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읽었던 '통증연대기'에서 이 책이 언급되는 것을 기억하고 주문한 책이다. 그리고 저자인 '수전 손택'의 글을 읽고 싶었다. 또, 질병을 질병이 아니라 '천벌'로 여기게끔 하는 사회의 인식에 맞서는 고전적인 저서임을 어떻게 들었었기에 더욱 읽고 싶었다. 번역이 아주 깔끔하진 않았으나 그 내용만큼은 고전으로 여겨질만 하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앞부분은 1979년에 발표된 '은유로서의 질병'이고 뒷부분은 1988년에 씌어진 '에이즈와 그 은유'이다.

 

 수전 손택은 암투병을 하는 과정에서 암을 둘러싼 주변인들의 다양한 반응과 시선에 상처받고 '은유로서의 질병'을 썼다고 한다. 번역자 역시 책의 말미에 군대 시절의 '봉와직염'에 걸렸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질병이 가지는 은유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음을 지적한다. 1980년대 중후반 에이즈가 공포의 대상이 됨과 동시에 저자의 주변인물들이 에이즈로 죽거나 에이즈로 인한 질병을 앓게 된다. 암보다 더 강력한 은유를 간직하게 된 에이즈를 보면서 저자는 '은유로서의 질병'의 후속작으로 '에이즈와 그 은유'를 쓴다.

 

 은유로서의 질병이 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마음속 깊숙이 자리한 공포의 대상들(타락, 부패, 오염, 아노미, 쇠약함)이 그 질병과 동일시된다. 그 다음에는 이 질병의 이름으로(즉, 이 질병의 이름을 일종의 은유로 사용하는 식으로) 이런 공포들이 다른 것들에게 부과된다. 이제 질병은 형용사적 어구가 되는 것이다. 어떤 것을 '~질병 같다'는 식으로 말한다는 것은, 그 무엇이 넌더리나는 것이며 추악하다는 의미다."

 

 근대 이후 가장 강력한 은유를 가졌던 질병은 결핵과 암, 그리고 에이즈이다. 1979년에 발표된 '은유로서의 질병'은 주로 결핵과 암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은유를 분석한다. 우선 결핵은 연약함, 감수성, 슬픔, 무력함을 나타내는 은유였다. 반면에 냉혹하고, 무자비하며, 타인의 희생을 가져오는 것은 그 무엇이든지 암에 비유됐다. 결핵은 양면적인 은유, 즉 재앙의 상징이자 정화의 표상이기도 했다. 암은 결코 재앙 이외에 다른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암은 은유적으로도 내면의 야만성이었다. 우리에게도 식민지 시대 상처받은 영혼들인 문학가 청년들이 앓던 폐병, 즉 결핵은 그런 이미지로 남아 있지 않은가? 1990년대에 김갑수가 주연한 영화 '금홍아!금홍아!에서 김갑수가 분한 소설가 이상은 폐결핵을 앓고 있었다. 반면 외과적 수술로 제거하더라도 끈질기게 몸의 이곳저곳에서 전이되어 재발하는 암은 어떤 이미지인가? 지금도 마음을 고쳐 먹으면 암을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이 횡행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내가 아는 바로는 암은 정신적인 요인과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다.

 결핵을 기력이 약할 때(그리고 감수성이 지나치게 높을 때) 생기는 질병이라고 봤던 빅토리아 시대의 관념은, 기력이 제대로 표출되지 못할 때(그리고 감정이 메말라질 때) 생기는 질병이 암이라고 여겼던 라이히 식의 관념으로 보완된다. 다산이 제한되지 않았을 시대에는, 사람들이 충분한 기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불안을 느꼈을 법하다. 그러나 경제적 과잉생산이 폐해를 가져오고, 개인들이 갈수록 관료조직에 속박되어 가고 있는 우리의 시대에는, 사람들이 기력이 지나치게 풍부한 것을 두려워할 뿐만 아니라 표출해서는 안 될 기력을 갖고 있을까봐 걱정한다. 질병이 나타내는 은유는 당대를 나타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의 무한 이기 탐욕의 자본주의가 얼마나 암의 무제한적인 증식과 잘 어울리는가. 

 

 중요한 것은 암을 묘사하는 데 사용했던 지배적인 은유는 경제학이 아니라 전쟁의 언어에서 나왔다. 암세포들은 '침략'한다. 방사선 요법은 환자가 유독성 방사선에 '폭격'된다. 화학 요법은 독극물을 사용하는 화학전이다. 치료의 목적은 암 세포를 '죽이는 것'이다. 질병 자체도 사회가 수행하는 전쟁의 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암과의 전쟁'은 방송 및 언론에서 많이들 들어봤을 것이다. 군대의 담론과 암의 담론은 서로 겹친다.

 

  그리고, 질병의 은유는 질병을 비난하는 상황을 환기시키는 경향이 점점 강해졌다. 건강의 일부이거나 자연의 일부로 여겨질 수도 있을 법한 질병은 '부자연스러운' 모든 것의 동의어가 됐다. 오늘날, 어느 정치적 사건이나 상황을 질병에 비유한다는 것은 죄를 뒤집어씌우고 심판을 내린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암을 은유로 사용할 때 꼭 들어맞는다. 이것은 그 정치적 사건이나 상황이 지독할 뿐만 아니라 거스를 수도 없는 뭔가 사악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느 현상을 암으로 묘사하는 일은 폭력을 선동하는 것이다. 질병의 은유가 무해한 적은 없지만 암의 은유야말로 최악의 경우이다. 암의 은유는 잠재적으로 집단 학살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예를 보면 - 히틀러의 유태인 비난, 트로츠키의 스탈린 비난, 팔레스타인 난민 수용소에 대한 기독교계 극우 장교의 표현, 심지어 저자는 베트남전에 절망하여 "백인종은 역사의 암이다"라고 쓴 적이 있다고 했다. 이렇듯이 암을 둘러싸고 있는 은유의 안개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할 만큼 짙다. 그 짙은 안개는 우리가 이 질병을 의학적인 치료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을 방해한다.

 

 그런데 저자는 "암이 결국엔 하나의 질병에 불과하며, 결핵이 그랬듯이, 암을 일으키는 단 하나의 주요 병인이 발견되어 단 하나의 치료 방법으로 암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저자의 글에서의 맥락은 암에 너무 과도한 의미부여를 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지만 내가 아는한 아직 암을 일으키는 단 하나의 병인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발견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질병을 질병 그 자체로만 봐야한다는 저자의 의견에 십분 동감하지만 환원주의적 생리학의 관점에서만 의학을 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특정 질병을 둘러싼 은유들 때문에 정작 질병에 걸린 이들은 이중으로 고통받는다. 질병의 고통에 주변의 편견에 찬 시선으로 인해. 질병은 오로지 물리적으로 치료의 대상이지 우리의 몸과 사회적 관계를 규정하는 것이 아님을 잊어버리지 말자. 또한, 이런 뜻에서 질병과 전염병을 국가와 자본이 관리, 통제하는 현재의 의료제도에 대해 언제나 의문점을 갖고 인간의 얼굴을 한 의료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에이즈와 그 은유

 

 이 아래는 특별히 내 개인적인 의견이나 견해를 덧붙이지 않았다. 저자의 글을 그래도 옮겨서 정리했다.

 

 전쟁 수행이 대중들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동원하는 의식으로 변하게 되자, 전쟁을 둘러싼 관념이 '적'의 타도를 목적으로 하는 일체의 개량적인 운동을 지칭하는 은유로 쓸모가 있다는 점이 밝혀졌다.
예 - 범죄와의 전쟁, 마약과의 전쟁, 테러와의 전쟁, 암과의 전쟁

 

 자본주의 사회, 즉 윤리적 원칙을 향한 호소가 제 힘을 발휘하고 일종의 명예가 되는 것을 끊임없이 제약하는 사회, 자신의 행동을 이기심과 수익성에 맞추지 않는 것이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되는 이 사회에서는 군사적인 은유들이 남용될 수밖에 없는 듯하다. 이 은유는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질병들을 외부의 '다른 어떤 존재' 즉 현대전의 적으로 바라보는 방식을 충족시켜 주기도 한다. 따라서, 질병을 악마처럼 대하던 태도를 바꿔 제 아무리 환자들을 희생자로 여기게 될지라도, 질병을 환자의 잘못인 양 대하는 것은 필연적인 행동이다.

 

  '역병'은 에이즈의 유행을 이해하는 데 사용되는 주요 은유이다. 역병은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수많은 질병들을 지칭할 뿐만 아니라 집단적 재앙, 악, 천벌을 나타내는 최고의 본보기로서 오랫동안 은유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흔히 역병이라고 여겨진 병은 유행병이었다. 질병을 일종의 천벌로 생각하는 이런 사고 방식은 질병의 원인을 설명하는 가장 오래된 생각이며, 모든 질병은 의학이라는 고귀한 이름의 친절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반대되는 생각이다.

 

 19세기에 공포를 불러왔던 질병 중의 하나인 콜레라는 도덕적 타락에 대한 징벌로서의 의미를 가진 마지막 역병이었다. 치사율이나 위험성에서 유행성 독감이 훨씬 더 강했지만 어릴 적의 나도 가장 무서운 질병이 콜레라 그다음이 암이라고 생각했다. 에이즈와 그 은유에서 저자가 콜레라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하는데 문득 옛날의 내가 콜레라를 무서워했던 기억이 났다. 19세기의 관념이 20세기 중후반 한국의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에이즈는 자신들의 정치적 의제를 집단 심리의 문제, 즉 국가적 자부심과 자신감의 문제로 해석하려드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건이다. 신보수주의자들은 1960년대부터 진행되어 왔던 '만인에 대한 문화전쟁'을 에이즈를 활용해 추진했다. 에이즈는 비정상적인 행위(동성애와 방탕하고 문란한 성생활)에 대한 심판이라는 관념, 에이즈는 무고한 사람들을 공격한다는 관념 - 에이즈를 둘러싼 이 두 관념이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것은 역병의 은유 덕분이다. 이 은유는 어떤 질병이 모든 이들의 질병인 동시에, 병에 걸리기 쉬운 '타인들'이 초래한 그 무엇이라고 여겨질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파국을 가져오는 유행병들을 도덕적 방종이나 정체의 쇠퇴를 알려주는 징표로 해석하는 방식은, 죽음의 질병을 외래의 산물 또는 경멸받고 있는 사람들이나 공포를 안겨줬던 소수자들과 결부시켜 왔던 19세기에는 흔한 일이었다. 질병을 죄인이나 가난한 사람들과 결부시키는 이런 반응은 언제나 중간 계급의 가치에 부응하는 것이었다.

 

 1987년 미국 보건장관의 발언을 보자.  "...누군가가 성 관계를 맺었다면, 그 사람은 그저 지금의 상대방과 관계를 가진 것이 아니라, 지금의 상대방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관계를 맺어 왔던 모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겁니다."

 

 그리하여 에이즈는 성이나 재앙뿐만 아니라, 질병과 의학을 대하는 작금의 태도에 분기점을 마련해줬다. 그동안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진행되다가 드디어 승리를 눈앞에 둔 마지막 시기에 다다른 군사 작전처럼 의학을 대해왔다. 에이즈의 등장은 전염병이 정복되기는 커녕 그 숫자가 더 늘어났다는 점을 분명히 보였다. 이로 인해 보건을 중시하는 중간층에서 에이즈는 흔히 '개인주의'로 찬양되는 것보다 훨씬 더 심한 이기심의 문화를 더욱 더 견고하게 만들어놓기도 했다. 오늘날, 이기심은 의학적 신중함이라는 또 다른 노획물을 얻은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저작을 통해 저자가 가장 바라는 것은 군사적 은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군사적 은유가 뒤바뀐 형태, 즉 공공의 행복을 운운하는 의학적 모델이 아마 군사적 은유보다 훨씬 더 위험스럽고, 훨씬 더 심각한 결과를 빚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모델은 권위주의적인 법률을 강제적으로 정당화해 줄 뿐만 아니라, 국가 주도의 억압과 폭력을 은연중에 수반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군사적 이미지는 지나치게 선동을 일삼고, 상황을 지나치게 왜곡하며, 환자들을 고립시키거나 환자들에게 낙인을 찍는 데 단단히 한몫을 한다. 우리는 침략을 받은 것이 아니다. 우리의 육체는 전쟁터가 아니다. 환자는 어쩔 수 없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사상자도 아니고, 적군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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