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절약이라는 것을 생각만 하지 그리 실천하지는 않으며 살고 있다. 그러나 세상을 알면 알수록 이렇게 물질을 낭비하며 사는 것은 더이상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는 믿음이 커지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기술이 우리를 구원하며 인류는 영원히 물질적 진보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뭔가 실천적인 일을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고 다 읽은 지금 생각할 것들과 실천할 것들이 많이 떠오르고 있다.
"진보의 치명적인 은유(즉 무언가를 우리 뒤에 남겨둔다는 것)는 진정한 성장의 개념(즉 무언가를 우리 안에 남겨둔다는 것)을 완전히 흐려놓고 말았다" - G.K. 세스터튼
진보는 총체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 단어이다.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의미에서. 그러나 사회주의나 자본주의나 모두 물질적 생산의 진보를 가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면 과연 그러한 '진보'가 앞으로도 영원히 가능할까? 우리는 "값싼 석유와 천연가스(가)....유한하고 재생이 불가능하며 고르게 분포되어 있지 않은 자원이라는 점을 망각하고" 있다.
"'세계 석유 생산 정점(global oil production peak)'은 인류가 이 세상에 묻혀 있는 모든 석유의 절반을 뽑아낸 시점을 뜻한다. 이 절반은 가장 취하기 쉬웠던 절반, 가장 경제적으로 생산할 수 있었던 절반, 가장 질이 좋고 값싸게 정유할 수 있었던 절반이었다."
실제로 이제 더이상 지상에서 석유가 솟아오르는 유전은 잘 발견되지 않는다. 북해 등 심해의 어려운 곳에서, 알래스카와 같은 극지에서 막대한 에너지와 자본을 들여야만 석유의 채취가 가능하다. 그나마도 생산량이 정점을 지났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2000년대 중반이 석유생산의 최대점이 아니었나 조심스레 추정하고 있다. 이제 내리막길만 남은 것이다. 석유의 생산은 정점을 지났지만 석유 소비량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중국과 인도의 경제발전과 현재의 삶의 형식을 포기하지 않는 미국 때문에. 음모론 비슷하게 미국이 자국내의 석유를 더이상 채취하지 않고 매장된 채로 두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떠도는데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 석유를 구하는데 점점 돈과 에너지가 많이 든다면 현재의 세계화된 경제는 유지되기 어려워 질 것이다.
석유의 대체 에너지로 거론되고 있는 원자력, 풍력, 수소에너지,태양광발전 등은 모두가 석유경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석유의 힘과 국가의 통제 없이 원자력 발전소는 건설, 운영될 수 없으며 풍력발전에 쓰이는 터빈은 석유 없이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수소는 자연상태에서는 화합물로만 존재하는데 이를 분리하여 연료 만드는데 수소에너지가 발생시키는 에너지보다 만드는데 드는 에너지가 더 많다.태양광발전에 쓰이는 전지 또한 영구적이지 않고 석유를 사용하여 만들어야 한다.
"현대 문명의 가장 의미심장한 특징은 현재를 위해 미래를 희생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목적을 위해 과학의 모든 힘을 바쳐왔다는 것이다." - 윌리엄 제임스
"투기꾼들 한 세대가 거둔 이익은 비용으로 전환되어, 실업이나 자본 낭비, 생활수준 하락 같은 형태로 미래 세대에게 전가되기 마련이었다. 또한 이는 경제적 자산이 해체되고 매각됨에 따라 대다수 사람들이 바닥 경쟁으로 내몰리고 생계 수단이 막막해지는 가운데, 한 줌의 해적 같은 투기꾼들의 이익을 위해 산업사회가 200년 동안 쌓아온 부를 정리하는 난해한 파산 세일 같았다. "
"세계화는 주로 사업 활동의 비용은 사회화하면서 이익은 사유화하는 한 방편이었다."
저자의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통찰력이 6장에서 빛난다. 이 장에서 저자는 17세기 프랑스에서 근대적 금융의 개념을 창조해 낸 존 로의 사례에서부터 현대 금융의 역사를 간략하지만 알기 쉽게 정리하며 2008년도 경제위기의 원인이었던 서브프라임 사태를 정확하게 예측한다. 이 책은 2005년~2006년에 출간되었다.한편으로는 이렇게 현대적인 복잡한 금융기법의 한계와 파탄을 지적한 사람들이 있는데도 우리는 이를 무시하고 탐욕에만 사로잡혀 있었다는 점에 소름이 돋았다.
석유가 고갈된 장기비상시대에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세부 활동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생활방식을 근본적으로 재조정하는 일, 즉 우리의 모든 활동에서 규모를 전면적으로 축소하거나 조정하고 지역화하는 일이 불가피한 것이다.....각종 기계와 관개와 수송에 값싼 석유를 막대하게 '투입'하지 못한다면, 석유를 원료로 하는 제초제와 살충제가 없다면, 천연가스로 만든 화학비료가 없다면, 사람들은 식량을 생산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아니면 굶주리는 수밖에 없다."
저자는 "산업사회 이전으로 돌아가 버리면 그만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근대화의 여파로 우리는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지속가능한 방식에 관한 지식을 너무나도 많이 잃어던 것이다."
장기 비상시대의 최악의 시나리오 : 기후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증가, 육지가 바다에 삼켜짐. 대규모 농업의 파탄으로 식량생산이 충분치 못하여 대다수의 사람들이 굶주림, 식량과 연료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 인류가 그동안 쌓아온 정신적 가치들-민주주의, 희생, 봉사-의 파탄과 무자비한 생존경쟁, 70억 인구의 10억이하로의 재조정(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거기에다가 우려되는 점 중의 하나 " 장기 비상시대에 살아남을 만한 기업조직 가운데 가장 유망해 보이는 것은 교회를 비롯한 종교조직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의사로서의 능력을 더욱 갈고 닦아야 하겠다고 결심했다. 장기 비상시대에는 석유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현대의학도 거의 무용지물이 될 터, 생약을 이용하는 한의학과 한의사의 가치가 더욱 올라갈 것이다. 물론 서양의학의 지식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한의학과 서양의학 모두 열심히 공부하여 격변의 시대 나와 내 가족을 지킬 수 있게 나의 가치를 증명하여야겠다. 그리고 "나 하나쯤" 이란 생각을 버리고 친환경적이고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삶을 조금씩 실천해야겠다. 세계가 석유후 시대에 연착륙 하려면 사람들이 삶의 가치를 물질적 풍요가 아닌 다른 곳에 두어야 하는 것은 확실하다. 우리네 미래의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 할지 계속 고민하며 더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은 낭비의 문명에서 벗어나도록 하나씩 실천을 늘려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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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비상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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