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회는 우리보다 20년은 앞서있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그 말은 우리가 그들보다 뒤처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우리 앞에 놓인 사회적 문제를 예측하고, 가늠해볼 수 있는 의미를 뜻하기도 한다. 이 책은 이미 경제성장이 멈춰버린 일본 사회를 ‘소상인’의 정신으로 바라보고 진단한다. 저자가 언급하는 소상인은 소규모의 가게나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고정 고객을 중시하면서 노동의 기쁨이 살아 있고 인간적인 가치관이 바탕이 되는 일터를 꾸준히 지속시키는 방식으로서의 소상인 철학에 집중한다. 소상인은 확대보다는 계속 존속하는 데 우선을 두는 장사다. 그러려면 금전지상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다른 가치 지표에 따른 생활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돈이면 무엇이든 다 된다는 식의 가치가 만연한 사회에서 자신이 가치를 두어야 하는 대상은 무엇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저자는 이미 고도성장 사회에 들어선 일본 사회를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에 비유하고 있다. 사회가 발전한다는 것과 사회가 성장한다는 것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세계경제대국으로 발전한 일본이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을 겪으며 그간 숨겨졌던 문제가 드러나게 되고, 원전 사고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막대하며 현재까지 진행 중에 있다. 사건을 기점으로 여전히 일본 내에서 원전 가동에 대한 찬반양론이 뜨겁지만, 우리 사회를 비춰봐도 곧 터지기만을 기다리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문제이기에 전혀 남의 얘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더군다나 원전 부품과 관련된 공무원의 엄청난 비리가 밝혀지면서 우리에겐 어떤 식으로 문제가 닥쳐올지 염려가 더 커지기도 한다. 결국 ‘일’에 가치를 두지 않고 ‘돈’에 가치를 둔 사람들로 인해 생겨난 문제인 것이다.

 

욕망은 많이 생산하는 것으로 혹은 적게 욕구하는 것으로 비교적 ‘쉽게’ 충족할 수 있다. (40쪽)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생산성에 목숨 걸지 않고, 일의 가치를 우선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저자의 주장이 시대착오적인 말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조금 극단적이긴 해도 나도 한창 사회에 치여 마음고생을 하던 중 원시시대로의 생활로 돌아간다면 마음만은 평화롭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꼭 원시시대까지 되짚어보지 않더라도 우리의 전통적인 예전 삶처럼 마을 단위의 공동체 안에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며 소통하는 삶이 훨씬 인간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소규모 공동체의 삶은 어떤 것이든 인간적인 규모로 삶을 살아나갈 수 있다는 데에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있을지 몰라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는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우리의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도 바로 ‘관계’에서 오는 것들이다.

 

우리는 인간의 노동에 가치가 매겨지고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시대에 많은 것을 얻은 듯하지만, 삶의 가장 큰 의미를 지닌 인간적인 기쁨을 잃어버렸다. 확대, 자유, 개방이라는 단어가 반드시 좋은 점만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어떤 현상이든 그 안에는 반드시 두 가지 양면성이 함께 존재한다. 그동안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많은 부와 자유, 편리성을 얻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환경 문제를 비롯하여 극심한 양극화, 인간성 상실로 인한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그 대가로 지불하고 있다. 편리성을 앞세워 우리 삶의 터전과 인간적인 면까지 빼앗으려는 현재의 시스템에 분명한 변화와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느끼고 있다. 저자의 주장은 시대를 역행하자는 말이 아니다. 경제 발전만이 사회와 국가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규모의 시선으로 균형을 되찾아와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대안은 하나의 주장에서 벗어나 함께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