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과의 우연한 만남

와흘리

 

 

나도 신을 믿는다. 미신도 믿는다. 길을 걷다가 사다리가 나오면 멀리 돌아서 걷는다. 사다리 밑을 지나가면 칠 년이 재수 없다고 어딘가에서 들었다. 또 어느 날 일어나 재수 없는 숫자가 이상하게 눈에 계속 들어온다면 집에서 나가지 않는다.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서라도. 미신뿐만이 아니다. 나의 확신도 믿는다. 그녀를 처음 만난 날, 난 그녀가 나의 평생 동반자가 될 것임을 느꼈다. 그리고 그 확신은 벌써 칠 년째 변함없이 진행 중.

확신은 미신만큼 무섭다.

제주의 신은 일만 삼천여 명. ‘명’이라는 단위를 쓰기에도 어색한 이 상황은 달나라에서 만리장성이 보인다는 중국 사람들의 말처럼 육지 사람이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삼만 이상의 신이 존재하는 일본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은 애니메이션〈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못지 않은 신들이 제주에는 아직 남아있다. 제주를 천천히 돌아보면 이 섬에는 분명히 무언가 있는 것 같다는 확신이 들게 된다. 또 제주 사람들이 무언가를 믿고 있다는 것도 명백해 보인다.

제주시에서 남조로를 찾아 길을 잘못 든 와흘리. 그곳에서 난 신들을 잔뜩 만났다.

“앤디 워홀? 워홀리? ㅋㅋ”

길을 잘 못 들어 초조한 나의 옆에서 계속 그녀는 낄낄댔다. 길을 잘못 든 내가 우스웠던 것이었다. 좀처럼 길을 잃지 않는 좀처럼 오지 않는 상황에 당황했고 해질 무렵 지나던 어느 좁은 이차선 도로에서 본능적으로 차를 세웠다. 왼편에 작은 숲. 커다란 팽나무와 느티나무가 대밭에 감춰진 어느 공간에서 신을 느꼈다. 아니, 누군가 나를 붙잡았다.

귤밭으로 향하는 아주 작은 올레 길에 차를 정차시키고 난 습관적으로 카메라를 메고 그녀에게 말했다.

“차에서 나오지 마. 자기는 귀신이 좋아하게 생겼으니.”

와흘리 본향당. 본향당은 제주에서 당집을 부르는 이름이다. 당집이라고 불리는 특정한 곳에서 행해지는 제주의 굿은 업자(?)들에게는 아주 유명하다. 가장 유명한 곳은 구좌읍 본향당과 송당리 본향당인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런 곳에 당집이 있다는 것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입구의 표지판엔 ‘와흘리의 본향당은 규모가 큰… 아직 남아있는…,’ 대충 이렇게 쓰여 있었지만, 난 이내 고기가 썩는 듯한 아주 비릿한 냄새가 풍겨오는 곳으로 발길을 들였다. 바로 그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헛것을 본 것처럼 분명히 수천 명의 신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형색의 붉은, 노란, 파란색의 시렁목을 몸에 두른 거대한 폭낭과 그 폭낭의 늘어진 가지. 그 밑에 소박하게 차려진 제사상. 저절로 간단하게 목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인사를 해야 했다. 묘한 기운을 가진 무엇인가가 잔뜩 그곳에 나와 함께 있었지만, 난 차분히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많이 드세요. 지금은 이거밖에 없어요.”

뒤를 돌아보니 언제 나왔는지 내 뒤에서 그녀는 바나나 세 개를 제단에 놓고 목례 중.

“나오지 말라고 했잖아. 당신은 기가 약해서 안 된다니까…”

“난 괜찮아. 여기 있는 분들, 다 우리 좋아해. 그쵸?”

그녀는 옛날부터 귀신이 보인다고 했다. 와흘리 본향당에서도 무엇인가를 보면서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그녀.

순간 그녀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때마침 소스라치게 세게 부는 바람. 난 그녀의 손목을 쥐고 서둘러 본향당을 나왔다. 나오는 중에도 우리를 누군가가 보는 것을 등 뒤에서 분명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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