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으려고 위시리스트에 올라와 있는 몇몇 시집들 중 어떤 것을 읽을까 고민하던 중에 무심코 주문한 책이 바로 이 책 ‘한국한시작가열전’이다. 동양고전은 내년이나 내후년부터 읽어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내 무의식이 왜 이 책을 주문하게끔 만들었을까.. 그런데 책을 읽을수록 현대시와는 다른 한시의 맛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었다. 현재의 관점에서도 독특하고 창의적인 묘사와 비유들, 아름답기 그지없는 언어의 맛을 넘치도록 보았다. 신라시대 최치원부터 구한말의 신채호까지 26명의 선현들의 시들을 수록한 이 책은 한국한시를 처음으로 제대로 접하여 입문하게 해 준다. 여러 선현들이 어떤 철학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분들의 시를 통해 접근할 수도 있었다.

 

 사림파 종장으로 알려진 김종직이 관직에 있으며 사림파의 대적 한명회를 찬양하는 시를 여러수 지었다는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또, 북학파로 유명하여 아름다운 시보다는 공학자 같은 모습을 상상했었던 내 선입견과는 달리 박제가의 시들은 그 수려함이 꼭 마음에 들었다.

 성리학자들의 시에 자주 나타나는 표현인 ‘鳶魚(연어)’에 대한 설명을 읽고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의 가치관과 철학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표현은 시경에서 “鳶飛戾天 魚躍于淵(연비려천 어약우연 – 솔개는 날아 하늘에 이르고 /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노네)” 라는 구절에서 비롯되었다. 이 구절이 중용에 인용되어 주자의 해석을 거쳐 天理(천리)를 수사하는 문구로 널리 인용된다. 하늘의 이치는 바로 자연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사계절의 변화가 항상 그러하듯이 새는 하늘을 날고 물고기는 물에서 산다. 성리학자들이 생각하는 세계관은 인간들도 항상 그러한 자연의 이치, 즉 천리를 따르는 것이다.

 

 성리학의 고루함이 결국은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근대화에 뒤쳐져 일제의 식민지배를 가져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연의 변화와 파괴를 기반으로 하는 현대 물질문명의 지속이 앞으로 얼마나 가능할 것인가를 자문해보면 오히려, 현재와 같은 이 풍족한 물질의 삶이 인류역사에서 예외적인 경우가 아닐는지. 그렇다고 또 지금의 물질을 바로 다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앞으로 어떻게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할지 많은 고민이 된다. 이럴 때 과거의 지혜에서 취할 것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 될 것이다. 나는 이번 총선에서 정당투표는 11번 녹색당으로 할 것이다. 시는 단지 아름다움의 미적 감수성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삶의 깊은 통찰도 불러 일으킨다. 앞으로는 중국역대시가선집도 구입하여 읽어볼 생각이다.

 

 이 시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 2수를 옮긴다.

 

전오륜의 산방 - 이숭인

 

봄바람이 나 먼저 산가에 이르렀나
산 북쪽 산 남쪽, 온갖 나무 꽃이로세

담소하며 머물 테니 소매 잡지 말아주오
흥이 나면 모름지기 외상 술 사야지요

 

春風先我到山家 山北山南萬樹花
談笑自留休挽袖 興來更覺酒須(貝+余)

 

 

 

밤에 청수옥에 앉아 - 박제가
 
바람 자니 향 연기 절로 엷게 나르고
평시에도 눈감으니 세속 인연 드물다
 
가을소리 태반은 시詩 속으로 들어오고
밤빛은 끝없이 술잔 속에 돌아오네
 
가물가물 푸른 등은 작은 집을 머금었고
흩날리는 낙엽은 빈 사립에 쌓이네
 
이따금 개 한 마리 범처럼 짖어대고
나무 끝 별빛들이 옷에 뚝뚝 떨어지네
 
風靜香煙淡自飛 端居瞑目俗緣稀
秋聲太半詩中入 夜色無端酒裏歸
脈脈靑燈含小屋 蹌蹌寒葉赴虛扉
有時一犬鳴如豹 樹杪星光競滴衣

 

한시, 송재소, 박제가, 이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