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2월 어느 날 세사르 롬브로소가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자신의 어머니의 살코기 맛을 본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식인종의 요리책’의 중심이 되는 장소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알마센 식당이다. 이 식당은 20세기 초 유럽에서 건너온 루치아노와 루도비코 카글리오스트로 형제에 의해서 개업하였고 한동안 형제의 탁월한 요리 솜씨 덕분에 세계 각지의 여행객과 저명인사의 인기를 누렸다. 그리고 카글리오스트로 쌍둥이 형제는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이민 온 마시모 롬브로소와 함께 일하며 ‘남부 해안지역 요리책’을 집대성하였는데 이 책은 고대 요리서적을 참고하여 기발한 레시피를 형제의 요리 기법으로 재탄생시킨 비장의 레시피북이었다. 그 후 알마센 식당은 여러 명의 주인을 거쳐 가면서 시련의 시기를 겪게 되는데 1930년에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이폴리토 이리고옌 대통령이 실각하고 파시스트 주의자들은 반대파들을 숙청하는 사태가 생기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회주의자들에게 비밀 장소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마시모 롬브로소는 투옥되어 사형에 처해지고 그의 아들은 형무소에 감금되었다. 알마센을 향한 시련은 1955년에 한차례 더 있었다. 후안 페론이 군부 쿠데타로 실각하고 자유혁명당 정권이 들어서자 페론을 지지하던 이들을 향한 테러가 속출하였고, 알마센은 사람들의 방화로 불에 타 식당을 이끌던 페데리코와 리베르탓 부부와 함께 전소되었다. 그 후 1982년 9월 21일 베티나 페리와 라파엘 가로팔로 부부가 고아가 된 세사르 롬브로소의 가장 가까운 직계가 되어 어린 세사르를 돌보게 됨과 동시에 알마센을 맡아 경영하게 되면서 알마센은 오랜 공백을 깨고 다시 식당으로서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1989년 열한 살이 된 세사르가 우연히 선조가 남겨놓은‘남부 해안지역 요리책’을 발견하게 되면서 자신이 가야할 운명의 방향을 결정짓게 되었다. 피는 못 속인다고 했던가? 천부적인 요리 감각과 열정을 물려받은 세사르는 17살 무렵 이미 알마센에서 일하는 주방장과 심지어 종이모부인 라파엘의 시기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요리사로 성장했고, 그는 아무도 상상조차하지 못한 새로운 요리에 도전하게 되는데…….

 

세사르 롬브로소가 어떻게 인육을 먹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전에 먼저 소설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엽에 이르는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의 혼란스러웠던 정치적인 역사를 배경으로 그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인생 역경을 보내었던 개인과 가족의 삶을 설명하고 있다. 단연 이 소설에서 인상적인 장면가운데 하나는 1951년 8월 15일에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영부인이자 우리에게는 ‘에비타’라는 이름으로 친숙한 에바 페론이 등장한 부분이다. 에바 페론이 알마센을 방문한 기념으로 생강과 쌀뜨물로 비린내를 없앤 생선과 모듬 조개꼬치, ‘린’백포도주로 간을 한 청어구이, 토마토소스를 곁들여 구운 왕새우 크레페, 검은 구스베리 시럽을 뿌린 아이스크림과 딸기로 장식한 꿀과자로 구성된 우아한 요리를 내오게 된다. 실제로 이러한 요리가 있는지 맛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며, 아르헨티나로 여행하게 된다면 한번 이와 비슷한 요리를 먹어보고 싶다는 간절함마저 생긴다.

 

아르헨티나 태생의 작가 카를로스 발마세다가 쓴 조금은 기이한 제목의 소설 ‘식인종의 요리책’은 제목만으로는 무슨 아마존 원주민의 식단을 기록한 책인 양 섬뜩한 느낌마저 드는 엽기 소설이 아닐까하는 추측을 가능하게 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문득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에 얽힌 일화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식인종의 요리책’은 독특한 제목만큼이나 흥미진진함과 동시에 20세기 격동의 세월을 보낸 아르헨티나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진지함마저 숨겨져 있는 매력적인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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