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일생을 사는 동안 가장 감수성이 풍부한 때는 어린 시절, 특히 사춘기라 말하는 10대 중반 전후가 아닐까.

사람은 조금씩 몸이 성장해 가면서 생각도 자라나게 된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모두 다 다르듯, 자라나는 것도 제각각이다

몸의 성장에 비해 생각의 성장이 빠른 사람이 있거나 몸에 비해 생각의 성장이 느린 경우가 있는 것이다

모두 각자만의 속도로 성장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 아이를 넘어서는 순간 생각의 폭이 넓어진다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게 되고, 생각하게 되고, 느끼게 된다

또는 늘상 보아오던 것, 생각하던 것에 변화가 찾아오기도 한다

이처럼 사람은 순간순간 혹은 오랜시간에 걸쳐 변한다

 

<길 위의 소녀>에서는 두 명의 소녀가 등장한다

그 중 "루"는 지적조숙아로 몸보다 생각의 성장이 빠른 아이이다

"루"는 외우려 하지 않아도 뭔가를 외울 수 있고,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도 어렵기보다 오히려 쉽기만 하다

같은 반 아이들보다 키는 작고 몸은 왜소하지만 생각이 이미 그들을 앞서가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파티문화나 몸치장에는 익숙하지 않지만 "루"에게는 그들과 다른 생각이 있다

그래서 "루"는 늘 외롭다

 

헌데 "루"는 학교에서만 외로운 게 아니다

"루"의 가정은 일단 평범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루"에게는 "타이스"라는 여동생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언제까지나 과거의 일이다

지금의 "루"에게는 동생이 없다

"타이스"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더니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루"에게도 동생을 잃은 충격과 슬픔은 컸지만 이는 엄마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타이스"를 잃고부터 엄마는 변했다

엄마에겐 "타이스"의 빈자리만이 남아있는 듯 했다

"루"는 엄마에게 늘 소외당한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제일 필요할 때에 "루"에게 엄마는 부재중이었다

옆에 있긴 하지만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 그런 부재중...

 

"루"는 그러다 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이름은 "놀웬", 보통은 "노"라고 부르는 한 소녀를 알게 된 것이다

"노" 역시 평범하지 않은 소녀다

"노"는 길 위의 소녀이기 때문이다

"노"에게는 보금자리가 없다

늘 식사를 걱정하고, 잠잘 곳을 찾아다니는 그런 떠돌이다

그래서인지 "노"는 자기방어가 철저한 아이이다

사람을 믿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주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달라 보이는 "루"와 "노"에게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엄마의 부재이다

실질적인 부재가 아니라 마음의 부재,  "루"와 "노"는 엄마가 살아있지만 엄마에게 일종의 무관심과 거부를 받았다

그런 채 한 명은 지적조숙아로, 한 명은 노숙자로 결국은 외로운 아이들로 살아온 것이다

 

"루"는 과제발표를 하기 위해 "노"를 계속 만나게 되지만 "루"에겐 이미 발표보다는 "노" 자체가 중요했다

"노"에 대해 알고 싶고, "노"가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잠은 어디서 자고 끼니는 어떻게 해결하는지.....

"노"를 알아갈수록 "노"에게 빠져들었다

"노"는 처음에 어느 사람들에게 그랬듯이 무심한 척 하지만 "루"의 끊임없는 관심 덕에 마음을 열게 된다

이로써 "루"와 "노" 사이에도 우정이라는 게 만들어진 것이다

 

"루"가 부모님의 동의를 얻어 "노"를 자신의 집에 데려오면서 둘은 더욱 가까워진다

하지만 인간은 늘 혼자인 것만 같고 그래서 외로움을 떨쳐버릴 수 없는 존재인가보다

"루"가 "노"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노"는 한발짝 물러선다

"노"는 이미 알고 있다

"루"는 자신과 다른 존재이고, 자신과 같아질 수 없음을........

그런데 이것을 깊이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노"는 "루"를 잡고 싶어진다

그래서 계속 "루"에게 "우리 함께인 거지?"라고 묻는다

이 말이 아프면서도 쓸쓸하게 또 안쓰럽게 들려온다

 

"루"는 "노"를 알게 되면서 자신을 억누르고 있던 무언가를 벗어 던진다

조숙한 아이이기에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그저 받아들이려고 했던 예전의 "루"가 아니다

"루"는 "노"를 지켜주고 싶다

비록 작은 아이에 불과하지만 "노"에게 자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루"는 더이상 피폐해지고 상처입어가는 "노"를 두고볼 수만은 없다

"루"와 "노"는 그렇게 그들만의 길을 떠난다

둘 만의 여행길, 그러나 "노"는 "루"를 제자리로 보내야 한다는 것도 안다

 

<길 위의 소녀>는 두 소녀의 짧지만 강한 만남을 그린다

감수성이 어느 때보다도 예민한 시절, 그때에 만난 사람들은 누구보다 특별하다

그 사람이 자신의 일생을 바꾸게 될만한 사람이라면 더욱 더...

"루"는 "노"를 만나게 되면서 또 다른 세상에 눈을 뜨고, 어른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된다

"노"는 "루"를 통해 사람의 따뜻한 마음을 느끼게 되고, 자신의 길을 스스로 떠날 결심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되기까지 둘은 둘만의 또는 각자의 성장통을 겪게 되지만 말이다

 

어린이와 어른 사이, 이 사이에 낀 아이들은 그들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마련이다

그들이 아니면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고 공감하기 어려운, 날카로운면서도 감수성 넘치는 시선이 있다

그들은 서로의 시선과 생각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함께 커간다

바로 "루"와 "노"처럼...

두 소녀의 모험과 우정을 그린 <길 위의 소녀>, 읽는 내내 나 역시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