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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가족을 생각해보는 책이지만 1936년생인 저자의 연령대가 꽤 높아서 그런지 사회의 어른으로 문제를 진단하고 바라보는 목소리가 강한 책이다. 더구나 일본의 패전 후의 삶을 그대로 지나온 인물이라 그런지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몰락과 그런 아버지를 곁에서 보필하는 어머니에 대한 반발심, 이복 오빠에 대한 그리움까지 더해져 일반적인 가족 관계를 형성할 수 없었던 점에 기인한 어린 시절은 그녀의 독립성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요즘 사회의 자식들은 서른이 넘어서도 부모의 곁에 머물며 이른바 독립된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에 비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부터 내 힘으로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저자는 특히 이런 현상에 대해 못마땅한 시선을 감추지 못한다. 오히려 가족 간의 끈끈한 정에서 자발적으로 한 발 물러난 저자의 시각은 알고 있다는 착각에 가로막혀 타인을 볼 때만큼의 정확함마저 잃어버린 일반적인 시선으로 잡아내기 힘든 가족 문제에 대해 꽤 정확한 진단을 내린다.

개인적으로 가족은 애증의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 앞에서는 굳이 감정을 숨기거나 과장할 필요가 없어 더 자주 부딪히고 소홀하게 되지만 친구나 연인과 속삭이듯 서로 안에 있는 진심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어렸을 때는 너무 자주 붙어있어 싸움이 일었다면, 성인이 되고부터는 자기 인생을 살아가느라 소원해진다. 서로가 가진 습관이나 취향은 속속들이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 속내에 들어있는 깊은 생각까지는 알 수 없는 관계가 우리 가족의 형태가 아닐까 싶다. 더구나 한집에 오랜 세월 얼굴을 마주하다 보면, 피차가 싫어도 어느 정도는 닮게 된다. 결국 서로 안에 있는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발견할게 될 때 우리는 상대를 더 용서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가족의 결점이어서 덮어주고 싶지만, 내가 고치고 싶은 점을 똑같이 되풀이하는 상대에게 화가 나는 것이다.

인간은 책임으로 성장한다. 맡은 바 책임을 다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워도, 그 상황에 놓이면 인간은 바뀐다. (35쪽)

가족은 나의 최대 장점이 될 수도 있고, 약점이 될 수도 있다. 나를 지탱해주고 밀어주는 가족이라면 세상 그 누구보다 힘이 되는 든든한 지원자로 자리 잡지만 세상엔 그보다 더 다양한 가족 구성원이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 가족이라는 구성원 안에서 저마다의 역할을 지니고 있다.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역할이지만 어느 순간 역할이 주는 이미지에 나를 구겨 넣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꼭 어느 한 구성원만을 꼬집어 누가 더 힘든지를 따지지 않아도, 각자가 맡은 역할 안에서 어려움이 존재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로의 역할을 이해하고 따져보는 것은 관계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가장, 주부, 자식이 되어 서로가 갖고 있는 역할의 무게를 가늠해보는 것이다. 완전한 이해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관계의 균형을 유지하고 회복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단계라는 생각이 든다. 그중에서도 쉽게 무시되고 폄하되는 주부의 자리는 가족 구성원 모두가 진지하게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나 또한 자식의 입장을 떠나 집안의 중심이자 밑거름과도 같은 주부의 자리를 생각해보게 된 것이 불과 몇 년 되지는 않지만, 그 사이에 느낀 것들은 인생의 무게만큼이나 무겁게 다가왔다.

책을 읽으면서도 느끼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수한 환상들 속에서도 ‘행복한 가정’이라는 환상은 특히 더 현실성이 없다고 느껴진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존재한다. 한창 내가 자랄 때만 해도 이상적이면서도 흔한 가정의 형태는 부부에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는 4인 가정의 모습으로 일일 드라마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가족 형태였다. 나 또한 그러한 가족 구성원의 하나로 성장한 탓에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 실시한 편모, 편부 가정 실태 조사에서 꽤 많은 친구들이 해당한다는 걸 알고 작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사실 편모, 편부라는 말 또한 그때 처음 듣게 되었고, 책이나 드라마에서만 봐오던 일이 생각보다 꽤 가까운 친구들이 속한 현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 같다. 그때 이후로 당연시 보여주는 가족의 형태가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는데, 이미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가족의 형태가 존재하는데도 그런 사람들을 어딘가 부족하고 잘못된 시선으로 보는 사고방식이 강요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성장한 만큼이나 그런 시선들은 차츰 나아지게 되었고, 가족사를 고백하는 일에 있어서도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터놓거나 굳이 숨겨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사회의 변화에 따라 가족 간의 유대나 구성원의 틀이 달라지는 것도 결국 어쩔 수 없는 변화의 흐름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가족 사이에는 산들산들 미풍이 불게 하는 것이 좋다.

상대가 보이지 않을 만큼 지나치게 밀착하거나 사이가 너무

벌어져 소원해지면 가족만큼 까다로운 것도 없다. (129쪽)

저자는 일반인 중에서도 특히 독립심이 강한 인물에 속한다. 시대상황을 봐도 생각이 앞서 있었던 여성임에는 틀림없다. 일본 국영방송의 아나운서로 자신의 커리어를 다지고 반려의 동의를 얻어 자식은 갖지 않고 오로지 나를 위한 삶을 선택한 부분에서 그녀의 뚜렷한 인생관을 읽을 수 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특히 우리와 시대상황이 비슷한 부분이 많고, 역사적으로도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그런지 사회적으로 일어나는 문제들이 우리 사회와 거울을 비추듯 비슷한 부분이 많다. 나아가 우리보다 앞서있는 사회이기에 항상 우리 앞에 다가올 미래 사회 문제를 일본 사회에서 찾는 경우도 많아서 책을 읽는 와중에 공감하게 되고, 경각심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 많다. 저자도 끝에서 고백하지만 내 가족을 아는 일은 결국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가족은 한 개인으로서 나를 성장시키고 근간이 되는 밑거름이다. 우리는 가족의 문제 안에서 내 문제점을 더 자세히 관찰하게 되고, 내가 타인과 어떤 식으로 감정을 공유하고 생각을 나눠야 하는지에 대한 배움을 얻게 된다. 모두가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가족이라서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말과 행동에 더 조심할 필요가 있다. 결국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누구 하나의 희생을 필요로 하지 않고 당연시 여기지 않을 때, 누군가의 아픔과 상처를 모른체하지 않을 때,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건강한 사람일 때 관계에서도 조화와 행복이 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