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욱 형이 먼저 이 시집을 읽고 페이스북에 리뷰를 올린 것을 보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섹스를 자유롭게 표현한 시들이 많은 줄 알고 내 취향이다~ 싶어 구입하였다. 다 읽어본 지금 내린 결론은.... 속았다.
 

 우선 김민정 시인의 세계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시를 읽으면서 작가의 세계가 아닌 내 세계를 만들어간다고는 하지만 어느 정도 작가가 창조한 세계를 이해하고 싶은데 나랑 잘 안 맞는 것인지 그 세계로의 진입이 쉽지 않다. 읽기 힘들거나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아니었는데도.

 

 시인의 관심사는 자유로운 성애의 직설적 표현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시인은 특별히 아름다운 세상이나 감정을 노래하지 않는다. 오히려 남루하고 비루한 일상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중에 대소변과 섹스가 있을 뿐이다.

 

 이 시집의 시들은 소리내어서 읽거나 머리속으로 음성을 발음하듯이 읽어야 제맛이다. 동음이의어나 발음이 비슷한 단어들의 의미를 결합시켜 시를 전개한다. 시 제목부터가 그렇다. 몇가지 예를 들면 "미혼과 마흔", "화두냐 화투냐", "陰毛라는 이름의 陰謀", "아내라는 이름의 아, 네" 등으로 '~라는 이름의 ~' 형식의 시 제목들이 많다. 시를 전개시킴에도 동음이의어나 비슷한 발음의 단어들이 등장하는 순간 그 내용은 확 바뀐다. 이러한 대비와 대조를 통해 단어들의 뜻은 더욱 명징해질 수 있다.

 

 소설가들이나 시인들의 문학 작품 중에는 글을 쓰는 사람, 언어를 다루는 사람으로서의 자의식과 정신세계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고뇌하는 그 과정이 드러난 것들이 많다. 이 시집에서도 시인은 '시'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하며 탐구하고 있다. 과잉이나 오버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문학가들의 이런 치열함을 닮고 싶다. 내게 가장 부족한 부분이기도 하니까.

 

 

 

김민정, 그녀가처음, 느끼기시작했다, 동음이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