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콜하스는 16세기 중엽 독일에서 말장수로 살았다. 그는 말을 팔러 길을 나섰다가 융커(대지주) 벤첼 폰 트롱카에게 억울하게 말을 압류당한다. 융커의 부하들은 말을 돌보라고 남겨둔 콜하스의 하인을 쫓아내고 말들을 혹사해 볼품없이 만든다. 이를 알게된 콜하스는 제대로 된 보상을 받고자 소송을 건다. 그런데 선제후 측근에 있는 융커의 친인이 소송에 개입하여 콜하스는 보상을 받지 못한다. 그의 아내가 선제후에게 직접 호소하고자 궁전을 찾았다가 경비병에게 맞아 상처를 입고 집으로 돌아와 죽는 일까지 벌어진다.  콜하스는 직접 융커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몇몇 하인과 함께 융커의 집으로 쳐들어가 일꾼들과 하인들을 죽이는데 정작 융커는 도망친다. 콜하스는 격문을 띠워 자신은 정의를 위해 융커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선포한다. 또, 자신의 정의로운 행동에 사람들이 동참하도록 포고하여 무리를 늘린다. 그와 부하들은 융커가 도망쳐 숨어 있다고 여겨지는 비텐베르크를 공격하여 인명 피해를 낸다. 독일 전역이 이 사태로 시끄러워진다. 루터(종교개혁의 그 루터 맞다)가 개입하여 콜하스와 선제후 사이를 중재해 콜하스는 사면권을 얻고 무리를 해산시킨다. 콜하스는 그간의 행위를 사면받고 융커에게 얻은 피해를 보상받아야 하는데 사건이 꼬이면서 제국 황제가 직접 개입한다. 콜하스는 다시 재판받아 사형을 선고받지만 융커에게 얻은 피해는 그가 원하는대로 보상받는다. 

 나는 이 소설이 근대성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생각한다. 막 종교개혁이 일어나던 16세기 독일은 여전히 중세의 질서가 지배하고 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주인공은 법과 제도에 기대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과거라면 세상의 질서가 신분에 따라 다르다는 현실을 따랐을 터이다. 그러나 그는 직접 자신의 정의를 실현하려 나선다. 귀족과 상인이 법 아래 동등한 개인이고, 법질서 집행에 권력과 권위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그가 원하는 정의가 실현된다. 이것이 근대가 약속하는 모습이 아닌가? 콜하스와 그의 무리가 폭력을 써서 그가 믿는 정의를 이루고자 하는 과정은 근대적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준다. 또한 근대는 위로부터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 쟁취해야 한다는 예언이다. 

 콜하스가 근대적인 세계를 추구하며 원하는 일을 실현하는 과정은 근대성의 위험도 보여준다. 그가 도시를 공격할 때 희생된 주민과 군인들은 콜하스가 믿는 정의를 이루는 과정에서 희생양이 되었다. 주체가 아니라 재수없이 희생된 대상일 뿐이다. 근대성은 이성과 합리에 뿌리를 둔다. 그러면 이성과 합리의 주체는 누구인가? 주체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은 주체가 되는 이들과 같은 존재일 수 없다. 콜하스는 자신의 정의를 위해 다른 죄없는 자들도 죽였다. 마지막에 사형을 당해 죽지만 그는 죄없는 이들의 희생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다. 이성과 합리에 기초해 세상이 이래야 정의롭다 믿으며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쓴 사람들은 이런 희생을 불가피하다 여겼다. 그러다 세계 대전 두 번과 유대인 학살을 겪고서야 근대성이 어떤 위험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이 소설은 콜하스를 통해 근대성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그 자체도 위험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같은 책에 실린 다른 소설 "결투"도 소송을 다룬다. 중세에서 소송 당사자들이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결투(대리인이 할 수 있다)를 통해 승패를 가렸다. 신이 정직한 자에게 은총을 내리므로 결투의 승자가 곧 소송에서도 이긴다는 거다. 이 작품에서 결투는 오묘한 결과를 낳았다. 사랑하는 여인의 명예를 믿고 대리인으로 결투에 나선 프리드리히 경은 상대방 소송 당사자 야코프 백작에게 심각한 부상을 입는다. 프리드리히 경이 결투에서 졌으므로 소송에서도 지고 여기에 더해 거짓을 위해 신성한 결투를 신청한 죄로 사형을 받게 된다. 그런데 작은 상처를 입은 야코프 백작이 몸져 눕게 되고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큰 상처를 입은 프리드리히 경은 빠르게 건강을 회복한다. 상태가 악화된 야코프 백작은 죽기 직전 자신의 죄를 고백하여 결투의 결과가 진실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근대 이전 신의 섭리가 세상을 다스리는 중세 시절엔 지금 생각하면 어이 없는 방식으로 소송 결과를 가렸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도 결투가 진실을 드러내 재판 결과를 가리는  중요한 방법으로 나왔다. 그런데 신의 섭리나 결투가 아니라 객관적 증거로 판결을 내리는 현대 재판은 믿을 수 있나? 진실을 가리는 다양한 방법은 중세 결투나 지금 증거나 마찬가지 아닐까? 소송이나 재판은 여전히 보통 사람들에게 기사의 결투와 같다.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와 절차는 다른 세상처럼 여겨진다. 

  이 책에 수록된 소설들은 전개가 빠르고 서술도 냉정하고 건조하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은 문체와 달리 너무나 뜨겁다. 책을 읽고 저자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전기를 봤는데 저자가 이성과 감정 모두 극단적으로 강했다고 한다. 문체와 인물이 대비되어 읽는 재미가 더했다. 소설 말고도 희곡 작품도 있다니 구해서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