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나의 1960년대'를 쓴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남다른 이력을 가졌다. 촉망받는 물리학자였다가 도쿄대 전공투 대표를 맡아서 야스다 강당 점거를 주도했다. 투옥된 이후에는 재야로 들어가 학원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며 과학사 연구에 매진했다. 그가 쓴 '과학의 탄생 : 자력과 중력의 발견, 그 위대한 힘의 역사'는 과학사가 얼마나 흥미로운지 깨우쳐 준 내 인생의 책이다. 또, '16세기 문화혁명'에서는 학자가 아닌 장인의 기술이 근대 과학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유럽인이 세계를 보는 관점을 바꾸었다는 사실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줬다. '나의 1960년대'는 요시타카가 전공투 시절을 회고하며 물리학 공부 및 투쟁 과정에서 깨우친 일본 근대과학사의 이면을 돌아보는 책이다. 믿고 보는 저자가 비판적으로 쓴 일본 과학사도 궁금했고, 나 역시 한때 학생운동을 했던 만큼 전공투 운동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알고 싶었다. 

 책을 읽고 나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전공투는 야스다 강당 점거가 진압된 후 파벌싸움이 극도로 치달아 살인까지 일어났고, 일부는 적군파가 되어 무장투쟁을 시도했다.    시민들과 멀어지고 현실과 괴리되어 점차 영향력을 잃어서 사람들은 이들을 잊었다. 반향은 컸으나 유산은 없었다. 서구의 68혁명도 성공하진 못했다. 그래도 경직된 유럽 사회가 자유로졌으며 환경, 여성 운동이 활발해지는 밑바탕이 되었다. 일본은 그러지 못했다. 

 그런데 저자가 경험한 60년대 일본의 학생운동은 내가 알던 전공투가 아니었다. 파벌이 있긴 해도 큰 목표를 앞에 두고 서로 협력했다. 야스다 강당을 점거한 기간 내내 운동 조직에 몸담은 사람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개인 자격으로 투쟁에 참가했다. 저자는 1960년 도쿄대에 입학해 그해에 일어난 안보투쟁에 나섰다.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일본은 1951년에 미국과 미일안전보장조약을 맺었는데 매 10년마다 갱신되었다. 1960년에 새로 조약을 갱신할 때 일본의 좌파들은 일제히 반대 투쟁에 나섰다. 일본학생자치회총연합(전학련) 지도부는 일본 공산당과 길을 달리하는 공산주의자 동맹(분트) 산하의 사회주의학생동맹(사학동)이었다.  이들은 이 조약이 일본 자본주의의 제국주의적 자립 과정이라 인식했다. 반면 공산당 계열 조직은 안보 개정이 미국의 이니셔티브에 의한 것으로 일본의 대미 종속이 더욱 심화된다 주장했다. 

 1980년대 한국 학생운동이 NL과 PD로 분화해 서로 사상투쟁을 벌인 내용과 유사하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서로 주장하던 바가 다는 아니었다. 대미 종속인 부분도 분명 있었고, 국내 자본이 성장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어느 쪽을 강조하는가에 따라 다를 뿐이다. 대학생 때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속한 진영이 내세운 논리를 만고불변의 진리로 여겼다. 돌이켜보면 그토록 싫어했던 반공에 매몰된 어른들과 다르지 않았다. 한국의 경우 진보 진영에서 이론적 차이는 별로 없어 보이는데도 서로 척을 지고 대립하는 이유는 과거의 감정이 남아서가 아닐까? 사람이 논리보다 감정으로 선택하고 행동하지만 진보를 기치로 내거는 이들답게 이성을 발휘하면 좋겠다. 야스다 강당 점거 후 도쿄대 학생들은 이곳을 해방구로 만들었다. 마치 광주항쟁처럼 말이다. 경찰기동대 진압으로 일어난 폭력만 유명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런 모습도 있었다. 정파를 넘어섰고, 개인 자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으며, 시간이 오래 걸려도 다같이 의사결정에 참여했다고 저자는 회상한다.

 이랬던 일본 전공투가 어째서 바뀌었을까? 자세한 내용을 모르지만 나름대로 생각해봤다. 야스다 강당 점거는 실패로 끝났다. 전공투가 내건 목표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대학 본부가 학생과 교원들을 통제하는 힘이 강해졌다. 대학은 국가와 자본에 종속되어 자율성을 잃었다. 야스다 강당 이후 벌어진 1970년 안보투쟁도 미일안보조약을 막지 못했다. 일본은 베트남 전쟁을 통해 고속성장을 지속했다. 투쟁은 거듭해서 실패했고 사람들은 경제 성장의 열매에 취해갔다.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은 이들은 인내심을 잃고 자신이 추구하는 바가 진리라 믿으며 외골수로 변모하지 않았을까? 마치 1996년 연대사태 이후 한총련이 걸은 길처럼 말이다. 사회 변혁의 꿈을 잃지 않은 사람들은 커다란 상처를 안고 있었다. 고통은 쉽게 나눌 수 없다. 같은 고통을 겪은 사람들끼리는 더욱 단단하게 결집하지 않을까 싶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겪은 고통은 다른 이가 겪은 고통과 같으면서도 다르다. 사소한 차이가 거대한 심연을 낳아 서로의 존재를 용납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전공투도 그러지 않았을까? 

 요시타카는 도쿄대 투쟁이 두 가지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고 했다. 하나는 바리케이드 안에 해방공간을 형성하여 일시적이나마 학생 간의 새로운 공동성을 창출하고 보잘것없더라도 자기 권력으로 한 걸을음 내디딘 점이다. 다른 하나는 과학 혹은 과학기술에 대해, 그리고 그 진보에 대해 그것이 절대적인 선이라는 메이지 이래 일본의 근대화를 뒷받침하고 대일본제국의 패배에도 상처 없이 계승된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을 대중적인 수준에서 시작한 점이다.

 나는 저자가 드러낸 근대 일본과학기술사의 어두운 이면에 빠져들었다. 나는 과학, 특히 물리학과 생명과학에 관심이 많으며 계속해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기를 바란다. 과학은 과학활동과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모든 활동은 정치적이며 사회적 의미를 가진다. 이 과정이 다른 사람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또, 과학자가 이 희생을 모른척한다면 그것도 문제라고 하고 싶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과학의 진보를 포기하는게 낫다. 벤야민이 역사철학테제에서 스탈린과 히틀러와 독일 사민당을 모두 싸잡아 비판한 이유와 같다. 과학의 진보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일본의 이공계 붐은 3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처음은 메이지 유신 직후, 두 번째는 1935년 이후, 제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일 때다. 세 번째가 저자가 도쿄대 물리학부에서 공부하던 1960년대다. 일본의 과학 발전은 연구라는 내재적 논리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정부, 군, 재벌이 이니셔티브를 쥐고 이끌었다. 그 중심에 도쿄대 이공학부가 있었다.

 메이지 유신을 주도한 세력은 쇄국정책 시절 서양과 충돌한 경험을 가졌다. 유신 이후 권력을 쥔 이들은 서양이 강한 이유가 과학기술이라 여기고 적극적으로 수입한다. 원래 공학은 장인이 하는 일이었다. 유럽에서도 19세가 후반에 이르러 공학이 대학 체제에 편입되었다. 일본은 처음부터 부국강병을 목적으로 과학과 기술을 수입했다. 전통 사족 계급이 장인이 하는 기술직을 천시하지 않도록 처음부터 배려했다. 일본이 서구 과학을 받아들인 시기는 정말이지 절묘했다. 그 시기-19세기 중엽-에 유럽에서도 고전역학이 통일성을 갖추고 교과서화 되었으며 물리학이 공학을 뒷받침하는 연구체계가 확립되었다. 일본이 과학을 수입하는 시기가 빨랐으면 중구난방인 과학체계를 받아서 제대로 소화할 수 없었으리라. 늦었다면 영영 좇아갈 수 없었고 말이다. 도쿄대, 즉 제국대학은 관료를 양성하는 목적에 과학기술자를 키워 활용하기 위한 목적도 가졌다.

 근대 일본 과학은 점차 군사상의 필요에 따라 군에 종속되었다. 해양학, 기상학, 통신기술, 병기학은 군의 요청으로 공학부에 설립되었다. 여기서 교육받은 이들은 전쟁으로 일본 민중들의 삶이 위태로울 때도 나름 좋은 대우를 받았다. 태평양 전쟁 시기에 일본은 기상관제도 실시했다. 시민들은 몇 년 동안이나 일기예보를 알 수 없었단 말이다. 이처럼 제국주의 시절 일본의 과학기술은 군과 정부, 그리고 산업계와 한 몸이었다. 책에는 소니 건립을 주도한 이들이 어떤 약력을 가졌는지 나온다. 대부분 공학부를 졸업해 전쟁 때 해군 장교로 복무했다. 

 일본은 2차대전 패전의 책임을 군인과 정치인이 지지 않고 과학에 책임을 돌렸다. 요시타카는 전쟁을 일으킨 책임을 질 생각보다 패전 이유를 과학에서 졌다고 생각하는 태도를 개탄했다. 어제 천황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한 일본정신으로 과학에 매진하자 말했던 과학자가 오늘 산업 진흥을 위해 과학에 매진하자 외치는 모습이 흔했다. 저자는 이 모습을 "과학이 사회 진보에 기여한다는 순진한 과학 절대 긍정과 과학자는 민주적이고 진보적이라는 자만"이라고 꾸짖는다.

 정인경 선생이 쓴 "뉴턴의 무정한 세계"라는 책에 한국이 서양 과학기술을 어떻게 수용했는지 눈물겨운 역사가 나온다. 우리는 일본을 통해 재가공된 서양 과학을 받아들였다. 일본은 그 이전에 자신이 받아들인 방식 그대로 필요한 일부만 우리에게 이식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과학기술을 수용하고 발전시킨 배경을 보면 합리적 과학기술주의와 열강주의적 내셔널리즘의 결합이다. 우리는 일본 방식에서 더욱 왜곡된 형태다.

 도쿄대 투쟁은 맨처음 의학부에서 시작했다. 1968년 1월 도쿄대 의학부와 청년의사연합(청의련)이 의사법 일부 개정, 등록의사제도에 반대하며 동맹휴학에 들어갔다. 이 투쟁은 후생성과 도쿄대 의학부가 추진한 의료 영리사업화를 반대하는 투쟁이었고 일본 의료의 미래를 둘러싼 싸움이었다. 대학 당국은 부당하게 학생과 연수 의사들에게 과한 처분을 내렸다. 계속되는 투쟁에도 결말이 나지 않자 6월 15일 전학투와 의학련의 학생이 야스다강당을 점거했다. 당시 도쿄대 총장 오코치 가즈오는 기동대 투입을 요청했고 17일 1,200명의 기동대가 도쿄대에 진입했다. 이 사건은 젊은 학생들이 보기에 대학 자치의 파괴였다. 대학 교수회가 이 사건에 대해 전근대적, 권위적 반응을 보이고 여기에 실망한 학생들은 전학투쟁연합을 만들어 7월 2일 야스다 강당을 점거, 봉쇄한다. 이때의 이백수십 명의 본부봉쇄실행위원회가 도쿄대 전공투의 첫걸음이다.

 이때, 요시타카를 비롯한 도쿄대 과학자들은 어떻게 일본에서 과학이 발전했는지 비판적으로 돌아보다 과학기술 발전의 핵심인 도쿄대 해체, 곧 제국대학 해체를 부르짖는다. 과학자의 '자기부정'에까지 이른 셈이다. 이미 이런 실례가 존재했다.

 실례 1) 미국에서 베트남 반전 운동의 일환으로 1969년 3월 군사 연구 최대 계약 대학인 MIT를 기점으로 약 30개 대학에서 '연구 정지' 운동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