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악의 꽃'을 읽었는데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내게 큰 감흥을 불러 일으켰었다. 그래서 보들레르의 소산문 시집인 이 책과 벤야민이 보들레르를 평론한 글도 같이 주문하였다. 보들레르 특유의 대중과 여성에 대한 혐오, 인공에의 찬미를 엿볼 수 있다고 하는데 내가 읽은 보들레르의 글은 그들에 대한 혐오라기 보다는 애증, 애잔함이 느껴졌다. 보들레르의 글은 문체가 화려하지 소재가 귀족적이거나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는 않다. 사회의 밑바닥 계층과 빈민가의 풍경이 주된 소재이고 기본적으로는 동질감 속에 있다고 본다.

 

 "시인은 제멋대로 자기 자신일 수도 있고, 동시에 타인이 될 수도 있는 비길 데 없이 훌륭한 특권을 누린다. 육체를 찾아 방황하는 넋처럼 그는 자신이 원할 때 다른 사람 속에 들어간다.(...)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러한 붓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향연, 즉 지나가는 미지의 보행자에게, 혹은 예기치 않게 나타나는 그 누구에게도, 그것이 시심(詩心)이든 자비심이든, 자신을 전부 다 바치는 이러한 영혼의 성스러운 매음에 비하면 얼마나 초라하고 얼마나 제한된 것이며 얼마나 미미한가." '군중' 중에서
 
 나는 시라는 문학장르를 읽으면서 당혹스러웠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의 배열, 시인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는 혼란으로 마치 암흑 속을 길을 잃은 채 헤매이는 것처럼 책을 읽었다. 몇 번을 그러다 보니 이제는 어렴풋한 길이 보이는 것도 같다. 시인이 창조한 세계 속에서 나만의 세계를 찾아내는 능동적인 시읽기를 해야만 시를 읽은 보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위 구절은 시인이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내는 자부심을 드러냈고, 일상 속에서 예기치 않게 나타나는 시로의 몰입을 내 마음에 드는 표현으로 나타냈다. 이런 자존심 강한 시인들의 세계에 참여하여 나의 조그만 영역을 만드는 것이 내 즐거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가난한 자들은 자신의 고통에도 인색할 수밖에 없다. 부자들은 그것을 정장으로 과시한다." '미망인들' 중에서
 
 현실 정치에서 왜 가난한 서민들이 진보가 아닌 보수의 손을 들어주는지 많은 사회과학적, 심리학적 연구들이 있다. 그전에 문학가들의 예리한 관찰과 표현이 있었다.
 
"햇빛 아래서 보는 것은 유리창 뒤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항상 흥미가 덜한 법. 어둡거나 밝은 이 구멍 속에서 삶이 숨쉬고, 삶이 꿈꾸며, 삶이 괴로워한다. (...) 그러나 만일 그 사실이 내가 살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고, 내가 이렇게 존재한다는 것과 내가 무엇인가를 느끼게끔 도와준다면, 나의 밖에 있는 현실이 무엇이든 뭐 그리 중요한가?" '창문' 중에서

 

 온전히 드러나지 않은 채 상상의 여지를 주는 삶이 더욱 풍요로울 것이다. 그런데 그 삶이란 것이 꼭, 있는 그대로의 사실, 현실일 필요는 없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프레임에 갖혀 그 바깥은 전혀 살펴보지도 않은채 자동적으로 살고 있다. 창문 너머의 객관적 진실은 알수록 잔인할 뿐이니 알려고 하지 않고 저멀리 남겨두고, 창문 안에서 나와 내 가족의 안위만을 돌보는 삶을 전부라고 여긴다. 창문 안에서 아무리 풍요할지라도 우물 안의 개구리일 뿐이다.

 

"세상에는 정복하고 싶고 즐기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여인들이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있는 이 여인은 그 시선 밑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싶은 욕망을 일으킨다." '그려보고 싶은 욕구' 중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팜므 파탈 아닐까..... 아니 유부남들에겐 와이프가 이미 이러한 여인인가?

파리의우울, 소산문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