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한두 번은 미술 전시회를 찾는다. 딱히 미술에 엄청 관심이 있다거나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건 아니다. 전시회에 가면 그림보다 그림 옆에 붙여진 손바닥만한 표찰에 의존하여야 하는 그림 까막눈이다. 그럼에도 좋은 그림을 구경할 수 있는 전시회가 있는지 손품을 파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그림이 지닌 고요하고 매혹적인 흡입력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그림이라도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그저 길거리에서 스쳐 곧 잊혀질 타인의 무의미한 몸짓에 지나지 않은 그림들 사이에서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그림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군중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을 찾아냈을 때의 흥분 섞인 반가움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렇게 찾아낸 그림은 어느 유명한 시의 구절처럼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고 '잊혀지지 않을 하나의 눈짓'이 되어 내 안에 묵직한 여운을 남겼다.

  서양 회화를 계속 보다 보니 자연히 우리나라 그림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뭐든 한 가지를 알면 다른 것도 연달아 알고 싶어지는 법. 화려하고 꼼꼼한 색칠로 그림 전체를 꽉 채운 서양화가 색의 아름다움이라면 우리나라 그림은 어떤 특징이 있고, 무엇이 아름다운가. 문제는 지식이었다. 사전 지식이 없어도 마음에 닿는 대로 느끼면 되는 거라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우리나라 그림에 무턱대고 달려들고 싶지 않았다. 우리나라 그림은 소중하니까 말이다. 김홍도나 신윤복처럼 유명한 화가의 그림을 감상하기에 학생 때 암기 위주로 배운 수묵화나 문방사우 같은 얄팍한 지식은 턱없이 부족했다. 지식과 더불어 안목을 높여줄 스승이 필요했다. 그런 연유로 찾아낸 스승이 바로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이다.

  저자가 일반인들에게 강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은 강좌에 직접 참석하여 듣는 것처럼 실감나는 책이다. 한 번도 뵌 적 없는 저자의 목소리가 음성 지원 되는 것 같다고 하면 제대로 된 비유가 되려나. 우리나라 미술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듬뿍 담긴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에서 저자는 '회화 감상이란 한 사람이 제 마음을 담아 그려낸 그림을, 또 다른 한 사람의 마음으로 읽어내는 작업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린 사람의 마음을 품고 시공간을 초월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에 온전히 전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 그림이라는 뜻이다. 그린 사람의 마음을 잘 받아들이려면 역시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게 낫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은 단순히 그림만 설명한 책은 아니다. 조상들이 살았던 시대적 상황, 생활 풍습, 정서 등을  비롯하여 음양오행과 같은 우주관, 인생관을 하나씩 풀어내어 그러한 조상들의 사상이 그림이라는 한 공간에 어떻게 집합이 되는지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배고픈 이에게 먹을 것을 주지 말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라고 했던가. 저자의 강의는 그림 한 장 한 장을 일일이 가르치는 대신 좀 더 넓게 우리나라 미술을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키워주고 있어서 어렵다고만 여긴 우리나라 그림을 가까워지도록 하는 동시에 심심하게만 보였던 우리나라 그림에 대한 애정을 갖도록 해주었다. 이 책에서 가장 크게 배운 점은 서양 회화와 우리나라 그림의 구도와 방향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서양 회화 보듯이 우리나라 그림을 보면 정작 중요한 주제를 놓치기 십상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간 감상을 방해한 잘못된 시선처리를 교정하고 나니 그림이 전과 다르게 보였다. 마치 흐릿한 눈에 안경을 써서 시력을 찾은 것 마냥 신기하고 새로웠다.

  시험에 나온다는 선생님의 말에 무작정 '수묵화의 특징은 여백'이라고만 달달 외웠던 그림 속 여백의 의미를 지금에서야 새롭게 발견해내고, 김홍도의 '씨름' 같은 작은 그림 한 장에 들어앉은 저마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조급함을 버리고 찬찬히 그림을 오래 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 건 그림과 가까워지고픈 나에게 크나큰 기쁨이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덕분이다. 그림을 통해 우리나라 미술, 나아가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진 건 당연지사. 건강한 자부심은 다가올 미래의 자신감으로 뒷받침된다고 저자는 말했다.

자기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 그것은 장차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자신감으로 연걸됩니다. 여러분, 어느 분야에 계시든 간에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셔서 큰 꿈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 '강좌를 마치며'

아는 만큼 보이고 애정을 갖는 만큼 가까워지는 건 비단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만은 아니다. 마음을 가진 모든 것들과의 관계에서 통용되는 법칙이고 그림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옛 그림을 통해 우리나라 미술의 아름다운 속살을 살짝 엿본 지금, 책 바깥의 공간에서 오롯이 마주하고픈 욕심이 생겼다. 언젠가는 직접 보고 느낄 수 있겠지. 그림에 담긴 조상들의 넉넉한 마음 씀씀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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