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으로 유명한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그의 작품이 아닌 편지글을 통해 먼저 만나게 되었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1903년부터 1908년까지 만 5년 동안 릴케에게 인생과 문학과 관련하여 자신의 고민을 물어온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라는 문학 지망생에게 보낸 총 10통의 편지로서 릴케가 세상을 뜬 뒤인 1929년에 카푸스에 의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문학을 지망하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인생의 고민에 힘들어하고 갈등하는 사람들에게 깊이 있는 울림을 주며 지속적으로 읽혀왔다. 젊은이가 빠질 수 있는 고민의 세계를 릴케는 편지가 처음 쓰였을 당시 28살의 젊은 나이로 그만의 고유한 사고방식과 고독 속에서 찾은 깨달음을 자신만의 언어로 보여준다. 어쩌면 그 자신 또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젊은이들과의 소통을 통해 상대에게 위안과 격려를 주는 글을 쓰는 동안 좀 더 명료하게 정리되는 시간이었을 것 같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당신에게 충고하고 당신을 도울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p.14)

 

당신의 모든 성장과 발전을 조용하고도 진지하게 이어나가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자꾸만 바깥 세계만을 쳐다보고, 당신의 가장 조용한 시간에 당신의 은밀한 감정을 통해서나 답해질 수 있는 성질의 질문들에 대해 외부로부터 답을 얻으려 할 때처럼 당신의 발전에 심각한 해가 되는 것도 없습니다. (p.18)

 

처음 릴케에게 편지를 보낸 카푸스라는 인물은 무엇보다 문학을 지망하면서도 현실은 사관학교의 딱딱한 세계에 묶여있을 수밖에 없는 좀 더 어렸을 때의 릴케와 비슷한 상황을 겪는 과정 속에 있었던 터라 릴케에게 진심 어린 충고의 말을 들을 수 있었고, 그 자신도 지속적으로 충고를 기반으로 변화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자신이 신뢰하고 존경하는 이로부터 이렇게 진심 어린 충고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대단한 성공은 아니더라도 자기만의 삶을 조용하면서도 확실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조언자가 곁에는 없지만 이 책이 이때까지 읽혀온 데에는 혼자만의 시간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가 모두에게 가닿는 말이기에 중요성을 부여하고 싶다. 시인 릴케는 어린 문학도가 보낸 편지에서 그의 단점과 문제점들을 짧게 지적한 뒤에 다시 그를 홀로 있는 시간으로 돌려보낸다.

 

오직 고독 속에서 인내할 때에만 그가 원하던 답을 얻을 수 있다는 말로 개개인의 내면으로 더욱 침잠하게 만든다. 결국 내 인생의 답은 나 혼자만이 찾을 수 있고, 외부의 누군가에게 물으려고 한다면 더욱더 미궁 속으로 빠져버려 방향성까지 잃게 된다는 것이다. 크게 공감되는 부분이다. 살면서 끊임없이 마주치는 선택의 순간, 자꾸 옆의 누군가에 조언을 구하지만 결국 마음속에 원하는 답을 해주는 누군가 나타날 때까지 내 물음은 방향 없이 이어지기만 하고 결정을 하고 나서도 결과가 좋지 않을 때엔 조언을 해준 누군가에게 살며시 책임을 밀어보기도 한다. 다시 생각해봐도 부끄럽고 한심스러운 일이지만 혼자만이 버텨내는 깊은 고독의 시간은 여전히 힘들기만 하다. 그럼에도 내 인생의 결정권은 나에게만 주어졌고, 그 책임 또한 온전히 내가 지고 가야만 다음 발을 내디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확실히 느끼게 된다.

 

당신은 당신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멀리 느껴진다고 말씀하셨는데, 바로 그것이 당신의 주위가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p.45)

 

실제로 주위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누군가 곁에 있음에도 혼자 있는 시간에는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결국 내가 안고 있는 작은 고통부터 큰 고민까지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사실이 그런 거리감을 형성하지만, 나에게 어려움이 있거나 함께 축하해줄 일이 있을 때면 또 내 곁에 바짝 다가와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해준다. 그 시간은 또 나를 힘이 나게 채워주며 관계에 대한 소중함을 되새기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은 더더욱 나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버티어내야 한다고 마음먹게 된다. 홀로 설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우뚝 솟아 있을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을 더 단단히 지탱할 수 있게 된다고 믿는다. 릴케는 사랑과 예술, 삶에 대한 조언에서도 항상 고독을 언급한다. 미성숙한 존재가 하나의 세계를 이루기 위해선 위대한 고독의 시간을 지나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고독의 시간이 괴로워 아무리 하찮은 사람과도 가벼운 유대를 나누고 싶어질 때가 바로 고독이 자라는 순간임을 상기시키며 인내를 가지고 좀 더 내면으로 침잠할 수 있기를 종용한다. 내가 홀로 설 수 있을 때 비로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행복해질 수 있는 순간임을 경험으로 느끼는 요즘이다.

 

사랑은 오랫동안 인생 속으로 깊이 몰입하는 고독입니다. …사랑은 개인이 성숙하기 위한, 자기 안에서 무엇이 되기 위한, 하나의 세계가 되기 위한, 즉 상대방을 위해 자체로서 하나의 세계가 되기 위한 숭고한 동기입니다. (p.68)

 

이 책이 젊은 시절을 보내는 내게 다가온 기회는 비슷한 시기를 살고 있는 다른 누군가의 추천을 통해서였다. 당시에 책에 대한 정보는 제목뿐이라 고려대학교출판부에서 나온 책을 골랐는데, 후에 그 사람이 추천하며 소개해준 구절은 범우사에서 나온 번역본이라는 걸 알게 됐다. 책에 있는 구절이 읽고 싶다는 마음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던 터라 그런 건지 몰라도, 이번 책을 읽으면서 문맥상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종종 집중을 방해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그 안에 담고 있는 내용은 얇지만 그 깊이와 의미를 한 번으로는 채울 수 없어 다음번에는 꼭 범우사에서 나온 번역본으로 읽어봐야겠다는 다짐을 안겨준다. 과거로부터 온 편지지만 미래에도 귀 기울여 들을만한 진지하고 현명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당신은 지금 당신이 변화 과정 중에 있으며, 그 무엇보다도 스스로 당신의 모든 것이 변하기를 바랐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p.88)

 

늘 어려운 쪽을 향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 따라서 우리가 우리의 삶을 이룩해나간다면, 지금 당장은 우리에게 낯설어만 보이는 것도 우리에게 더없이 친숙하고 소중한 것이 될 것입니다. (p.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