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고전에 관심이 있어서 세계 여러 나라의 고전을 많이 읽어보았지만 정작 한국인이면서도 외국의 친구가 한국의 고전소설에 대해서 질문을 한다면 뭐라고 대답할지 난감했다. 돌베개 출판사에서 나온 천년의 우리소설 시리즈는 기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작품을 포함하여 새롭게 시리즈로 재탄생한지라 나의 관심을 유독 집중시켰다.

 

천년의 우리소설의 시리즈 첫 번째는 사랑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러브스토리 모음집이다. ‘심생전’, ‘운영전’, ‘위경천전’, ‘옥소선’ 이렇게 네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고전소설을 읽는 독자는 이미 예상할 수도 있듯이 러브스토리라고 해서 모두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이 가운데 ‘옥소선’ 만이 해피엔딩이고 나머지 작품은 비극적인 결말을 보여주고 있다.

 

네 편 모두 흥미로웠지만 한 작품을 소개하자면 심생전을 들 수 있다. 심생전은 이옥이라는 18세기의 인물이 창작한 작품으로 짧은 작품이지만 비극적인 결말 때문인지 읽고 나서도 그 여운이 긴 작품이다. ‘심씨 성을 가진 선비’라는 뜻을 가진 심생은 서울에 사는 선비이다. 어느 날 그는 임금님의 행차를 보고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여종에게 업혀 가는 여인을 보게 되고 첫눈에 반하게 된다. 소녀의 집을 알게 된 심생은 밤마다 그녀의 집 담장을 넘어서 그녀를 바라만 보다가 날이 밝으면 돌아오곤 한다. 그렇게 20일이 지난 후 그녀 역시 심생이 자신의 집에 머물다가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둘의 사랑이 시작된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이 난다.

한문으로 창작되었다는 심생전 역시 짧은 분량의 소설에 심생과 여인의 심리 묘사가 미묘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한국의 고전소설이 지루하다는 일종의 고정관념을 날려버릴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심생전과 같은 18세기에 쓰인 고전소설, 특히 한문으로 쓰인 소설은 일반인이 읽기에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 수도 있다. 그리고 한문에서 한글로 번역이 어떻게 되는지에 따라 소설의 전달력 또한 차이를 보일 수 있을 텐데, 어려운 한자어와 낯선 단어의 사용을 최대한 줄이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보인다. 또한 이해하지 못할만한 한자어에는 각주로 해설을 달아서 한문을 전혀 모르는 독자가 읽더라도 거부감 없이 고전소설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라고 볼 수 있다.

 

소설은 그 시대의 산물이라고 했던가? 몇 세기 전에 이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사상 그리고 사랑이 녹아든 고전소설을 읽으면서 잠시 동안이지만 18세기에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느끼는 감동이 아마도 고전소설이 주는 매력일 것이다. 그리고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안타까워하는 것은 현대인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시대는 다르지만 그 당시의 순수하고 고귀한 사랑이 현대를 사는 독자에게도 느껴진다는 점에서 고전소설의 가치가 충분하리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