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대학 시절 동아리 선배, 후배들과 함께 하는 독서모임을 이끌고 있다. 지난 번에는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책을 선정하는데 카프카의 작품을 꼭 모임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작년에 [소송]을 읽고 무척 카프카의 작품 세계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더 많은 그의 작품을 읽고 싶은데 다른 책들이 워낙 밀려 있다. 그래서 모임 주제로 하지 않으면 읽을 기회가 쉽게 오지 않으리라 여겼다. 

 카프카의 작품 속 세상에는 마법 같은 초자연적인 힘도 없고, 물리 법칙에 어긋나는 현상도 없다. 아! [변신]은 좀 예외겠다. 그럼에도 카프카가 창조하는 그의 작품 속 세계는 무척이나 기괴하다. 기괴함은 사람들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데에서 비롯된다. [소송]에서도 주인공은 왜 자신이 재판을 받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자 하지만 끝까지 알 수 없다. 주인공은 재판을 연기하려고 애쓰지만 그의 시도와 노력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런 과정들에서 그는 수많은 법원 내의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지만 그의 의도는 전달되지 않는다. 반대로 다른 사람들의 의도 역시 주인공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이들은 서로간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지칠 정도로 긴 대화들이 오간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한다. 또, 거대하고 촘촘하면서도 실제 효율은 낮은 관료조직의 압도적인 권위 때문에도 이들의 진심은 결코 타인에게 도달하지 못한다. 이렇게 카프카의 세계는 기이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어떤 단면을 절묘하게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그의 작품이 초현실적이면서도 지극히 현실감을 주는 까닭이기도 하다. 

 [성] 역시 [소송]처럼 한 개인이 거대한 관료조직의 권위 앞에서 부질없이 저항하는 줄거리이다. 이 작품은 카프카의 마지막 작품으로 미완이지만, [소송]이나 그의 다른 작품을 읽어 보았다면 결코 주인공이 작품 내에서 성공적으로 삶을 살게 되지 않으리라고 쉽계 예상할 수 있다. 주인공 K는 측량사로 베스트베스트 백작이 영주인 마을에 일자리를 제안받아 왔다. 그 마을은 ‘성’이라고 불리는 곳의 지배를 받고 있다. K는 자신의 일과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성’에 가려고 하지만 물리적인 길은 이상하게도 성에 닿지 않는다. 그는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성의 담당 관리와 접촉하거나 성에 가려고 하지만 그의 의도는 계속해서 가로막힌다. 

 마을 사람들은 절대적인 성의 권위에 짓눌려 있어 관리의 비위를 거슬린 마을의 한 가족을 최하층으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그런 사정을 잘 모르는 K는 자신의 관습적인 방법, 생각대로 행동하지만 그 마을의 관습이나 사고방식과는 다르기에 그는 답답하기만 하다. 반대로 마을 사람들은도 자신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들을 K가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자 당혹스럽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근원적 고통과 불행은 소통 불가능에서 비롯된 절망에서 비롯되는 바가 크다. 카프카는 이런 점을 그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 속에서 마치 전자현미경으로 세균이나 세포를 정밀하게 확대해 보여주듯이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도 그렇지만 K도 자신의 사고와 방식을 바꾸려고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기 멋대로만 해석한다. 얼마전 읽은 엄기호의 [단속사회]의 내용이 문득 떠오른다. 한국인들은 절실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공개적인 자리에서도 열정적으로, 감정을 주체 못할 정도로 격정을 토로한다. 그러나 그 뿐이다. 왜냐하면 다들 자신을 말을 하는데만 신경을 쓰고 들어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엄기호는 이 현상이 ‘편’만 있고 ‘곁’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카프카의 작품에서 주인공의 ‘곁’에 있다고 할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설령 가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도 타인들과 마찬가지로 진심 어린 소통이 부재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키려 길게 대화를 한다. 그런데 듣는 사람은 종종 대화 중에 관심을 딴데로 돌리거나 자신의 생각을 한다. 그리고 다 듣고서는 여전히 처음으로 돌아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채 자신의 말을 한다. 

 카프카의 작품에서 관료조직의 권위와 사람들에 대한 통제, 방대한 조직에 비한 심각한 비효율성 역시도 극대화된 모습이긴 하지만 너무 답답해서 오히려 속이 시원해질 정도로 잘 묘사되어 있다. 성의 관리가 모욕적으로 구애하자, 이를 거절한 막내딸 때문에 마을 사람들에게 따돌림 당하며 최하층으로 전락한 바르나바스 가족의 이야기는 권력이 직접 작동하지 않아도 권위에 복종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권력에 위협적이거나 불온한 요소들을 제거하는 방식을 꼼꼼하게 보여주었다. 관리들이 여관에서 일하는 모습의 묘사를 보면 수많은 이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지만 실제 이루어지는 일은 거의 없고, 그마저도 관리들, 하인들, 마을 사람들 상호간에 소통이 없어 비효율의 극치를 알 수 있다. 

 카프카의 작품을 읽고 소통과 관료제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진정한 비폭력적 방식의 갈등 해결, 즉 소통의 시작은 진심이라는 벤야민의 말도 떠오른다. 진심은 먼저 보여주어야 한다. 내가 먼저 나의 진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그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야 한다. 이것이 진심을 먼저 보여주는 일이다. 관료제의 대안으로 지역 사회의 자치 수준을 높이고,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도시의 삶은 이런 방식이 너무 어렵다. 우리가 현재 사회를 조직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어야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불가능에 가깝다고 해서 포기하기는 이르다. 그나마 있는 폐해를 줄이고 더 늘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끊임없는 견제가 중요하다. 

 최성만 교수의 벤야민 해설서를 정리하는 틈틈이 [성]을 읽었다. 벤야민이 카프카의 작품 세계계를 비평한 글이 앞으로 번역되어 나온다는데 무척이나 기대된다. 카프카의 다른 작품들 [변신], [아메리카] 도 빨리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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