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작가의 작품으로 만나는 그의 글이 아닌 일상의 모습을 통한 생각들은 좀 더 직접적으로 전해지는 작가의 신념을 볼 수 있어 더 인간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 점에서 나는 헤세의 작품보다는 그의 에세이들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자연을 바라보며 쓴 시와 함께 헤세가 그린 수채화도 그의 순수한 내면세계를 비춰주는 것 같아 항상 즐겁게 대하게 된다. 특히나 이번 책은 헤르만 헤세라는 대 작가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그의 생각의 틀을 형성한 일상적인 모습과 생각들이 정원에서의 유년 시절 추억과 그 안에서 자연을 느끼며 직접 손으로 노동한 흔적들이 또렷해 그의 어떤 작품보다도 더 감명 깊게 다가온다.

 

소로우의 자연적인 삶에서 얻어 올리는 많은 생각의 깨달음 또한 깊은 감명을 주고 거기서 얻은 배움이 좋아 많은 책을 찾아보게 만들었는데 이번 책을 통해 소로우를 읽으며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헤세가 자연의 계절 속에서 식물과 나무를 관찰하고 직접 노동을 하며 발견해낸 기쁨들은 진정 작은 것에서 느껴지는 살아있음의 행복이었다. 묵묵히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고 살아가는 식물을 보며 바라보는 이의 생각을 투영시키기도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생명이 순환하는 이치를 깨닫고 다가오는 계절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현재를 살아가는 자세임을 느끼기도 한다.

 

내 마음속에는 땅 위의 모든 창조물 가운데 유독 인간들만이 이와 같은 사물들의 순환으로부터 어딘지 제외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p.21)

 

헤세의 작품이 지금 시대에 널리 읽히는 것을 생각하면 그가 살아있을 당시 많은 부와 명예를 얻었을 줄 알았는데 이외로 그의 삶은 알아갈수록 비극적인 요소가 눈에 띈다. 전쟁을 겪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으며 망명 생활로 이곳저곳 떠돌아다니기도 하고 자신의 조국에서조차 평가절하되며 힘겨운 생활을 하는 그였지만 늘 자연과 가까이 지내며 산책과 정원일을 하루의 중요한 일과로 삼고, 되도록이면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묵묵히 살아낸 세월이 존경스러움을 자아낸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책에서 그는 지금은 삶을 사랑하지도 그렇다고 그것을 부인하지도 않고 그저 받아들일 뿐이라고 말한다. 약간의 체념이 섞인 듯하지만 오히려 삶의 비극적인 부분을 좀 더 굴곡 있게 경험해야만 삶의 기쁨이 더 크게 다가오는 거라며 오히려 중간에 있는 미적지근한 상태를 더 경계한다.

 

날마다 작은 기쁨들을 될 수 있으면 많이 경험하고, 좀 더 거창하고 노력이 들어가는 즐거움은 아껴두었다가 휴가 때나 좋은 날 나눠서 맛보라. 시간이 부족하고 재미가 없어서 괴로워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것을 권하고 싶다. 일상적으로 구원을 받고 짐을 벗고 기분전환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큰 기쁨이 아니라 작은 기쁨이 필요하다. (p.74)

 

헤세가 살던 그 시대부터 시작된 차가운 기계화와 공업화로 인해 생산자와 상인에게만 부가 돌아가고 오히려 그 뒷면엔 저임금으로 착취되는 노동자를 우려하며 훗날 돈으로 만들어진 가짜 쾌락이 행복인 줄 알고 살던 사람들이 나중엔 결국 의사나 예술가들을 찾아가 더 많은 돈을 지불하며 자신의 행복을 찾게 될 거라고 말했던 시대가 지금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 씁쓸함이 느껴지는 한 편 당시에 헤세가 냈던 목소리에 좀 더 가깝게 귀 기울이게 된다. ‘적당한 즐거움이야말로 두 배의 즐거움’이라는 것과 ‘사소한 기쁨들을 간과하지 말라!’는 말속에서 인생에서 행복을 더 자주 느낄 수 있는 팁을 얻을 수 있다. 헤세에게 영감을 불러들이는 하나의 모습에서 비롯된 단상은 짧지만 그 안에는 여러 의미가 들어 있다. 나 또한 좀 더 경험에서 얻는 것이 많아야 함을 깨닫는다.

 

우리 같은 시인들은 무엇보다도 동시대의 사람들이 겪은 것들을 표현해야 할 사명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들어서가 아니라 직접 체험해서 알게 될 때에만 할 수 있다. (p.125)

 

절박함과 고난에서 생겨난 사상가나 인내하는 자의 심오한 말을 안락의자에 앉아 게으르게 책을 읽는 사람처럼 내 것으로 만들 수는 없을 것 같다. (p.155)

 

자신의 테라스 앞에 있는 사랑스러운 작은 난쟁이 나무를 표현하는 모습도, 복숭아가 특유의 단맛을 내면서 한껏 풍만하게 살지고 무르익어 이제 더는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그 순간 따는 것이라는 표현까지 말없이 자신의 생애를 살아내는 식물들에게 인격을 부여해 설명하는 시적인 언어들과 그런 예민한 감수성으로 포착한 자연의 색을 담은 그의 수채화들이 책의 품격을 더해준다. 다소 일상적인 얘기들이 지루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헤세의 삶을 대변하듯 그가 어렸을 때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삶을 더욱 깊이 있게 해준 자연과 정원에서의 사색이 지금 우리가 자주 접해보지 못하는 깨달음과 생각임을 감안하면 이 책을 읽는 시간이 더 귀해질 것이다.

 

나무들은 긴 생각을 지니고 있다. 우리보다 더 오래 살며 길고 조용하게 호흡한다. 나무는 우리가 귀 기울이는 동안은 우리보다 더 현명하다. 나무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운 사람은 이제는 나무가 되려고 갈망하지 않는다. 자신이 지금 처한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고향이다. 그것이 행복이다. (p.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