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가 이끄는 애플이 아이폰을 세상에 내놓은 후 10년이 지났다. 휴대전화와 컴퓨터가 합쳐진 스마트폰은 우리 삶을 뒤흔들었다. 애플은 세계 최고 주가를 가진 회사가 되었다. 아이폰이 대성공을 거두고 애플이 엄청난 수익을 올리자 스티브 잡스를 배우자는 열풍이 불었다. 그가 인문학을 기술에 접목해야 한다는 평소 소신을 가졌다고 알려진 이후 '통섭'은 반드시 이루어야 할 목표가 되었다. 그런데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통섭이란 무엇을 말하는걸까? 설마 양자역학과 내가 어제 읽은 카프카 소설을 결합하란 뜻은 아니겠지? 당최 무엇인지 개념이 서지 않는다. 지금 한국에서 떠드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통섭이란 구호만 있고 실체는 없다. 

 기본으로 돌아가보자. 위키백과에 따르면 "자연과학은 인간의 이성으로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방법으로 일반 원리를 추구해 나가는 과정과 그 과정에 의해 얻어진 지식체계를 말한다. 따라서 과학은 결론도 중요하지만,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고 나온다. 한편, 인문학은 "인간과 인간의 근원문제,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내 나름으로 요약하자면 자연과학은 논증과 증거를 통해 가설을 검증하는 과정을 거듭하면서 얻은 지식체계이다. 인문학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탐구한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관점도 달라진다.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면 과학이 탐구할 수 있는 영역도 변화한다. 한편 과학의 발달은 인간의 자기 및 세상 이해에 영향을 미쳤다. 결국 과학과 인문학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공존했다. 둘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근대 유럽에서 과학혁명이 일어난 후 발전한 과정은 단순한 지식의 축적만이 아니다. 과학사가인 저자는 책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갈릴레오와 뉴턴은 자연세계를 수량화하고 그 수량화한 개념을 가지고 실험하며, 실험에서 나온 결과를 다시 논리적으로 추론하여 이론화했다. 서양의 수학과 실험은 자연세계를 설명하는 언어이자 도구였다. 고전역학을 완성한 뉴턴의 업적은 유럽 지식인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가설과 독단을 배제하고 과학적 방법으로 우주의 질서를 찾아냈다고 여겼다. 이 성공으로 인해 인간은 이성의 힘으로 삶과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계몽사상이 세상을 휩쓸었다. 중세의 잔재는 급속도로 사라졌다. 다윈의 진화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역시 뉴턴 역학만큼이나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과학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과학은 기술로 부국강병의 수단이거나 일본제국이 식민지 수탈을 위해 강제로 이식한 도구였다. 저자는 이광수의 무정,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 등 당시 문학에 나타난 과학에 대한 서술을 통해 이를 보여준다. 우리에게 과학이 어려운 이유다. 과학은 우리 이야기가 아니라 남의 이야기였다.

이 책을 읽고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중 특허와 관련된 일을 하는 선배가 남긴 말이 인상깊었다. 직업 때문에 미국 판사가 쓴 판결문을 보게 되는데 한국의 판결문과 차이가 있단다. 판결문은 사실관계를 적시하고 법조문에 적용해 법리를 따지게 된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각 법조문이 애초에 탄생한 시초부터 그 법이 생겨난 취지, 취지에 따라 법을 적용한 사례, 만약 개정되었다면 어떤 시대적 변화 때문인건지 아니면 취지가 바뀐건지, 개정된 법이 적용된 사례가 무엇인지를 판결문에 적시한단다. 판결문의 대부분이 이런 내용이다. 어떤 법조문을 적용할 때, 기계적으로 하는게 아니라 왜 이런 조항이 생겨났는지 애초의 취지에 맞추어 한다는 말이다. 물론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수백년 역사를 다 살펴보지는 않는다고 한다. 나는 이것이 진짜 인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통섭도 미국의 판결문처럼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어떤 과학이론이나 기술이 있다면 그 처음 시작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무슨 영향을 주는지를 하나의 역사처럼 보아야 하지 않을까? 역사가 단순한 사실들의 집합이 아니라 이론과 해석으로 통합해야 의미 있다. 과학도 단순한 공식이나 이론만 받아들이면 단순한 사실들의 집합과 다름 없다. 과학은 새로운 지식들을 아는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며 이것은 곧 인문학이다.  

정인경, 뉴턴, 과학사, 인문학, 통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