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귀르 미틱8. 카산드라cassandre

마리 구도외 6명 저/ 정희경 역/ 이룸

"그 여자가 입을 열면 또 어떤 불행이 우리에게 닥쳐올까?"
-장 로드, <카산드라 이야기>

'신이 스쳐간 가슴', '목소리가 된 육체', '남자들 사이에서 가장 빛나는 여자'라는 뜻의
그 이름.
그러나 고대 로마 시대부터 보통 명사가 되어버린 '불행한 여자 예언가', 카산드라,
왜 아무도 그녀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가. 혹은 들을 수 없는가.

이 모든 비극을 규명하기 위해선 그 시발점인 '아폴론의 저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아폴론은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와 헤카베의 딸, 카산드라의 몸을 원한다. 아폴론과 그녀
사이에 약속이 이루어지고, 그녀는 약속을 깬다. 그리고 저주가 시작된다.
그녀는 자신의 원대로 예언의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지만, 아무도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
울이지 않는다. 혹 어쩌다가 귀를 기울였다간 귀머거리가 되는 화를 당한다. 이것이 저주
다.

신과의 약속을 저버린 카산드라, 그녀가 저주를 감내하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처녀성, 핏
빛 예언을 눈물로 뱉아 내면서, 고국의 멸망과 형제의 죽음, 끝내는 자신의 죽음에 이르기
까지, 그 예정된 길을 지켜보고 순응했던 그녀. 그녀가 유발한 이 모든 비극의 기저에는 그
녀의 어떤 외곩수적 의지가 도사리고 있을까? 왜 사람들은 듣지 못하는가! 이것은 나의 의문이다.


그러나, 이 반골적인 책에서는 대략 두어가지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시킨다. 카산드라
가 여자(처녀) 예언가인 것과(남자 중심 사회에서 들리지 않는 여자의 목소리) 현대인들이
투쟁하며 소유하고 지켜내려 하지만 실상은 비어있는 성채(욕망의 대상), 그 환상의 덧없
음, 들리지 않는 경고벨, 종내는 그 방향성의 종착점인 비극에 관하여.
(윽, 상당히 카산드라의 예언다운 책인지라.)
예컨대, 카산드라의 목소리(진실의 목소리)는 현대에도 들린다. 그 연약하고 미세한 소리에
나의 귀는 열려 있는가?를 묻고 있는 것 같다.



이제, 다시 카산드라에게로 집중해 보자. (나는 십 년도 넘게 리코프론의 작품을 읽고 싶어
했었다.)
먼저, 그녀가 지키려 했던 처녀성에 관하여 얘기해 보자. 그녀의 처녀성은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무당(점장이)을 떠올려 본다. 신 내림. 말하자면 현대판 카산드라들인데. 그들은 신 내림을
받고, 신과의 대화를 통해, 미래를 예언한다. 즉, 신을 자신의 몸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이다. 이것은 신통력과 상관 관계가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신내림 없이 작두에 맨발
로 서 있을 수 없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런데, 고대의 카산드라는 이에 역행되는 일을 했다. 그녀는 아폴론이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에 강력하게 저항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로 발하길 원했고, 그녀의
이 주체적 의지에 따른 결과는 비극적 종말을 가져온다.(트로이의 멸망 후, 아가멤논의 살
아있는 전리품이 된 그녀는 그와 함께 그리스로 오게 되는데, 이곳에서 아가멤논의 아내에
게 그와 함께 죽임을 당한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들은 다르게 생각한다. 아가멤논의 죽음, 그것은 전쟁터가 아닌 아내
의 올가미에 걸려든 수치스런 죽음이지만, 카산드라에게 있어서 이 죽음은 '용감'하고 '영
예'로우며, '드러나지 않는 반격'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그녀가 자신의 죽음을 앞서서 보았
기 때문이다.

두 여인이 마주하고 있다. 아가멤논의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가 말한다.
"우리와 함께 있으면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는 갑자기 출세한 그런 사람들
이 아니니까..."
카산드라는 침묵한다. 이것은 아마도 그녀의 예언에 맞서는 최고의 행위이리라.


요컨대
"비극은 남성과의 차이와 동일화 효과를 통해 가장 호소력 있는(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여성성의 전형으로서 이 불멸의 반골 현자를 창조한 것이다"
라며 칭송하고 있다.
말하자면, 카산드라가 아폴론으로부터 지켜낸 처녀성으로부터 (예언의)시작해서 그녀의 죽
음(그녀는 아가멤논에게 겁탈 당했다? 처녀성의 파괴, 예언의 실행. 결국 예언은 이루어졌
다? 그렇다면, 자살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에 이르기까지, 이 역설적인 주체적 의지에 의
해 따른 여성의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아, 께름칙해.)

위의 것에 대하여 할 말은 많지만, 지저분해질 것 같다.
두 번째 질문, 왜 사람들은 그녀의 예언을 듣지 못하는가! 로 넘어가자.
'고대 말기에는 신탁이 내리는 신전을 소리의 장소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하여 "신
들이 자신의 뜻을 표현하기 위해 무수한 음향 기호들, 예를 들어 덜그럭거리는 소리, 지글
지글하는 소리 그리고 온갖 종류의 삐걱대는 소리 등등을 빌어 왔는데."(...)
"그것은 음이 맞지 않는 불협화음의 목소리, 설어(舌魚)(의미가 불분명한 정신병자의 말 또는 방언. 성령에 의한 특별한 언어 능력)이고(..) 오직 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의 것이 아닌 해독 불
능의 무수한 외침, 수많은 소리들이라, 인간은 카산드라의 목소리를 파악할 수 없다"고 말
한다."
"그 목소리는 또 다른 발화행위 영역으로의 열림, 편차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무한히 공명
하는 고유한 목소리의 분출과 침묵 사이에서 카산드라는 새로운 음성 공간을 창조하고 말하
기의 가능성을 증폭시킨다. 이 소리는 새로운 언어, 전(前) 언어적 원형 언어인 것이다."
"카산드라의 외침이 기원을 전해주는 곳, 예언의 환상이 시작되는 바로 그곳에서는 예언과
그 음성 기원과의 관계가 작용한다. 미셀 드 세르도MICHEL DE CERTEAU의 말대로 설어라는
'음성 유토피아'에서 작용하는 것은 언어의 토대 자체"로서, "신성과 인성 사이에 위치한
다중 음성의 노래"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메테오르>에 등장했던 '그녀'(이름을 까먹었다)를 떠올린다.
그녀는 실제적으로 문맹이지만, 자신만의 문자를 가지고 있어서, 자신이 문맹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그녀의 글자를 알아보지 못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카산드라
도 그녀와 같은 과가 아니었을런지...
카산드라가 처녀성을 지킨 대가로 잃은 것은 '목소리' 가 아니었을까, 상상해 본다. 실제로
그녀는 벙어리라서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는데, 자신은 열심히 말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신화의 인간화란 무엇보다 자신과의 관계 속에 예언 능력을 등록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미래는 늘 분석(혹은 해석)의 문제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 여자가 지닌 미래에 대한 지식은 무엇보다 현재에 대한 명철함이다. 시간의 질서를 초
월한 뛰어난 여자 예언가 카산드라에게는 사물 내부의 현실이 보이는 것이다. 그 여자는 거
기서 다른 해독불능의 것들에 가려진 미래의 함축적 의미들을 읽어낸다"
따라서 이 의견에 매우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그 여자가 입을 열면 또 어떤 불행이 우리에게 닥쳐올까?"
마치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뉘앙스로 다가온다고 말하면,
너무 뜬금 없을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