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자주 접하지는 않지만 가끔 어디에선가 마주친 짧은 시의 구절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좋아하는 시가 되기도 한다. 아무래도 짧은 시가 그렇고 짧지만 그 안에 무수히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시가 그렇다. 고은 시인의 ‘그 꽃’과 더불어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나에겐 그런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시다.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시의 시인으로서 그가 낸 이번 에세이집이 그래서 더욱 특별한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시골에서 평생을 사셨고 차 없이 자전거로만 달리며 주위의 작은 풀꽃의 존재까지 의식하며 살았을 그분의 세월을 통해 작은 것들에서 기쁨을 알아채는 눈을 빌려볼까 싶은 기대감이 있었는데 책을 펼쳐 든 순간 나의 예상과 기대는 모두 빗나갔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온통 사랑 얘기로 채워졌다. 그럼에도 나는 시인의 눈을 통해 바라본 세상의 작은 구석구석을 사랑으로 바라보는 책인 줄 알았다. 책을 펼치기 전 뒤표지에 짤막하게 소개된 슬이라는 아이의 사랑스러움을 말하는 부분을 보며 작가의 손주나 제자쯤 되는 아이인가 보다 하며 어떤 에피소드에 이 아이가 등장할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책을 펼치니 그 안에는 처음부터 온통 슬이의 이야기로 시작해 슬이의 사랑스러움으로 가득하다. 거기다 슬이라는 아이는 내 또래의 여자로 작가의 눈에 비친 젊은 처녀 아이였다. 처음엔 다소 당황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는 65세의 노인이고 슬이라는 처녀는 40년의 나이 차를 둔 25살이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이게 어떤 종류의 사랑인지 헷갈리고 혼란스러운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다.

 

선물은 오로지 무상의 행위이고 그 기쁨이고 허공에 던지는 사랑의 고백 같은 것이 되어야 한다. (p.123)

 

하지만 작가는 시인인 만큼 슬이를 두고 느끼는 사랑에 대한 감정을 꿈처럼 묘사한다. 순간 나도 모르게 슬이라는 아이의 사랑스러움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아이라고 느끼기도 하지만 작가는 끝말에 자신만의 시각임을 밝히며 슬이를 작고 평범한 여자로 그려 내기도 한다. 사랑의 콩깍지인 셈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이것이 소설인지 실제인지 모를 만큼 감정은 자세히 묘사되고 장소 또한 실제적이지만 작가의 사랑은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어쨌든 두 사람의 사랑이 아닌 한 쪽의 짝사랑인 만큼 슬이의 모습을 카메라로 훔쳐내는 작가와 그것을 불편이 여기는 슬이의 모습에선 나 또한 사랑하는 이의 입장이 아닌 조금은 부담스러운 사랑을 받는 상대에게 감정이 이입돼 조금 불편한 느낌이 드는 부분이었다.

 

마음속에 사람 하나 간직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이고 힘이 되는 일이고 사무치도록 감사한 일인 것인가를 너로 하여 다시금 깨닫게 된단다. (p.243)

 

이 책을 읽으며 강하게 느꼈던 부분은 사랑이란 서로를 세상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준다던 어떤 이의 말을 실감 나게 알 수 있었던 점이다. 작은 움직임조차 그 사람의 것이면 하나하나 예쁘다고 말해주는 작가를 보며 사랑은 가장 황홀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것과 동시에 그 대상이 사라지거나 나를 거부할 때 가장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에서 겁나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하는 인생의 황홀경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책에서 마주친 사랑은 어떤 사랑 얘기보다 황홀하고 애달프며 가슴 떨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평범한 삶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 느끼게 해준다. 결국엔 닿을 수 없는 사랑이라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젊음을 사랑하고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어떤 기분인지 마음 깊이 느끼며 사랑이란 스러져 가는 사람을 살게 하고, 많은 사랑의 노래를 지어내게 만드는 원동력임을 느낀다. 사랑은 언제나 옳다는 생각이 마음에 깊이 자리 잡는다.

 

현명한 사람은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등을 돌리지 않고 떠나는 법을 아는 사람이란다. (p.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