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희망을 가진다.

그리고 그 희망은 나락으로 빠져들 때 점점 옅어지기 마련이다.

사람이 어두운 상자 안에 떨어졌을 때 상자의 뚜껑이 닫히기 전에는 빛이 환하게 들어온다.

그리고 상자의 뚜껑이 닫힘에 따라 희망의 빛은 점점 줄기로 변해가고 결국엔 실과같은 얇기로 변하게 된다.

끝내는 깜깜한 상자안에서 희망을 잃은 채 쓰러진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실낱같은 아주 작은 희망을 간직한 채 노력하는 사람이 있고,

자포자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봉순이 언니는 실낱같은 희망만을 바라보며 산다.

어떠한 고난이 찾아와도 봉순이 언니는 희망을 바라본다.

희망으로서 슬픔을 이겨내고,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희망만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희망으로 인해 삶을 이겨낸다.

그녀에게 이 희망마저 없었다면 그녀는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희망이 그녀의 삶을 연장시켰다고해도 과언이 아닐지도 모른다.

 

 

봉순이 언니의 희망에 관련된 이야기 이외에도 나는 많은 것을 보았다.

내가 70년대에 태어났다면 아릿한 추억이 되었을 서울의 이야기.

나는 80년대 후반에 태어났기 때문에 박물관에서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누런 빛바랜 서울의 사진과 같은 서울은

솔직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런 서울이 배경이다.

마치 서울이 아닌 시골과 같은 서울이 말이다.

그 시절의 서울을 내가 겪었다면 내 주변의 수 많은 봉순이 언니들을 내가 겪었다면

난 아마 이 소설을 보며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쟤가 너무 잘해주었더니 이젠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오려고 하네...... 어디라고 지가 따라나서, 나서길, 주제를 알아야지, 참, 너무 잘 대해주어서도 안돼......" p. 83

 

어머니는 정말 집을 봐줄 사람이 없어서 언니를 데리고 가지 않았던 것일까 (중략) 이웃집 할머니께 저녁상을 차려드리고 봉순이 언니까지 모두 외출을 했던 기억이 있었던 것이다. p. 83

 

미경이 언니가 언제나 제 물건을 소중히 놓아두었던 죽은 맨드라미색 보따리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우선 경대 쪽으로 뛰어갔다. p. 105

 

 

돈이란 무서운 것이다.

어려울 때는 어려운 사람들끼리 똘똘 뭉친다.

하지만 어려움이 없어지면 어떤가?

물론 그 우정 변치않고 이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나도 그렇게 되고싶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다.

봉순이 언니에 대한 태도가 변한 것이다.

함께 외출을 하고 함께 웃었던 봉순이 언니는 이제 (짱이의 집이 먹고살만해지자 혹은 부자가 되자) 집안의 식구가 아닌 바깥의 사람, 제 3자가 되어버렸다.

얼마나 쓸쓸했을까... 희망만을 믿고 사는 그 여자가... 자신의 집이라 여겼던 곳이 자신을 내쳤음을 하나 둘 느낄 때

얼마나 고독했을까...

 

 

봉순이 언니를 읽으며 물질적인 것으로 인한 사람의 변화도 느꼈다.

하지만 그 물질적인 것이 사람을 완전히 변하게 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 역시 변하긴 했지만 봉순이 언니를 끝까지 내치지는 못했다.

다시 돌아온 봉순이 언니를 받아주고 챙겨주고 마지막에는 그녀의 눈, 희망을 바라는 눈을 외면하긴 했지만

지금도 봉순이 언니의 소식을 간간히 전해 듣고 생각하는 어머니.

 

그리고 희망을 버리지 않는 봉순이 언니.

그녀는 미련한 것일까 아니면 올바른 것일까...

미련할 정도로 희망을 가진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희망은 중요한 것이다.

희망이 그녀를 그나마 지금까지 좋은 길로 이끌었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나도 그녀의 인생을 보며 희망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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