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앗이란 단어를 아주 어렷을 때 들엇다. 
큰아버지댁 동네의 아랫집은 집이 두채였다. 
윗채는 넓고 큰 기와집이었지만 2M쯤 아래에 지은 아랫채는 윗채의 반 정도 밖에 안된 보잘것 없는 지붕만 기와집인 오두막이었다.

윗채는 할머니 한분이 그 넓은 집을 다 차지하였으나 
아랫채는 윗채 할머니보다 훨씬 젊고 이쁘고 건강하게 보이는 아주머니와 아이들 셋이 살았다.
사람들은 그 젊은 아주머니를 '시앗'이라고 불렀다.
시앗아주머니는 아이들 건사하랴, 윗채의 살림까지 도맡아하랴 매우 바쁜 기색이었다.
어른이되어 고향을 생각할 때마다 가끔 그 '시앗아주머니' 생각이 난 적도 있었는데 
윗채의 할머니가 아이를 낳지 못해 대를 잇기 위해 젊고 튼튼한 시앗을 본 덕에 
아이를 셋이나 두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그래. 옛날엔 아들 얻으려고 시앗봤다는 말 많이 있었지.

지금은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지만 내가 결혼할 무렵엔 결혼식에서 시어머니가 두분이 나왔다느니 시어머니가 조강지처가 아니라 시앗이었다느니...하는 말을 가끔 들을 수 있었다.
결혼 후 구역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우리 구역의 다섯가정 중 두 가정이 그런 집안 이었다.공교롭게 두 가정 모두 시앗의 자녀들이었는데 한 집은 시아버지가 바람을 펴 시앗의 자녀가 된 가정이었고한 가정은 큰집동네의 기와집처럼 후사를 얻기 위해 튼튼하고 듬직해서 뽑힌 시앗의 가정이었다.
구역예배 마치고 그들의 가정이야기를 들으면 재밌기도 하고 딴 새상이야기처럼 기가막히기도 했다.
주로 본처에게서 당한 시앗인 시어머니의 고난기였지만 어린 내 상식으로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의문투성이었다.
그리고 나와 남편은 그런 집안이 아닌것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이 책을 주말에 읽었다면 하룻만에 다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손에서 놓을 수 없이 분하고 통쾌하고 감탄하며 다음날 출근할 걱정도 잊은채 읽어 내려갔다.

 아니, 바로 우리동네에서 사는 분이네?
흠...수리산역에서 내렸다면?한라2차에서 사시는 것 같고, 시앗의 집은 이마트를 지나간댔지? 그럼 시앗의 집은 11단지 한영아파트나 한국공영쯤 되나?
하는 상상을 했다. 언제 한번 찾아가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시앗과 남편을 아이다루듯,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기까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마음으로는 미워하며 함한 말을 하더라도 몸에 배인 조강지처의 베품을 읽을땐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보다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구절은 1권 끝부분의 <하늘이시여>였다.
어머니로서 아들을 향한 그 지극정성 사랑을 보며 남편에게 줄 사랑을 자식에게 너무 많이 준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삼일만에 이부자리를 따로 폈다니...한 일주일만 더 참아냈다면 살맛을 조금 더 일찍 느끼지 않았을까?

나는 모태신앙인이다. 개신교.
하나님앞에서 다른 신을 섬길 수 없는 신앙으로 성장한 내가 아들을 위해 
그렇게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대목을 읽으며 너무 가슴이 아팠다.

무기징역이라도 받는 심정으로,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쓴 글이다.
말이 이해지. 그 심정은 겪지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
셋이 함께 명절 준비를 하고, 김장을 하고, 마늘장아찌를 하고, 여행을 가고....
나도 이해할 수 없는데 자타가 공인하는 고상하고 똑똑한 작가에겐 어쩌면 죽음보다 더 무서운 벌이라 여겼을지도 모른다.

 한때 이숙영의 [애첩기질 본첩기질]이란 책이 유행을 탔었지.
나는 애첩이니, 본첩이니 그런 말투마저 거슬렸지만 가만히 속으로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난 과연 애첩기질일까? 본첩기질일까?

퍼스트는 사랑받지 못하고 세컨드는 사랑받는다.
작가가 자신의 입장에서 나눈 이야기이지만 동감할 수 있는 말이 많다.
모든 아내들이 다 그렇겠지만 두 기질이 적당히 어우러져야 좋을텐데 내게도 가끔 본첩기질이  세게 나온다.
나는 남편에게 아직도 가리는 게 많고 독립심도 강해 무거운 가구도 혼자 낑낑대며 끌고 땡기며 옮겨 놓는데...

그래도  애첩기질이 조금 더 많구나.
세컨드는 조잘댄다.
세컨드는 수다스럽다.
세컨드의 목소리는 왕방울이다.

 남편은 아버지를 보고 자라 배운대로, 시앗을 보는일이 자연스러웠나보다.
시앗으로 인해 어머니 가슴이 뭉글어진 것은 왜 못 봤을까? 
가난한 집에서, 차남이지만 장남노릇을 해야했던 남편이 아내와 처가와 장모에게 열등감이 깔렸을꺼야.
부족함없이 알콩달콩 남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살았지만 그 남자는 열등감에 외롭고 괴로웠겠지.

그 틈새를 비집고 나타난 세컨드는 그 남자의 외로움과 괴로움을 날려버린 동시에 자신감과 우월감을 줬겠지.

작가에게 딸이 하나 있었으면...
남편의 시앗을 안 볼 수도 있었을텐데...
자식은 하늘에서 주시는 것이지만 그래도 노력은 했어야지.

자꾸 사흘만에 이부자리를 따로 폈다는 말이 걸린다.

 

이제 더 이상의 고통에서 아파하지 않기를 바란다.
자식에게도 더 이상 베풀지말고, 아마 아들의 결혼이 미뤄지는 것은
아들에게 엄마는 부족함이 없으니가 굳이 결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니까...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리지 말고 밖으로 밷어내길 바란다.

 우리동네, 가까운 곳에서 
오늘밤에도 그들의 술안주를 만들고 있을지도 모를,
시앗에게 남편을 물려주고 아득함으로 밤을 지샐지 모를,
그녀 생각에 새벽이 다가와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래! 삶의 화두는 역시 사랑이지!