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작 <너의 이름은>의 흥행으로 자주 접하게 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언어의 정원>이 색감 풍부한 영화가 아닌, 몰랐던 이야기가 가득한 소설로 돌아왔다. 워낙 영상미가 훌륭한 감독이라 이야기로 만나보면 힘이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한 것도 사실이지만, 의외로 탄탄한 스토리가 중반부를 넘길수록 몰입도가 올라간다. 이미 영화를 본 지도 오래되어서 스토리는 거의 생각도 나지 않지만 비가 오는 풍경과 음악, 그 여운만큼은 강렬한 작품이다. 전에는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다가와 그 안에 담겨있는 내용에 대해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소설로 묶여져 나온 김에 그 이면의 이야기들을 좀 더 들여다보고 다시 영화를 보자고 생각했다.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캐릭터에 대한 나의 이해도가 빵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 속에서 그려내는 인물이 내가 봤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매우 평범한 여자와 남자라고 생각했던 두 사람이 전혀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분명 영화 속에서 그려진 설정임에도 글로 읽어내니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까지 챙겨보는 듯한 느낌이 더해진다.

 

옴니버스 식으로 이어지는 등장인물의 얘기는 각자의 개성과 얼굴을 뚜렷하게 만들어준다. 주인공에게만 집중된 스포트라이트를 주변인들에게까지 고루 비춘 소설 같달까. 의도를 알 수 없던 어떤 이의 행동이 바로 뒤 편에 이어지며 그의 심경을 대변한다. 마치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누군가를 이해하는 과정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안에서 조금은 이상한 면을 가진 두 남녀 주인공이 돋보이기 시작한다. 누구나가 인정할만한 미모를 가진 여자 유키노와 15살이라는 나이보다 더 성숙한 타카오는 비슷한 듯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선생과 제자라는 설정이지만 그 둘은 학교에서 마주친 사이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묘하게 이어지는 두 사람의 감정선이 불편하게 느껴지다가도 어느새 빠져들게 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조금씩 이상한 면이 있다."라는 문장이 이 이야기의 시작과도 같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어딘가 이상한 두 남녀를 둘러싼 주변 인물이 우리의 모습과 더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을 대하면서도 어딘가 다르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작은 변명을 해주는 것 같은 이야기랄까. “누구나 속 사정은 있다.” 마치 이렇게 이야기하듯 각각의 속 사정들이 책의 후반부까지 이어진다. 바통을 넘겨받듯 자신의 차례가 되면 이야기의 흐름은 그대로 이어지되 알지 못 했던 속내가 펼쳐진다.

 

영화 <언어의 정원>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실제 모티브가 된 '신주쿠 공원'을 찾는다고 한다. 내 주위에도 그런 사람이 한 명 있어서 영화 속 배경이 실제 존재한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았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마음이 달라졌다. 비가 오는 날 꼭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별거 아니었던 장소가 가상의 스토리가 덧씌워져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곳이 된 것이다. 그곳에 대한 어떠한 추억도 없지만, 특별한 경험이 되는 것이다. 스토리가 가진 힘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