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엄마라는 단어가 보이면 언제나 귀가 솔깃해지고 무심코 지나치던 페이지도 멈칫하며 눈길이 머문다. 그만큼 엄마라는 존재는 나에게 오감을 깨우게 하는 목소리와 힘을 가졌다. 이 책을 사놓고도 읽어야지 마음만 먹고 미루다 결국 엄마랑 서로의 맘을 할퀴며 대판 싸우고 난 뒤에야 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책을 들었다. 책이 색다르게 느껴졌던 건 엄마를 다룬 많은 책에서 자주 보이는 ‘엄마와 딸’의 관계가 아닌 ‘아들과 엄마’의 이야기이고 그 속에는 구구절절 눈물짓게 하는 신파 섞인 이야기가 아닌 매일매일 엄마가 사라지고 있음을 느끼는 저자와 일상적인 엄마의 거친 생활의 모습과 묵묵함이 추억으로 변해버릴 그 시간을 자꾸 상기시켜 마음이 먹먹해지며 나를 서운하게 한 엄마를 다시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자리를 넓혀 준다.

책을 읽으며 재미있던 부분들이 많다. 평소 유명 잡지 <지큐>의 편집장으로 잘 알려진 그의 트위터를 팔로우해 일상에서 그가 적는 거침없는 입담에 속이 후련해짐을 느끼기도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자신의 확고한 생각과 주관, 취향이 있는 사람이라 엄마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스타일을 가진 아들과 끊임없이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대립하는 부분에선 알 수 없는 동질감 같은 것도 느껴진다. 다를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그 시간을 함께 하며 둘이라서 피곤하고 부딪힐 수 밖에 없는 지점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이 모든 사람들의 모습이라고 생각되니 작은 실소가 터지며 짜증스럽게 느껴지던 그런 다툼조차 훗날 잔소리까지 그리워하며 추억하게 될 그리움이 될 것을 생각하니 하나하나 사랑이고 소중함을 느낀다.

집에 혼자 있다는 걸 너무 기뻐하면 안 돼. 언젠가 정말로 혼자 남는 날이 올 테니까. (p.76)

책에선 엄마에 관한 일화보다는 저자가 엄마에게서 느끼는 그때그때의 감정이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나와있다. 집에 혼자 남았을 때에 느끼는 자유로움과 동시에 마음속에선 엄마의 부재가 추억으로 자리 잡히게 되는 순간을 상기시키며 알 수 없는 죄책감과 아릿함이 밀려오고, 엄마가 어디엔가 외출하고 나서 귀가가 늦어질 때의 그 알 수 없는 불안과 생각들이 평소 내가 느끼던 작은 감정들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 크게 공감되는 부분이었다. 그런 공감대를 형성하는 지점이 단순히 엄마를 사랑한다는 감정에 집중되어있기보다는 엄마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감정에 초점이 잡혀있을 때가 많아 엄마에 대한 내 못난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에 더 집중하게 만들며 앞으로 더 아껴주고 사랑해야 할 관계로 다시 돌아가게 만든다. 사랑한다는 충만한 마음보다는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그 불안함이 나를 다시 엄마 앞에 앉히게 만드는 것이다.

함께 산다는 건 도약하는 것, 개인적인 질문을 딛고 서로를 향해 묻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여행이다. (p.130)

책의 느낌은 읽는 도중에도 시시각각 변하고 독특하게 다가온다. 죽음에 관해 얘기할 때도 단지 엄마만의 죽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죽음이 연결되고 여러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다가도 각각의 얘기는 결국 모두 엄마와 맞닿아있다. 언젠가 사라져버릴 엄마와의 시간에 대한 소중함. 그런 추억 같은 아련함이 묻어 나온다. 자신의 취향과 습관,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도 엄마가 무너질 때 받아줄 수 있을 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며 엄마에게서 분리되지 않으면서 독립된 즐거움을 누리는 저자만의 엄마를 사랑하는 방법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쨌든 저자는 자기 주관이 강하지만 참 착한 아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는 모습만으로도 소통이 주는 일상이 엄마에게나 다 커버린 자식에게도 얼마나 큰 삶의 혜택인지 느끼게 된다.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추억을 얘기하지 않고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면서도 엄마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이 책은 진정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가슴 깊이 사무치는 책이다.

삶 그대로를 받아들이건 변화를 꿈꾸건, 우주를 아우르는 제1의 법칙은 모든 것이 항상 똑같이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진실은 타협될 수 없고, 결국 우리는 힘든 작별을 하며 일생을 보낼 것이다. (p.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