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프렌치 스타일’이란 클래식한 아이템을 시대에 구애받지 않고 세련되면서도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대체로 무채색 계열의 옷이 많고 소재와 패턴, 마감에 신경 쓴 질 좋은 옷들을 기본으로 하는 프렌치 스타일은 시크함을 내세운 무심한 듯 멋내지 않은 듯한 느낌으로 모든 여성이 가지고 싶어 하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어쩌면 옷에 대한 ‘스타일’보다도 인생 전반에 걸친 ‘라이프 스타일’에 가깝게 느껴지는 시크한 그녀들의 프렌치 스타일을 완벽하게 가이드 해준다는 책이 나왔다. 책은 프렌치 시크를 ‘주 느 세 쿠아(Je ne sia quoi)’라고 정의하는데, ‘뭐라 할 수 없지만 좋은 것’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풀어서 얘기하자면 과하게 힘이 들어가지 않았으며, 꾸민 것 같지 않은데도 자연스러운 맵시가 나고 자꾸 눈길이 가는 스타일을 지칭한다. 패션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프랑스 여자들의 스타일에 관해 다양한 인물과 논하고, 인터뷰를 진행하며 일명 ‘프렌치 시크 가이드’를 완성한다.

 

책은 한 작가가 썼지만 여러 인물을 인터뷰한 글이 묶여있어 서로 상충되는 의견도 발견할 수 있다. 그만큼 스타일에 관해서는 정답도 없고 법칙 같은 것도 없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것 또한 가이드라인에 그치지 않는다. 다들 자기만의 기준과 법칙으로 개성과 스타일을 찾은 사람들이기에 그 목소리가 조금 강하게 들리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패션지를 볼 때마다 옷장에 꼭 갖추어야 한다는 기본 아이템인 LBD(리틀 블랙 드레스)나 체형 별로 타입을 나눠 이런 옷만은 절대 입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는 모두 무시해도 좋다는 목소리가 반갑게 들린다. 현재 패션 시장은 한 시즌만 입을 수 있는 값싸고 이용하기 쉬운 패스트패션이 장악하고 있다. 저렴한 값에 많은 여성들이 유행에 따를 수 있는 선택권을 넓혀줬지만, 그만큼 옷의 질과 마감 처리에 있어서 버려야 하는 부분도 존재한다. 스타일을 논하는 책이니 만큼 그런 부분에서 아쉬운 목소리가 짙게 나오지만, 어디까지나 옷을 입는 문제에 있어 돈만 있으면 된다는 식의 생각은 버려야 한다. 흔히 말하는 기본 아이템이나 충분히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 앞에서는 과감히 선택하고 유행에 맞춘 저렴한 옷과 적절히 매치하는 것이야말로 자신만의 개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강조한다.

 

진정한 스타일을 갖기 위해서는 디자이너 제품, 저렴한 제품,

빈티지 옷들을 능숙하게 섞어서 연출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85)

 

프랑스 여성들은 음식과 스타일을 대하는 모습에서 센스가 있고, 그들의 좌우명은 바로 ‘절제’, 즉 무리하지 않는 것이다. 프렌치 스타일의 시크함은 옷에 대한 태도보다도 자기 자신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가 가장 크다는 걸 느낀다. 옷을 입고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 것이냐 하는 외적인 시선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옷을 입는 과정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옷을 대하는 태도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 옷을 입는 과정 속에서 재미를 느끼게 되고, 자신에 대해 더 알아가게 되면서 나만의 시그니처 아이템이나 스타일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스타일은 태도의 문제인 것이다. 프랑스 여자는 완벽함보다는 매력에 기대고, 보는 이를 깜짝 놀라게 하는 화려함보다는 은근한 유혹에 의지한다. 자신의 무언가를 다 보여주지 않고 어딘가 살짝 숨기거나 절제하는 법을 안다. 앞서 인터뷰한 패션 인사이더들은 하나같이 자기표현의 수단으로서 옷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다가간다. 옷은 타인에게 나를 드러내고 표현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지만, 문제는 자기표현이 사라지고 남의 시선만 남을 때다.

 

프렌치 스타일을 살펴보면 무엇보다 ‘여성성’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한눈에 봐도 여성스러운 분위기가 풍기는 스타일이 아니라, 어떤 아이템 속에서도 반드시 여성성을 드러내는 한 가지 아이템을 꼭 함께 매치한다. 예를 들어 허름한 청바지나 다소 거친 느낌의 가죽 소재의 옷에는 부드러운 실크 소재나 클래식한 셔츠로 너무 캐주얼하지 않으면서도 약간의 여성성을 부여해 드레스업하는 효과를 더한다. 무채색 계열의 아이템을 잘 매치하면서도 그 안에서 여성미를 풍기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조금 반대로 느껴지는 아이템을 함께 매치함으로써 스타일을 일관되면서도 조화롭게 녹여내는 것이다. 프렌치 시크의 가장 중요한 팁은 고급스럽고 질 좋은 핸드백, 질리지 않는 코트, 아름다운 신발을 잘 구입해서 아끼며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녀들은 질 좋은 가방이나 구두, 프리미엄 옷들이 아름답게 나이 든다는 사실을 알고 좋은 품질의 물건을 고르기 위한 안목을 키운다. 또한 과거의 패션을 현재의 패션과 잘 조합하여 재해석할 줄 아는 특별한 재능을 어렸을 때부터 그들의 어머니나 할머니로부터 배운다. 결국 자신을 우아하게 하는 것은 브랜드가 아니라 그 옷 자체이고, 그 옷을 어떻게 갖고 노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옷부터 알아보기 전에 먼저 자기를 알아보게 할 수 있는 감각은 개성에서 나온다. 좋은 안목을 키우고 싶거나, 클래식한 아이템을 고르기 위한 팁, 오랜 시간 좋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관리법은 다소 깐깐하게 들리지만 그래서 더 확실한 조언들이다.

 

 

 

 

오늘날 패션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음악계가 20년 전에 겪은 일과 닮았다.

마케팅으로 인한 낭비와 탐욕의 시대인 것이다. 그들은 무엇이 ‘뜨고’, 무엇이

‘지는지’의 기준을 정하고 우리가 그들을 따르길 바라고 있다. 뒤를 졸졸 따라가는 것은

당신이 취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연약함과 획일성을 보여줄 뿐이다. (9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