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역사적인 인물들의 서간집을 통해서 그들의 내밀한 깊은 관계를 알아보고 오가는 편지 속에서 서로에게 전하는 가르침이나 인물의 위대함을 엿보게 되는데 이번 책은 그러한 서간집의 느낌과는 다르게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퇴계와 율곡이 생각을 나눈 흔적보다는 서로의 생각을 다투며 배움의 흔적을 찾는 내용이 많다. 처음엔 생각 없이 바라본 제목이 유독 책을 끝마치고 나니 새삼 다르게 다가오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만큼 역사적으로 위대하게 일컬어진 두 분의 치열한 생각의 틈을 좇는 것도 버겁게 느껴질 만큼 말의 깊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동양 철학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깔려있어야 수월하게 읽어 내려갈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책의 분량에 비해 퇴계와 율곡이 주고받은 시와 편지는 적다. 특히 시는 짧은 글에 의미를 크게 담는 형식이라 분량이 적을 수밖에 없어 번역된 본문만 보면 그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있겠지만 여기에 역자의 해설과 참고 자료를 통해 퇴계와 율곡 둘 사이를 더 깊이 있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책의 주된 내용은 유학의 가르침에 기반을 두고 끊임없이 둘 사이에 다르게 해석된 학문에 관해서 율곡이 의문을 품으면 퇴계가 좀 더 유연한 방식으로 해석하며 앞으로의 배움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쪽으로 흘러간다. 아무래도 두 분 사이에 35년이라는 큰 세월의 차가 있는 만큼 한 쪽은 배움을 가르침 받는 입장이고 한 쪽은 배움에서 오는 의문점에 적절한 해석을 더해 방향성을 제시하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율곡과 퇴계의 생각의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퇴계의 죽음 이후 율곡이 친구인 성혼에게 보낸 편지에 끝내 좁혀지지 않은 견해에 따른 평가가 뒤따른다.

궁리(窮理) 하여 실천에서 검증해보아야 비로소 진정한 앎이 되고, 경(敬)을 주로 실천하여 마음이 두세 가지로 나누어짐이 없어야 비로소 실제로 깨달음이 있게 됩니다. (p.82)

퇴계와 율곡 둘 사이의 유학에 대한 입장은 치열하기까지 하다. 한 쪽은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하며 한 쪽에선 자신이 오랜 세월 공부하며 얻은 것들을 한치의 막힘없이 이치에 맞게 설명해나간다. 두 분의 깊이에 닿지 못한 독자가 읽고 따라가는 것이 버거울 만큼 많은 주석과 해설을 필요로 하고, 중간 중간 사라진 편지를 감안해서 그 내용을 파악하기 힘든 부분과 두 분의 학문적 견해를 이해하기 위해 그 시대에 나온 학문적 자료까지 참고해 어떤 배경에서 그런 의문이 나올 수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역자의 안내도 매우 꼼꼼하다. 그런 치열하기까지 한 의견의 차이가 있지만 그럼에도 두 분의 관계는 스승은 가르침으로 성장하고 제자는 배움으로 진보한다는 말과 같이 교학상장(敎學相長) 하는 관계가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오히려 서로 다른 점을 받아들이지 못한 후학들이 자신이 가르침을 받은 분의 의견에 치우쳐 상대를 폄하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어 아쉽게 다가오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려움 겪으면서 인내심 기르고, /여행길 다니면서 인내도 배우리라. /뿌리가 두터우면 꽃이 응당 빛나는 법, /원천이 깊으면 강은 절로 불어나네. (p.41)

책을 읽으며 줄곧 느꼈던 많은 생각은 동양 철학의 어려움이었다. 그동안은 잘 번역된 한글로만 읽어왔던 터라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막상 읽다 보면 읽을 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원문 그대로의 번역을 보고 퇴계와 율곡 사이에서 다르게 해석되는 뜻을 마주하니 하나의 한자어에 많은 뜻을 담고 자신의 시각에 따라 색다르게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큰 어려움으로 다가와 조상 대대로 이어져온 선비의 공부와 수행이 평생을 이어갈 만한 인생의 숙제라는 것이 새삼 피부로 와 닿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책은 퇴계에 조예가 깊으신 분의 글로 치우쳐진 부분이 있어 퇴계의 <성학십도>와 율곡의 <성학집요> 모두를 접해보고 우리의 뼈대가 된 학문인 성리학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기회로 다가왔다.

이치를 궁구하는 일이 어떤 경우 복잡하게 얽혀서 핵심을 힘써 찾아도 통할 수 있는 것이 아니거나, 어떤 경우 내 본성이 우연하게 이 문제에 어두워서 억지로 밝혀서 파악하기 어렵다면, 우선 마땅히 이 하나의 일은 놓아두고 다른 일에 나아가 궁구해야만 합니다. 이와 같이 이리 궁구하고 저리 궁구하여 마음이 저절로 점점 밝아지고 의리의 실상이 점점 눈앞에 드러나게 됩니다. 이때에 다시 지난 번 궁구하지 못했던 것을 가지고 세밀하게 생각하고 실마리를 풀어내어 이미 궁구했던 도리와 서로 증험하여 헤아려본다면,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예전에 궁구하지 못했던 것이 일시에 서로 드러나 깨닫고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이치를 궁구하는 활용법이니 궁구하지 못한 것을 끝내 방치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p.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