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구의 '관촌수필'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서재에서 추천한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었다. 이문구의 토속적인 문체와 전통적 가치에 대한 그리움을 생각하며 '무진기행'을 펼쳤다. '무진'이라는 곳도 꽤나 시골일듯 했으니까. 그런데 이문구의 글과는 완전히 다른 글이 나를 반겼다.

 

 이 책에 실린 김승옥의 단편들은 대부분 남녀간의 일들이 소재이다. 그리고 대부분 도시적 감상을 바탕에 깔고 있는 인상을 받는다.  고교 문학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던 '서울 1964년 겨울' 같은 경우 남녀간의 일을 다루지 않았지만 도시에서 사람들간의 만남과 소통이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너무도 예리하게 보여주고 있다. 남녀간의 일들도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여진다.

 

  단편 '무진기행'은 지리적 배경만 지역의 소도시 '무진'이지 주인공인 화자와 상대가 되는 여성 모두 서울이 삶의 근간이며 원천이고 돌아갈 곳으로 여기고 있다. 그들이 맺는 관계도 과도할만큼 서로가 밀착된 지방의 것이 아니라 도시적인 요즘 말로 '쿨'한 관계다.

 

 1950년대에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이 대학교수 부인의 불륜을 다뤄 크게 화제가 되었고 외설시비가 인 것을 감안한다면, 1960년대 김승옥의 글에서 보여진 당시로서는 상당히 자유로운 성애를 묘사한 것에서 사회의 변화를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급속한 도시화로 인한 젊은이들의 서울 집중과 물질지상주의는 바야흐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성관념을 낳았을 것이다. 김승옥의 소설들은 이를 자연스럽게 다루고 있다. 몇몇 시대적 한계를 감안한다면 21세기에 봐도 새롭지 않을 정도이다.

 

 김승옥의 문장들은 쉽고 자연스럽게 읽히지만, 찬찬히 보면 이렇게 글을 쓰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고 느끼게 된다. 이제 남들도 인정해주고, 나도 스스로는 제법 책 좀 읽는다고 방귀 좀 끼는 행세를 하는데 아직도 이 책 처럼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들을 많이 접하지 못하였다. 더 부지런히 책을 읽고 싶다.

 

 

김승옥, 무진기행, 서울의달빛, 서울1964년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