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 휴가는 갓난쟁이 아들 덕분에 멀리 가지 못하고 서울에서 미술관 다니고 뮤지컬 보면서 문화휴가를 즐겼다. 미술관에서 나는 처음부터 작품 해설 녹음을 들으면서 관람하는데 마눌은 그런 것이 오히려 방해된다면서 도도하게 관람한다. 미술은 느낌과 감상이 중요하지 해설은 오히려 방해가 된다면서...  확실히 나는 상상력과 느낌을 포현하는 능력이 부족하던가 계발이 덜된듯 하다. 이 책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을 읽는데 1000페이지 짜리 '유럽 좌파의 역사'만큼이나 시간이 걸렸다. 내게는 모든 책 중에서 시집이 가장 읽기 힘들다. 늦게라도 이런 부분을 계발하기 위해 시집을 읽기 시작했는데 아직 갈 길이 멀다.  

 올해 초 읽었던 발터 벤야민 관련 책에서 벤야민이 주된 비평적 관심을 보였던 보들레르의 시를 읽고 싶었다. 벤야민의 저작 중에 보들레르와 관련된 글이 상당히 많아서 보들레르를 먼저 읽어봐야만 이해가 갈 것 같아 이 시집을 구입하였다.

 처음 읽으면서도 힘들었다. 번역시 한 두개가 아닌 전체 시집을 읽는 것이 처음이어서 내 주제에 '이거 번역이 잘 되었을까?' 의심하였다. 외국어로 된 시가 어떻게 번역되어 나오는가는 무척이나 민감한, 중요한 문제인데 이 책의 번역이 좀 짜증났다. 익숙한 고유명사(주로 그리스 신화의)를 불어식으로 바꾸어 버리니 오히려 감상에 방해가 되었다. '세이렌'을 '시레네스'라고 번역하였고 '돈 주앙'은 '동 쥐앙'으로 번역하였다. 고유명사들을 불어식으로 번역하면 별도의 설명이 없는한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카론'은 '샤롱'이란다. '이카루스'는 '이카르'라고 표현하였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 수록 묘하게 시에 점점 빠져들었다. 읽을 수록 시를 읽기가 점점 편해졌다. 우선 감탄이 절로 나오는 언어의 절묘하고 화려한 조합에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극단적으로 탐미적이고 퇴폐적인 보들레르의 머리 속이 고스란히 드러난 듯한 언어들이 나중엔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시는 처음 접하는 내가 보기에도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낳을 수 있을 것 같다. 극단적으로 미를 추구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미는 고급 미학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뜬구름 잡는 식의 관념적인 절대의 미를 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평범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고통과 떼어낼 수 없는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시집을 읽으면서 섬찟하리만큼 위선을 간파하여 파헤치는 시도 있었고, 현실 상황에 딱 어울릴만한 시구도 있었다. 평가가 어떠하든 간에 보들레르의 시들은 확실히 생명력을 가지고 현재에도 읽힐 만 하다고 느껴졌다. 오늘만 해도 무상급식 서울시 투표와 관련해 주동자들을 딱 맞게 표현한 시구가 있었다.

 10대나 20대에 이 시들을 읽었다면 아마도 지금의 나는 좀 더 시를 가까이 했을거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아마도 좀 더 섬세한 감각을 가졌을텐데...

 

보들레르, 악의꽃, 퇴폐, 탐미, 악마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