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래빗'의 이름만 들었을 때는 이 또한 무수히 많은 토끼 캐릭터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도 익숙한 토끼와 풍경그림의 이끌렸고 순간 시간여행을 한 듯 어릴적 이미지가 일렁였다. '피터래빗'이라는 이름을 이제서야 알게되었지만 분명 누구나 한번쯤은 책가방속에 연필이나 필통에 그려진 토끼와 다람쥐, 오리가 그려진 이 그림을 가지고 다녔을 것이다. 그때는 아무이유없이 그림이 귀엽고 따뜻해서 들고 다녔으나 지금까지도 드문드문 보이는 이 그림이 어떻게 아직까지 남아있는지 의문이 든다. 그 흔한 이름이나 기억에 남는 이야기도 없는 이 캐릭터를 왜 좋아하게 됐을까? 일반적으로 문구라하면 그 당시 유행하고 인기있는 만화의 캐릭터를 위주로 만들어지는데 이 캐릭터도 만화일까?

 마음속 한켠에 늘 갖고 있던 의문이 <피터 래빗 시리즈 전집>을 보는 순간 풀렸다. 내가 익히 보고 자란 캐릭터의 이름은 '피터 래빗'이고 외국에서 명작으로 알려진 책이었다. 이 책은 피터래빗을 쓴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가 일생동안 쓰고 그린 책을 연도별로 묶어 낸 책이다. 그리고 연도별로 이야기가 만들어진 배경을 그녀의 일생에서의 변화나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해놓아 이야기에 대한 이해를 한 층 높인다. 또한 그 무엇보다 그녀의 그림을 줄곧 보며 자란 사람으로서 대부분 컬러로 실린 삽화를 볼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나는 '피터래빗'의 역동적인 한 편의 동화를 기대했었는데 그림에서 느껴지는 것 처럼 편안하고 잔잔한 이야기가 계속되어 아쉽다. 또한 그림만을 보면 사랑스럽고 따뜻한 느낌의 만족감이 들지만 그림과 글이 지나치게 일치해서 마치 글은 그림을 풀이하는 보조 역할만을 하는 것 같아서 살짝 지루한 감이 있다. 어쩌면 작가가 마음을 담은 곳이 글보다는 그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림에 좀 더 치중된 느낌에도 불구하고 동물을 의인화하여 교훈을 전달하려는 일반적인 우화와는 다른 점이 이 책의 또하나의 장점이다. 일반적인 우화의 경우 못된 짓을 한 동물은 죽거나 괴롭게 사는 '권선징악'의 길을 걷는다면 이 책은 그렇지 않다. 비록 처음에는 쥐를 괴롭히고 꼭 필요한 꼬임실을 숨기는 고양이나 인형의 집에 들어가 살림살이를 훔치고 소품을 깨는 쥐도 이야기의 끝에가면 성격이 변한다. '개과천선'이라는 말이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나쁜 짓을 하던 동물이 끝부분에서는 꼬임실을 다시 돌려주고 청소를 하는 등 등장인물의 성격이 바뀌는 입체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나쁜 행동을 한 사람은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 비참한 결말이 아닌 나쁜 행동을 한 사람일지라도 따뜻한 면은 존재하며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의미있는 책이다.

 그 동안 늘 의문을 갖고 살았는데 이번을 계기로 '피터래빗'에 대한 의구심을 해결할 수 있어서 좋았고 이와 더불어 저자인 베아트릭스의 일생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어서 배로 좋았다. 비록 동심의 몰두할 수 있을만큼은 아니었으나 소장하여 보고 싶은 삽화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