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저마다 곁에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존재들을 두고 산다. 가족, 친구, 애완동물(식물) 같은 생명이거나 돈, 가진 물건 같은 무생물이거나 추억이나 명예처럼 눈에 보이지 않거나. 어쨌든 그것들은 지구상의 사람 수 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으로 삶 속에서 빛을 발한다. 빛이 꺼지지 않는 한 그것들은 '영원한' 존재감을 부여받아, 일상 깊숙이 존재감을 새겨놓는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새겨져서 언젠가 빛이 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로 사람들은 살아간다. 그리고 반드시 그것들의 빛이 꺼지는 순간을 맞이한다. 그 순간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다.

상실(喪失)【명사】잃어버림. 없어지거나 사라짐.

  상실의 순간은 짧지만, 거기서 받은 상처와 후유증은 오래도록 남기 마련이다. 상처를 치유하고 후유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여러 방법을 택한다. 그 중에는 내가 읽은 <눈물 대신, 여행>의 저자처럼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을 자신처럼 아껴온 친구를 잃은 저자의 서른하나는 그리움으로 시작한다.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친구의 빈자리를 거듭 쓰다듬으면서 오래도록 아파하던 저자는 자신이 정말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그리고 홀연히 떠난다. 풀지 못한 의문과 상실로 인해 생긴 상처와 슬픔을 안고 프랑스로.

  <눈물 대신, 여행>은 프랑스의 알려지지 않은 곳들을 찾아간 저자가 시선과 발길과 마음이 닿았던 장소와 일상과 사람과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친한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사진과 글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담백하고 덤덤하고 한편으로 아련해서 여행기라기보다 안부 인사 같았다. 먼 곳으로 떠나 얼굴 보기 힘든 친구가 공들여 써서 부친 두툼한 편지 묶음을 하나씩 열어보는 기분이 이런 걸까. 봉투를 하나하나 열 때마다 딸려 나오는 사진과 글 속의 세상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낯선 곳임에도 친숙하고 애틋했다. 체온이 녹아 있는 누군가의 일상은 나뿐만이 아니라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씩 가야 하는 머나먼 곳에서도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 어찌나 안심되던지. 그리고 그들의 일상에서 찾아낸 별 거 아닌 것들, 정말이지 너무도 사소해서 눈 한 번 깜빡이면 그대로 사라질 것 같은 덧없고 희미한 아름다움은 또 왜 그리 아련하던지. 그녀가 타인의 일상에서 찾아낸 소소한 조각들은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아등바등 버둥거리는 내게 뭔가를 가르쳐 주고 있었다. 산다는 것의 의미 같은, 중요하지만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있을 때 잘 하라는 말의 의미를.

살아 있다.
정말이지 고맙다.
이토록 사소하고 소중한,
내 생의 모든 순간.

 

- '내 생의 모든 순간'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그녀가 보고 느끼고 걸었던 세상이 궁금했다. 그녀로 하여금 일기장에 '생의 가장 아름다운 곳을 만났다'고 쓰게 만들었던 세상을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싶었다. 라벤더의 계절을 맞이한 프로방스의 보랏빛 공기며 낮잠이란 나른한 단어가 잘 어울리는 생 레스티튀 마을이며 아침마다 파도가 잠을 깨우는 포르크롤 섬까지. 그녀의 상실을 토닥이고 받아들여 끝내 그리움으로 바꿔놓은 그 품에 안기고 싶어 어쩔 줄 몰랐다. 품에 꼭 안기고 싶어서, 치유 받고 싶어서 떠나는 여행길에 나도 언젠가는 오르게 될까.
아직은 모르겠다. 단지, 타인이 겪은 상실의 순간과 치유의 시간을 엿본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어떻게 살아야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존재들에게 후회를 남기지 않을지 고민하고 답을 찾아 실행하는 것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그녀가 말했듯이 내게 주어진 '산다'는 두 글자를 소중히 감싸안아 봐야겠다. 영영 잃어버리기 전에 한 번 더 꼭 안아주고 제대로 마주봐야지.

잊지 말자.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사진 한 장.

 

- '나를 기억해주기'

책, 리뷰, 눈물대신여행, 장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