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우리소설 시리즈 6번째 ‘끝나지 않은 사랑’은 ‘안생전’, ‘주생전’, ‘하생기우전’, ‘월단단’,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을 수록하고 있다. 이 여섯 편의 작품은 15세기와 16세기에 쓰인 애정소설이다. 같은 애정소설을 담고 있는 시리즈의 첫 번째 ‘사랑의 죽음’과 비교하면 그 시대적인 배경이 다르다. ‘사랑과 죽음’에는 17-18세기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지만 ‘끝나지 않은 사랑’에는 15-16세기의 애정소설이 담겨있다는 점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안생전은 조선 초기의 문신인 성현이 지은 소설이다. 서울 명문가 출신의 안생은 아내를 잃고 혼자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재상댁의 여종이 미녀라는 소문을 듣고 그녀에게 청혼을 하게 된다. 그 소식을 듣게 된 재상은 안생의 아내를 잡아 가둔다. 안생을 아내를 만나기 위해서 밤마다 담을 넘게 되는데 그러한 노력에도 결국 안생과 아내의 사랑은 비극적인 결과를 맺게 된다. ‘안생전’은 짧은 작품이지만 사랑하는 두 남녀와 이를 방해하는 캐릭터의 갈등이 함축적으로 잘 묘사되어 전형적인 애정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래서 더욱 흥미로운 작품이다.

그리고 여러 작품 가운데 특히 주목할 소설은 ‘주생전’이다. 주생전은 16세기의 시인 권필이 지은 소설이다. 권필은 허균과 조위한 등 당대의 대표적 문인들과 가깝게 지냈다. 풍자시에 능했는데, 광해군 초기 외척의 방종을 풍자한 시를 지었다가 유배형을 받고 귀양 가는 도중에 생을 마쳤다고 한다.주생전은 그 배경이 한국이 아닌 중국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과거에 관심이 없는 주생이라는 사람은 배를 사서 강과 호수를 오가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린 시절 알고 지내던 기녀 배도를 찾아가는데 서로에게 연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배도가 자주 찾아가는 승상댁 딸 선화에게 반한 주생은 비도는 안중에도 없고 몰래 선화와 사귀게 된다.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된 배도는 몹시 화를 내고, 다시 배도에게 돌아온 주생은 선화를 잊지 못해서 괴로워한다.

이처럼 주생전은 남녀의 삼각관계가 소설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한국소설사에서도 남녀의 삼각관계를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은 이 작품이 처음이라고 하니 작가의 상상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삼각관계를 통해서 드러나는 캐릭터의 묘사가 잘 어우러져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 아닌 결말과 이별을 반복한다는 점에서 그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 읽어보더라도 새롭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몇세기전에 이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사상 그리고 사랑이 녹아든 고전소설을 읽으면서 잠시 동안이지만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다녀온 듯한 착각을 느끼는 감동이 아마도 고전소설이 주는 매력일 것이다. 그리고 시대는 다르지만 그 당시의 순수하고 고귀한 사랑이 현대를 사는 독자에게도 느껴진다는 점에서 고전소설의 가치가 충분하리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