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쓰여진 중편 소설은 장편의 지루함과 단편의 가벼움을 해결해 줄 것 같았다.

그래서 중편 소설을 좋아하고 일부러 찾아 읽는 편이다.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오히려 이도 저도 아닌 작품을 많이 발견했다.

인상적이지도, 메시지가 분명하지도 않은 중편들..

이번에 읽게 된 '아주 사소한 중독'은 

작가정신 소설향 시리즈의 한 편으로,

중편 소설에 대한 여전한 기대로 찾아 읽게 된 작품이다.

남녀간의 로맨스와 성애를 다루고 있지만,

현대인의 방황과 타락, 여성의 심리와 상처도 발견할 수 있는 소설이다.

뒤라스의 묘지에서 시작된 남자와 여자의 만남은,

결국 불륜의 관계로 발전한다.

둘의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아름답고 진실하게 다가오지 않고,

집착, 방황, 타락 혹은 그저 감각에 충실한 모습으로 보여지는 것은

단지 불륜이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여성은 키스로 남자와 교감하고 그의 불안감을 가라 앉히고

위로하려고 하지만, 속으로는 남자와의 관계가 언젠가는 끝날 것을 생각하며

속으로도 허무한 결말을 믿고 있다.

파렴치한 문예부 교사와 삼천포 국회의원 보좌관에게서 받은 배신의 상처 탓인지..

그녀는 감각만 남은 껍데기처럼 살아가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사랑이 끝난 뒤에 그녀가 보이는 이상증세는..

여전히 그녀가 살아있고 상처받는 존재임을 증명해주는 것 같았다.

성인의 사랑이 이런 것이라면, 

이런 사랑은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씁쓸한 맛을 느꼈다.

주인공의 모순적이고 민감한 혀처럼, 

나도 어느새 인생의 달콤함 보다는 

비리고 씁쓸한 맛에 민감해진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 시간이었다.

 

짙은 장미향처럼 잔상이 꽤 오래 남는 감각적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