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읽었던 동화를 성인이 되어서 다시 읽는 것은 정말 행복한 시간으로 다가온다. 그 시절의 감수성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 들 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만큼 자라난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번에 만나게 된 ‘허밍버드 클래식’은 동시대를 호흡하는 문인(文人)이 번역을 담당한다는 것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진 웹스터의 <키다리 아저씨 Daddy-Long-Legs>는 소설가 한유주가 번역을 했는데, 특유의 설렘이 손끝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껴져서 참 좋았다. 거기다 진 웹스터가 직접 그려서 수록했던 삽화를 재해석하여 실은 것도 마음에 든다. 그리고 편지지를 모아놓은 듯한 지면 구성 때문에 때로는 내가 주디가 되어 편지를 쓰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 편지를 읽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고아원에서 살아가고 있는 제루샤 애벗(주디라는 애칭으로 스스로 바꾼다)에게 언제나와 마찬가지인 매달 첫 번째 수요일이 찾아온다. 후원자와 위원회 위원들이 방문하는 날이라 더욱 고된 하루를 마감하고 쉬고 있던 그녀를 리펫 원장이 찾는다. 그리고 그녀에게 그 날은 정말 특별한 날로 바뀐다. 주디가 쓴 ‘우울한 수요일’이라는 에세이를 본 후원자가, 그녀를 작가로 키우기 위해 대학으로 보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조건은 오로지 한 달에 한 번 감사의 편지를 쓰는 것~ 그렇게 그녀의 인생에 엄청난 행운이 찾아온다.

대학에 간 주디는 존 스미스라는 누가 봐도 가명인 이름이 아닌, 겨우 본 뒷모습으로 키다리 아저씨라고 부르기로 결정한다. 가을의 아름다움이 내려앉은 운동장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 중에 자신이 있다는 것에 기뻐하기도 하고, 고아원에서 읽을 수 없었던 책에 빠져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처음에는 낙제를 하기도 하지만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공부도 잘하고, 틈틈이 쓴 글이 잡지에 실리기도 할 정도로 재능을 보이기도 한다. 때로는 작은 것도 대답해주지 않는 키다리 아저씨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기대했던 야영장에 가지 못하게 해서 화를 내기도 하지만 주디의 편지는 시간이 흘러 다시 읽어도 재미있다. 키다리 아저씨가 그녀를 작가로 키우고 싶어한 이유가 이해될 정도라고 할까? 거기다 키다리 아저씨가 누구인지 알면서도 두 사람의 이야기에 마음이 설레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