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자 박홍규는 이 책에서 조지 오웰을 "수정의 야인"이라 표현했다. 맑고 투명하며 흠이 없어 보석으로도 취급받는 '수정'이 거친 들판에서 야성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는 '야인'을 수식하는게 어색했다. 무슨 의미인지 와닿지가 않았다. 이 책을 읽고 오웰의 삶과 작품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니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는 수정처럼 맑은 정신을 지녔으며, 부와 권력을 탐하지 않고 넘치는 생명력으로 거리낌없이 옳다고 믿는 일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의 삶은 매 순간이 극적이었다. 먼저, 그의 일생이 어떠했는지 간략하게 정리해야겠다.

 조지 오웰은 1903년 영국 하급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이튼 스쿨을 졸업하고 미얀마에서 식민지 경찰로 일했다. 오웰은 제국주의 통치기관에 있으며 식민 지배가 수반하는 억압과 차별에 염증을 느끼고 사표를 제출한다. 런던과 파리에서 수 년 동안 밑바닥 생활을 하며 르포와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1936년에 영국 북부 공업지대에 사는 실업자의 상태를 책으로 써보라는 의뢰를 받고 위건에서 탄광에 직접 들어가 탄광 노동자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노동하고 생활하는지 목격한다. 이 경험을 르포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 쓴다. 결혼 후, 스페인 내전을 취재하려는 목적으로 바르셀로나에 갔다가 바로 인민전선 정부를 지키기 위한 의용군에 입대한다. 오웰은 그곳에서 의용군 청년들이 가진 순수한 열정에 크게 감탄했고, 카탈루냐 인민들이 사회주의적 공동체를 일구어 나가는 모습에 감동했다. 그러나 아나키스트들과 공산주의자들 사이의 반목이 깊어져 끝내 시가전까지 벌어진다. 오웰은 유혈 사태가 발생하자 아나키스트 편에 선다. 이후 의용군과 함께하다 전투에서 목에 관통상을 입는다. 치료를 받는 중 아나키스트에 대한 탄압으로 체포 위기에 몰린다. 아내와 함께 스페인을 나와 영국으로 돌아가 집필 활동에 전념한다. 스페인 내전 참전 경험을 살려 <카탈로니아 찬가>를 썼다. 소련의 스탈린주의를 포함한 전체주의에 반대하며 <동물농장>과 <1984> 같은 소설과 다수의 평론을 남기고 결핵으로 1950년 숨을 거둔다.

 이튼 스쿨, 식민지 경찰, 빈민 생활, 작가, 의용군으로 스페인 내전에 참전, 인민전선 내부 아나키스트와 공산주의자 사이의 유혈반목, 전투에서 총상, 소련 비판. 하나하나가 다 굵직한 이야기거리다. 한 사람이 어떻게 이 모든 경험을 다 하고 글로 남길 수 있을까? 아득히 멀리 보인다. 그런데 저자 박홍규를 따라 오웰의 삶으로 들어가보면 그가 신화 속 영웅같은 존재가 아니라 때론 고뇌하고 때론 틀리기도 하는 한 인간을 볼 수 있다. (추남이라는 면모도 한결 친근감을 갖게 했다.)

 오웰은 미얀마에서 식민지 경찰을 그만둔 후부터 모든 억압과 차별, 전체주의 권력에 반대했다. 사회주의자를 자처했는데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아니라 무정부주의에 기울었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을 때, 아나키스트에 총을 돌렸던 공산주의자(소련 공산당에 충성하는)와 대립한 이후 전체주의적인 면모를 보이는 소련에도 등을 돌리고 비판했다. 저자는 이런 오웰의 사회주의 정신을 집약하는 말이 "decency"라고 주장한다.

 "이 표현을 '본질적인 품위, 무엇보다도 솔직함과 관대함'으로 이해한다. 어떤 도그마나 이데올로기에 의한 정치적 교조주의나 계획적 사회개혁 또는 종교적 절대주의 등에 반대되는 것이기도 하다."

 "오웰의 사회주의는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윤리적인 것이었다......인간적 품위란 기계 이전의 자연 세계에 대한 친화력을 뜻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감성적인 것이다. 그러한 사회주의는 보통 사람의 인간적 품위를 지키는 노동계급 문화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지 마르크스주의의 변증법이니 뭐니 하는 지극히 난해한 철학에 기초하거나 경제적 지식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다."

 저자의 설명을 들어도 잘 와닿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영영사전에서 "decency"를 찾아봤다.

 "polite, honest, and moral behaviour and attitudes that respect for other people"

 아하! 오웰이 말한 "decency"는 공자나 예수가 일찍이 설파한 "황금률"과 같은 개념이었다. 인간적 품위란 타인을 존중하는 행동과 태도이니까. 저자의 설명도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황금률은 이론이나 사상 이전에 지극히 윤리적인 가르침이며, 인류가 진화하며 집단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발전시킨 전략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평등이 무슨 의미인지 가장 잘 설명한다.

 오웰은 생애 내내 어느 한 정당에 충성하지 않았다. 공산당과 노동당을 오갔으며 아나키스트를 자처했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는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당시 사회주의 운동가들이 사용하던 관념적 언어를 비판했다. 그렇다고 오웰이 회색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도 신념에 철저했다. 노동자와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설 수 있다면 다른 것은 상관없었다.

 지식인이나 이론가는 이론에다 현실을 꿰어맞추는 데에 능하다. 오웰이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면서도 소련 공산당을 비판한 이유다. 그들은 스탈린의 이론에 따라 사회주의 혁명이 실현된다며 여기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없애려고 했다. 그래서 스페인 내전에서 좌파 사이의 내분을 민주적으로 해소하지 않고 폭력적으로 진압하려 했다. 오웰은 이런 태도는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나치와 같은 전체주의라고 보았다.

 전체주의 비판을 목적으로 쓴 소설이 <동물농장>과 <1984>다. 책을 읽으며 놀랐는데 이 두 작품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한국에 번역되어 출판되었기 때문이다. 좌우 대립이 격화되었던 1948년에 미국 정부가 판권료를 지불해서 반공투쟁의 도구로 쓰기 위해서였다. 그때부터 오웰과 가장 유명한 두 작품은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쪽으로 알려졌다. 반공을 목적으로 어린이들에게 동물농장을 권장도서로 삼던 시절이 꽤 길었다. 사회주의자가 소련뿐만 아니라 억압적 권력 일반과 전체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쓴 책이 반공 교재로 쓰였다. 그것도 군정과 군사독재정권 아래에서라니 지독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오웰의 생애뿐만 아니라 작품들도 비교적 자세히 다루고 있다. 앞으로 오웰의 작품 몇 권을 읽을 예정이다. 각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그때 다시 할 생각이다. 오웰의 생애를 이해하고 다시 읽는 그의 작품이 어떻게 다가올지 기대된다. 

박홍규, 조지오웰, decency, 1984, 위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