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씨와 더불어 몸도 찌뿌둥하고 마음도 흐렸던 2월의 마지막 토요일 서울 시립미술관에 다녀왔어요.「하늘에서 본 지구」라는 사진전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는데 혼자 돌아다니는 여정이 늘 그렇듯 이번에도  길치로서의 본능을 맘껏 발휘하여 지하철 역 출구에서부터 미술관까지 빙빙 도는 산책을 겸했답니다.(소문에 의하면 모태 길치인 심미안의 모친은 타고난 네비게이션이라고 함. 네비게이션과 길치의 혈연 관계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미스테리) 남들의 눈엔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절대! 아니에요! 당사자는 미술관 근처 산책이라고 박박 우길 거예요!!

「하늘에서 본 지구」는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이라는 프랑스의 사진 작가가 20여 년간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를 찍은 사진들을 모아놓은 사진 전시회로 3월 15일까지 서울 시립미술관의 2층과 3층에서 열린대요. 환경 파괴나 인류의 생존 문제에 관심이 많아 스스로 NGO단체를 설립한 작가가 하늘에서 바라본 지구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요?

 

 

 

  미술관으로 들어서면 바로 정면(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전시회 팸플릿 사진이 붙어 있어요. 사진 촬영이 금지된 보통 전시회와 달리「하늘에서 본 지구」는 부분적으로 사진 촬영을 할 수 있으니 카메라를 가져가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담아오는 것도 좋아요.(제2전시실은 촬영 금지) 벽보 형식의 팸플릿은 작가의 작품 중 '보의 하트 무늬(누벨칼레도니, 프랑스)'의 일부분으로 만들어졌고 그 위로 우리나라 순천만의 풍경 사진이 현수막으로 제작되어 허공에 걸려 있어요. 뱀처럼 구불구불한 순천만의 물길과 땅에 그려진 하트는 모두 순수하게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인공미 0%를 자랑하는 자연의 작품들이랍니다. 멋있지 않나요?

 

 

  전시실은 4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전시실의 입구 옆 벽면에는 전시된 사진들의 축소본들이 눈길을 끌었어요. 우리나라 시골에서 가끔 보던 -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의 사진들을 액자에 담아 한쪽 벽 위쪽에 다닥다닥 걸어놓던 - 형식으로 걸린 예고편이 호기심을 일으켜서 관람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제1전시실은 사진전의 제목과 동명인 주제로 작가가 전 세계를 돌며 찍은 항공사진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자연이 만든 작품과 인간이 만든 작품이 고루 섞여 있는 그 곳을 찬찬히 살펴 보니 자연이 만든 작품에 비해 인간이 만든 작품이 유해성이 짙음을 알 수 있었어요. 예를 들자면 네모난 블록을 틈 없이 포개놓은 듯 한 폐차장의 찌그러진 차들이라든지,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지상으로 새어나온 침전물이 퍼지면서 만든 현란한 마블링을 찍은 사진은 설명 없이 사진 자체로만 보면 현대 미술 작품에 버금가서 감탄을 자아냈어요. 하지만 자연에게 무례하게 구는 인간의 오만과 욕심에서 비롯된 슬픈 결과물이라는 설명을 읽고 나니 감탄이 씁쓸한 한숨으로 변하더라고요. 인간이 만든 작품은 '화려한 것일수록 독을 품고 있다'는 부제를 붙여주고 싶을 정도여서 더 씁쓸했어요. 물론 좋은 작품들도 많이 있었어요. 그 중 기억에 남는 사진은 바람을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풍력 발전기. 자연에 비할 바는 못 되기에 사진으로 담진 않았지만;;

 

   위의 사진은 '시장에 내기 위한 야채 재배(통북투 근처, 말리)'라는 제목을 가진 사진으로 마음에 와닿아서 유일하게 카메라에 담은 인간이 만든 작품(밑의 사진은 확대본)이에요. 사진에서 보이는 희멀건한 황토색은 모래땅이고, 초록색은 작물이에요. 마치 우리나라 묘판처럼 반듯하게 구획된 땅을 이어붙인 이유는 물을 절약해야 하기 때문이래요. 원래 유목민으로 가축을 끌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사람들은 심각한 가뭄으로 가축을 잃고 어쩔 수 없이 한 곳에 정착해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네요. 설명에는 없지만 유목민들을 한 곳에 정착시킨 가뭄이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으로 인해 생겨난 인재(人災)인 것 같아 측은지심이 든 저는 사진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곤 그만 코끝이 찡해졌어요. 녹록치 않은 삶을 지탱하는 농부의 얼굴치곤 해맑은 웃음기 속에서 그가 키우는 푸릇푸릇한 작물만큼 파랗고 조그만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자연을 망쳐놓는 존재도 인간이지만 희망을 키우는 존재 또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아저씨, 감사합니다.

하늘에서본지구, 사진전, 서울시립미술관, 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