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 느껴지는 세상에 대한 여유와 저자가 스님이라는 부분에서 전해지는 차분함을 생각하고 책을 펼쳤는데 내가 기대했던 감정과는 전혀 딴판의 다소 천방지축 성격의 스님이 발랄하고 재치 있는 글맛을 이어간다. 여유와 자애가 느껴지는 말투가 아닌 어떤 상황에 마주하게 됐을 때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느끼고 여과 없이 표현한 뒤에 약간의 유머를 겸비한 상황극을 통해서 새로운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가볍게 넘어간다. 예전에 누군가의 추천으로 너무 재미있는 책이 있다는 소리에 구해 봤던 <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 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책이다. 너무 가볍게 상황을 묘사하고 있지는 않나 싶을 때도 있지만 끝에선 항상 자기만의 인생철학과 통찰을 보여준 촌철살인의 문구가 많았던 유쾌한 책이었다.

 

인생 뭐 없다. 똥지게 지고 밭에 가다가 장에 가는 사돈을 만나도 장에 따라나서지 않으면 된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열심히 하며 신 나게 잘 놀다 가면 잘 살고 가는 것이다. (p.4)

 

책의 구성은 짤막한 일기를 보듯 그날그날에 있었던 일 중에서 스님이 느낀 감정들을 여과 없이 적고 자연에 무관심한 세상 사람들에 대한 비난과 자연에서 느끼고 깨달은 바를 적어내려 간 글로 채워져 있다. 처음엔 스님이라는 단어가 주는 차분함과 의젓함과는 다른 다소 과격한 단어들을 마주하게 됐을 땐 당황스러움도 느껴졌지만 결국 스님이라는 단어 앞에 인간이라는 점에서 참아야만 하는 화나고 짜증 나는 상황들을 함께 마주하며 똑같은 감정이 일 수밖에 없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수양으로 삼고 어떻게 배우고 넘어갈 수 있을지를 깨닫게 된다. 완벽한 인간이 없듯이 스님이라고 해서 모두 부처님처럼 도를 깨닫지는 않은 것이고 하루하루를 살며 다가오는 감정을 다스려 배우고 덕을 쌓으면서 스님이라는 단어를 완성해나가는 것이기에 나 또한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내 앞에 붙은 명사에 책임을 지기 위해 노력하고 하루하루 살아가며 그 단어를 완성해가야 한다는 걸 느꼈다.

 

자신의 정체성만 제대로 가지고 있으면 당당하지 못할 게 뭐 있겠는가. 상대의 직위나 힘을 인식하지 말고 그저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으로 보라! 그러면 누구를 만나든 누구나 당당할 수 있으리라. (p.35)

 

종교도 버팀목 같은 것이다. 너무 의지하려 한다면 나약해져서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p.87)

 

책 속에서 스님이 불교를 언급하며 종교로서 부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닦아서 스스로 부처가 되는 것이 불교라는 말이 나온다. 즉, 매일의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마음을 닦는 것이다. 스님이 실천하는 불교를 제대로 설명해주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다. 대체로 짜증 나는 상황이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상대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짜증을 낸다면 그것은 상대에게도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으로 끝날 뿐이다. 하지만 상대의 행동을 통해 내 안을 바라보고 앞으로 비슷한 상황에 놓여도 나만은 그렇게 행동하지 말아야겠다는 배움을 얻는다면 처음엔 짜증이 좀 났어도 뒤에는 배움의 기회이자 이해의 순간으로 바뀌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느낌의 배움을 많이 얻을 수 있다. 동물과 자연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해 재치 있게 서술하면서도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볼 줄 알고 깨달음을 얻어 가는 생활이야말로 진정한 수행이자 도에 이르는 길이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자연에 둘러싼 시골보다는 매일 바쁘고 시끄러운 도시에서 생활하는 우리에게 더 큰 수행의 장이 매일매일 펼쳐져 있음을 느낀다. 좋은 글귀를 읽고 순간만 좋다고 넘기지 말고 정말 짜증 나고 화가 날 때 기억해두어 실천할 수 있는 배움을 얻은 시간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처해진 격대로 적응하며 살게 마련이다. … 내가 부처가 된다면 나 또한 부처의 격에 맞지 않는 행동은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부처의 격에 맞춰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부처가 되어 있지 않겠는가? 사람은 선천적으로 행동에 따라 격이 달라지고, 격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게 되어 있다. (p.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