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호프(1860 - 1904)는 러시아 작가로 단편 소설과 희곡으로 유명하다. 체호프 이전 단편 소설은 장편 소설의 그늘 아래에서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삶의 단면을 예리하게 잘라내 보여주는 단편의 매력은 체호프에 이르러 진가를 드러냈다. 요즘 단편 소설집을 몇 권 읽으며 단편만 줄 수 있는 글의 맛을 듬뿍 느끼는 중이다. 그래서 훌륭한 단편 작가들이 앞다투어 후예로 자처하는 체호프의 작품도 읽고 싶어 이 책을 들었다. 읽어보니 유머가 넘쳐 재미있다. 때로는 삶이 얼마나 무거운지 보여주었고, 삶이 얼마나 덧없고 허망한지 알려주었다.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세상이 잘 드러내지 않는 모습을 절묘하게 포착해 이야기로 들려준다. 왜 체호프가 등장하고 나서 단편이 문학의 주요한 요소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책에 수록된 첫 단편 <관리의 죽음>은 체호프 특유의 유머가 돋보인다. 주인공 체르뱌코프는 오페라를 관람하다가 갑자기 재채기를 하는데 하필 앞자리에 있던 높은 직위에 있는 장군에게 침을 튀기게 된다. 당황한 그는 장군에게 사과하고 장군도 사과를 받아들인다. 그런데 체르뱌코프는 장군이 자기가 일부러 침을 튀겼다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사로잡힌다. 그는 끈질기게 장군에게 접근해 거듭 사과한다. 장군은, 지극히 당연하게도, 이러는 그가 귀찮을뿐더러 생리현상에 불과한 재채기에 원한을 품는 사람으로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하게 된다. 화가 난 장군은 그에게 꺼지라고 소리친다. 체르뱌코프는 배에서 뭔가 터져버리고 모든 기운이 빠진 채 돌아온다. “그리고......죽었다.”

 

 이 이야기를 읽고 ‘불안’에 대해 생각했다. 체르뱌코프는 어리석게도 불안에 사로잡혀 일을 그르치고 영혼마저 잃어버려 죽음에 이른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영화제목처럼. 재채기는 생리현상에 불과하다. 이는 마치 자연재해와 같아서 인간의 의지가 닿지 않는 영역이다. 주인공이 이를 모르지 않았겠지만 자기가 폐를 끼쳤기 때문에 불이익이 돌아올지 모른다는 불안에 영혼이 먹혀버렸다. 그러면 주변이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불안을 해소하는 일에만 집착하게 된다. 불안은 대상이 뚜렷하지 않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 대상이다. 그러므로 불안을 해소하려 무엇을 하더라도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 집착하면 할수록 불안은 증폭한다. 

 

 불안은 두려움에서 나온다. 반면 희망은 기대에서 나온다. 사실 불안과 희망은 같은 메커니즘을 가진다. 둘 모두 불확실한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가지는 감정이다. 고대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다. 

 

“희망과 두려움은 모두 초조해하는 마음에, 먼 일을 생각하는 탓에 걱정하는 상태의 마음에 속하지요. 희망과 두려움은 모두 대부분 우리 자신을 현재에 맞추는 대신 먼 장래에 우리 생각을 투사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축복받은 인간에게 부여된 예지력이 저주로 바뀌는 것이지요. 야생동물은 자신이 실제로 본 위험으로부터 도망쳐 일단 그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고 나면, 더 이상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것과 도래할 것에 의해 똑같이 고통당합니다.”

 

 근거없이 두려움에 휩싸여 생겨나는 불안이나, 미래에 대한 장밋빛 희망이나 모두 인생을 불행하게 만든다. 행복은 ‘지금 여기서’ 느끼는 무엇이다. ‘희망고문’이라는 말을 생각해보라. 희망은 적절하게 포기할 때를 놓치게 한다.  삶을 바꿀 기회는 희망이 아니라 포기에서 온다. 그러므로 희망은 삶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마침내 희망은 절망으로 화(化)한다. 

 

 이 작품은 아주 짧지만 아주 사소한 행위로 생긴 불안이 얼마나 인생을 웃음거리로 만드는지 보여준다. 주인공이 죽었음에도 독자들은 슬퍼하는 대신 실소한다. 체호프의 단편은 사람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느냐에 따라 삶이 진중하고 아름다울 수도, 가볍고 허무할 수도 있다는 진실을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보여준다. 다른 단편은 어떤 이야기로 어떤 생각을 하게 만들지 궁금하지 않는가? 체호프의 단편을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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