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는 내가 처음으로 대학에 들어가던 해에 하늘보다 더 높던 4학년 선배이셨다. 동아리 연합회 간부로 있으면서 나랑도 제법 친하게 지냈었는데 그때도 후배들 이야기 잘 들어주고 그만큼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해주었던 형이었다. 10여년 넘게 서로 소식이 없었는데 이 책과 소개기사들, 평론들을 통해서 다시 형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는 지금 배나오고 뚱뚱한 30대 후반의 아저씨이지만 때로는 아직도 20대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것은 20대의 가장 빛나던 젊음을 지금도 유지하고픈 욕심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내 삶의 방식에 익숙해져 다른 길을 바라보지도 인정하지도 않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하는 노력이기도 하다. 게다가 난 20대의 극후반과 30대 초반에 대학 학부 생활을 1학년부터 다시 보내기도 했다. 이유야 어쨌든 나는 20대와 젊음에 관심이 많다. 
 

 이 책은 현재 한국의 20대 대학생들의 삶(돈, 가족, 사랑, 교육 등)을 다루고 있지만, 30대 후반인 나도 이 속에 투영되어 있었다. 내가 20대에 첫 대학을 다닐 때 내 부모님은 사업가로 지역유지 소리를 들을 만한 부자였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했듯이 나를 비롯한 많은 90년대 대학생들은 가족을 지긋지긋하게 여겼고 자취한 친구를, 독립한 선배를 부러워하였다. 나는 그때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와 제법 좋은 집에서 자취를 하였고 부모님을 떠나 살고 있는 것이 정말 좋았다. 그런데 IMF이후 아버지의 사업이 몰락하고 나는 다시 한의대를 다니고 되었다. 현재의 대다수 대학생들이 그러하듯 한의대생이던  내게 이제 가족은 지긋지긋한 떠나고 싶은 대상이 아니라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그러면서도 미안한 감정 가득한 존재가 되었다. 살인적 등록금과 노동시장 유연화로 인한 중산층의 몰락이 20대의 경제력을 제한하여 가족이 품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이렇게 이 책을 읽으면서 20대의 이야기지만 20대를 통해서 현재의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었다. 저자가 원하는 바도 그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내 자신 공대 출신으로 한의대를 갔던 그 심정으로 현재 대학생들은 의전원과 로스쿨과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겠구나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에서 깊이 공감이 가거나 오래도록 곱씹어 보게 되는 내용들이 있었다. 보수는 20대들이 나약하다고 질타하고 진보는 20대가 탈정치, 소비지향주의에 물들었다고 욕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어떤 나약한 사람이 등록금을 벌기 위해 시급 5000천원도 안되는 고된 알바를 하며, 학점 관리, 스펙관리를 한단 말인가. 철인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닌 것을. 자신을 표현하고 인정받는 방법을 상품의 소비로만 몰아붙인 것은 20대인가?
 획일적인 암기위주의 교육을 비판하고 사고력과 재능, 그리고 인성을 중시한다면서 각종 제도와 시험을 도입하여 사교육 종사자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교육의 '광란의 도가니'를 만든 것은 누구인가.
 

 우리 인간은 ‘왜’라는 질문을 계속 던진다. 이것은 진화심리학에서도 나오는 인간의 본성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는 너무도 복잡하다. 질문을 하고 답을 찾는데 명쾌하지가 않다. 그래서 혹자는 이 세계를 단순화한 모델로 치환하여 환원적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사유는 필요하지만 이러한 모델 중 하나만을 강조하거나 절대적으로 옳다고 강요되면 실제의 세계와 사유의 괴리가 발생하고 인지부조화 속에 진실을 외면하며 때로는 세계대전, 대학살 같은 인간에 의한 대재앙이 발생하기도 한다. 지금껏 한국의 20대를 대하는 시선이 이렇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신영복 선생이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이, 실천보다는 입장이 더욱 중요하다.” 고 말씀하셨다. 저자는 이를 이렇게 해석한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세상에 대해 동일한 답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세상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눈높이가 같다는 뜻이다.” 즉, “같은 위치에서 같은 질문을 던진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해답을 공유한 공동체가 아니라 질문을 공유한 공동체이다. 같은 질문을 공유한 공동체가 오래 갈 수 있다.” 20대를 바라보는 시선 뿐만이 아니라 타자를 대할 때 우리의 자세는 이러해야 하지 않을까.

엄기호, 20대, 잉여, 청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