, dd-7부터 시작하여 dd-3, dd-20까지 사용해 보았으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몽환적이고 따뜻한 배음과 테입스런 사운드는 디지털로는 결코 구현할 수가 없었다. 아날로그 딜레이의 질감을 찾아야겠다고 고민한 끝에, 처음 시도한 아날로그 딜레이인 EHX memory toy는 흐리멍텅한 질감, 고질적인 볼륨 부스트 등 그야말로 실망스러웠다. 빈티지 Memory man은 꽤 마음에 들었다. Ad-9은 생산 시기에 따라 큰 소리편차를 보여 주었다. 요즈음 생산된 Ad-9은 과연 이것이 80년대 그 전설의 Ad-9의 리이슈가 맞는가 의문이 들 정도이다. 그리곤 어렵사리 보스의 dd-2를 구해 보았는데 디지털 딜레이임에도 당시 보스의 rack딜레이 시스템에 들어가던 dsp칩이 들어간 것으로 상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따뜻한 사운드를 뽑아 주었다. 보스의 dm-2역시 명기였다. Mad professor의 deep blue delay(pcb)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다 못내 아쉬운 마음에 한 단계를 올라가 보기로 한다. 결국 신품가격 4~60 만원대의 Strymon brigadier, Eventide Timefactor, Empress Superdelay, Timeline, Providence, Skreddy 정도에 가서야 간신히 안식을 찾을 수 있었다. 적어도 삼십대 이상의 딜레이를 사용해 본 것이다. 그러나 Sib Echodrive, Analogman delay, Diamond Memory Lane 등 써보고 싶은 딜레이가 너무도 많다. 아직도 필자는 딜레이에 대하여, 장비에 대하여 목마르다. 반쯤 미쳤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으나, 필자에게 이것은 일응 진지한 탐구이며, 자기 안으로의 침잠이며, 영적인 여행이다.

5. 이 책의 목적 : 페달질의 完成!

페달 각각에 대한 본격적인 지식은 전술한 바대로 이 책에 나와 있지 않다. 어떤 딜레이가 더 따뜻하다든지, 어떤 opamp가 탑재된 버전의 디스토션이 더욱 거칠다든지 하는 것은 순전히 경험과 취향의 영역으로서 전적으로 스스로가 경험해 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예컨대 필자는 lm308n칩이 박힌 초기 rat2가 op07dp가 박한 후기 미제랫보다 월등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최근, 매우 조심스럽게 두 대를 비교해 보고, op07dp의 후끈한 소리가 lm308n버전의 따뜻하고 자연스러운 소리 못지않게 좋다는 쪽으로 마음을 바꾸었다. 물론 기본을 갖추지 못한 페달들은 그야말로 몹쓸 소리가 나지만, 상당수의 페달들은 이처럼 조심히 셋팅하여 잘 사용하면 굉장히 좋은 소리를 뽑아 준다. 이 책은 그러한 측면에서 궁극적인 기본기를 다지게 해 주는 것이다. 예컨대 디스토션을 ts-9로 부스팅할 때에 위치의 pre/post에 따라 게인부스트가 되는 것과 볼륨부스트가 되는 것이 다르며 ts-9의 특유의 착색감이 묻는 것은 어떠하고 이것은 바이패스 상태에서도 버퍼 특성을 탄다거나 808은 9보다 더 투명하다는 등의 실전 지식은 이 책에 나와 있지 않으며 알아서 몸으로 익히는 수밖에 없다.

이 책의 목적은 바로 이것이다. 페달질의 궁극의 완성! 얇다고 얇은 것이 아니다. 예컨대 본서에는 패시브-액티브 픽업 간의 기타 시그널의 전기적 특성 차이, 드럼과 베이스가 사운드 간섭이 일어날 때의 해법, 그라운드 루프 노이즈를 막기 위한 방법, 전원 트랜스로부터 거리를 띄워 트랜스의 자장(磁場)에서 형성되는 노이즈를 피하는 일, 다운트랜스의 용량을 앰프헤드의 그것을 고려하여 마련할 것, 패치케이블을 셋팅할 때에는 지나치게 휘지 않게 하고 케이블 팁 끼리 붙지 않게 하며 혹여 붙여서 셋팅하게 될 때에는 절연 테입을 감아 노이즈를 방지할 것, 페달에 들어있는 다이오드 중에 물리적 충격에 반응하는 것이 있다는 점 등, 그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매우 깊이 있는 알짜배기 지식들이 가득 담겨 있다! 아는 만큼 들릴 것이다! 본서를 통해 페달 셋팅 중에 고통 받는 많은 기타리스트 중생들(?)은 일응 깨달음을 얻을 것이며, 또한 지름신을 영접하게 될 것이며, 페달질을 완성하게 될 것이다.


십 년간 페달질을 했으나 당신이 모르던 것들이, 이 책에는 들어 있다.
앞으로 십 년간 페달질을 더 해도 당신이 모를 것들이, 이 책에는 들어 있다.

진지하게 음향적인 탐구를 하시는 분, 장비병 탓에 유튜브를 하도 많이 시청하다 보니 기타월드 폴, PGS 앤디가 친구처럼 느껴지시는 분, 톤 고민에 잠 못 이루시는 분, 밤새 보드를 꾸리고선 퀭한 얼굴, 다크써클이 발끝까지 내려온 모습으로 출근하는 여러분께.

소금물을 들이켜도 또 들이켜도 목말랐던 당신께, 목마름은 가시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드리면서,
일독을 권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당신의 解渴을 기원하며.

짧지 않은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終

이펙터, 랙, 시스템, 음향, 실용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